[오늘의 심리학 #081]
당신은 요즘 언제 심심해보셨나요?
Being idle is a valuable pursuit in a world focused on activity.
Posted Jun 29, 2019 Jamie Gruman Ph.D.
* 주요 내용
- 뉴욕 타임즈는 최근에 '활동적인 행동을 멈추고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즐길 수 있는지에 대한 기사를 썼다.
- 네덜란드어 중 닉슨(niksen)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창 밖 응시, 멍 때리는 등 아무 일도 하지 않음을 즐기는 것이다.
- 기사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을 즐기는 집단'을 만들자는 제안까지 했다.
- 빠르게 진행되고, 미디어에 사로잡힌 현대에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성취하고, 다음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 성공, 소비, 근면함에 초점이 기울어진 나머지 느림, 이완, 즐길 필요성을 잊어버렸다.
- 항상 앞을 내다봐야 했기에 노력하는 법은 배웠지만, 즐기는 법은 잊었다.
- 이는 운전 방법은 알려줬으나 연료 주입은 하지 않는 것과 같다. 지치고 허전해진다.
- 의무와 관련된 문제에서 벗어나 순간순간에 의미를 갖고, 회복할 필요가 있다.
- 근면함과 생산성에서 나태함은 그 가치를 잃는다.
심리와 정신 건강, 그로 인한 상담 이론도 유행을 탄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현대 심리학의 발전 역사만 보더라도 이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이야기했던 정신 분석이 그 시대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무엇이 있었을까요? 19세기 말 여성의 인권은 거의 땅에 있었습니다. 여성은 교육과 계몽의 대상이 되지 못 했으며, 한 남성의 아내로써, 다음 세대를 낳을 산모로써의 가치가 전부였죠.
필자는 여성의 이런 대우가 '성'과 밀접한 관련이 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을 똑똑하게 하고, 그로써 지위를 높이고, 높아진 지위로 자율성을 보장시켜주는 것. 그 자율성엔 분명 '성'도 포함일 겁니다. 1차 욕구니까요. 허나 피임 기술이 엉망이었던 과거에 여성의 '계몽'과 '출산'은 양립할 수 없는 딜레마였을 거에요.
그러다보니 '순결'에 대한 인식, 중요성이 높아졌던 겁니다. 섹스가 곧 임신인 환경에서 처녀의 무분별한 임신을 막으려면 성관념을 억제하고 '죄'로 만들어야 했으니까요. 이런 '성'에 대한 억제적인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욕구를 억압하고 무시했을 겁니다. 프로이트 시대 내담자를 보면 뭐 그렇게 '전환 장애'가 많은가 싶지 않나요? 마음의 욕구에 정조대를 끼우니 당연히 신체에 이상이 생길 수 밖에요.
그래서 당시 프로이트의 '무의식', '성적 발달 단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등을 이용한 상담이 적절했던 겁니다. 성적 억압, 성에 대한 죄책감이 많은 사회였으니까요.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그 어떤 상담사도 인간의 모든 문제가 '성' 또는 '공격성'의 욕구 때문에 일어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성이 아닌 다양한 이유로 인간은 또 병들어 있습니다. 비교적 성에 자유로워졌고, 상처 받을 다른 것들이 늘어났으니까요.
아들러가 이야기 했던 '열등감', 파블로프와 존 왓슨이 몰고 온 커다란 센세이션 '행동 주의 상담', 인간이 가진 가능성과 자아 실현 욕구를 봐야 한다던 로저스의 '인간 중심 상담', 앨리스와 백이 얘기한 검증 가능하고 증명 가능한 '인지 관련 상담' 등 모든 상담 기법의 탄생은 시대상을 반영합니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오지 마세요. 심리학과에.] 에서 더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현대 사회의 트렌드를 알아보는 게 중요한 이유입니다. 사회 현상과 당시 주류를 이룬 키워드는 사람들의 결핍과 욕구를 반영하거든요.
"잘 살아보세"로 시작한 경제성장 의지는 IMF를 맞으며 "공부가 평생을 좌우한다."는 교육 전쟁으로 번졌습니다. 선진국 대열에 오르며 "이제 건강하게도 살아야지!" 라는 마음으로 등장한 키워드 '웰빙'은 낮은 취업률, 고단해져가는 젊은 층의 우울을 만나며 점점 '힐링'을 요구하는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최근에는 단순한 위로 뿐 아니라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과 동기 '스탠딩' 까지 다달았고, 인문학과 대중 심리학의 폭발적인 인기로 이어졌으나 다른 방면에선 '스탠딩'하고 싶지 않은 지치고 찌든 자들에 의한 '무기력', '아무 것도 안 하고 싶다.'는 요구가 생겼습니다.
즉, 현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모두 주저 앉을만큼 힘들어요.' 겠네요.
뉴욕 타임즈의 기사를 소개한 본 저널은 이런 대목을 무척 예리하게 찌르고 있습니다. 반디심리연구소의 메인 모토도 '누구나 하고 싶을 때 나태하고, 심심하게.' 이기에 필자도 무척 반갑게 접한 저널이네요.
https://brunch.co.kr/@3fbaksghkrk/138
'Musturbate'의 시대입니다. 모두가 빨리 가고 있습니다. 빨리 갈 수 있는 기술성은 날로 증가하고 있죠. 그러나 도착점 없이 '빠르게 달려서 앞장 서기'에 목적을 둔 레이스는 잠깐의 휴식마저 죄악으로 만들었습니다. 높아지는 불안 속에서 우리의 선택은 '쉬지 않고 노력하기.', '불안한 생각 무시한 채 잠깐의 킬링 타임으로 육체 피로 줄이기'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머리에 '이래도 되나?' 가 가득 찬 상태에서 몸만 쉬어봤자,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려봤자 피곤은 가중될 뿐입니다. '시간도 없는데 바보 같이 뭐 한 거지 나는...?' 하는 자괴감만 늘어났으니까요.
많은 이들이 휴식의 수단으로 여행을 고르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일상'이 성공과 노력으로 가득찼으니 그 반대격인 '비일상'은 충분히 휴식할 수 있겠죠. 그냥 마냥 잠만 자면 되는 거 아니냐고요? 그렇지 않아요. 중요한 건 '아무 것도 안 해도 괜찮아!' 라는 정신의 휴식이니까요.
저는 예전에 어떤 학회에서 '모두가 편한 마음으로 2시간 동안 신나게 놀 수 있는' 강의를 요청 받았었습니다. 모두가 편하게 놀기 위해 어떤 방법이 있을까 고민해봤지만, 좋은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어요. 생각의 마무리는 모두 '이런 이런 사람들은 되려 싫어할 것 같은데.' 였죠.
결국 강의 주제를 선택했어요. 강의가 시작하고 저는 말했죠. "아무 것도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춤을 추고 노는 것도, 사람들과 얘기하는 것도 인공적인 목적이 있다면 누군가를 피곤하게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가만히 있다가 분위기에 휩쓸려 억지로 움직이거나 어색하게 웃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신 하고 싶은대로 몸을 맡기세요. 옆 사람에게 함께 하자고 끌어 당기는 건 금지합니다. 우리는 딱 하나만 지킬 거에요. 하나하나 전부 자연스럽게!"
그리고 전 음악을 켰습니다. 잔잔한 음악도 있고 즐거운 음악도 있었습니다. 처음엔 각기 휴식을 하거나 몸을 들썩이던 분들은 어떤 눈치 주는 사람도 없는 환경 속에서 온전히 자발적으로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음악이 여섯 곡 즈음 흘렀을 때 모두가 자발적으로 일어나 춤추고 노래를 불렀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만들자 그제서야 그 곳엔 '자발성'이 피어난 겁니다.
우리는 '의무'에서 벗어난 농땡이가 필요해요. 이른바 쓸모있는 딴짓이죠.
https://brunch.co.kr/@3fbaksghkrk/73
아무 자극도 없는 '심심함'이 불편해서 유튜브 영상을, 음악을, 대화를, 일을 하며 안심하고 있다면 잠시만 모든 것을 꺼놓고 그 고요함을 즐겨보세요. 인간 극한의 '창의력'은 그 심심함이 차올라서 '자발적'으로 무언가 하고 싶어질 때 생기는 법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