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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프로필 사진이 석양이다.

소설 감성 #009

그는 항상 미묘했다. 그가 하는 행동엔 뜻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없는 듯 했다.


주진은 그를 좋아했다. 언제부터라고 할 것도 없었다. 어느 순간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


주진은 점심 빵을 입에 물고 심각한 표정으로 스마트폰 액정을 보았다. 그의 카톡 프로필 사진이 셀카에서 석양의 풍경으로 바뀌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프로필 메시지도 지워져 있었다. 큰일이었다. 우울한 일이라도 있는걸까. 그렇다고 말을 걸 수도 없었다. 아무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진은 대화창을 켰다 껐다만 반복했다. 마지막 줄에 남아있는 건 일주일 전에 썼던 노란 말풍선 ‘응! 잘 자!’ 였다. 



 간단하게 [ㅇㅇ] 같은 거라도 쓸 수 있었을텐데 그냥 확인만 하고 답장이 없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대화하다가 기분이 상한 부분이 있었을까 걱정도 됐다. 물론 여러번 오르내린 스크롤에 이상한 부분은 없었다. 


 그와 나누었던 소중한 대화기록을 처음부터 모조리 간직하고 있는 주진이었다. 스크롤을 올린 김에 우리의 소중한 기록을 처음부터 정독했다. 

 피식.

 웃음을 내고 말았다. 이렇게 재밌고 매력적인 사람이 있을 수가. 다시 한 번 가슴이 떨렸다. 그리고 이내 잊고 있던 심각함이 돌아왔다. 석양을 프로필 배경으로 하다니. 예삿일이 아니었다.


 혹시 다른 곳에 힘들다고 토로하지 않았을까 싶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카오스토리까지 왕복하고 있었다. 새 글은 없었다. 더 걱정이 됐다. 

 아, 그러고보니 요즘 올린 페이스북 상태 글에 그가 좋아요를 찍어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다른 친구들이나 선배들한테는 잘만 눌러주는 좋아요다. 왜 나한테만 눌러주지 않았을까? 주진은 다시 카톡창을 열어 지난 대화 로그를 살펴봤다.



 어떻게 해야 자연스럽게 그에게 카톡을 보낼 수 있을까? 이런 타이밍에서 가장 정답이 될 만한 카톡은 어떤 내용일까? 좀처럼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에잇! 모르겠다.

 결국 고민 끝에 [지금 뭐 하고 계세요?] 라는 글을 써서 보냈다. 그리고 재빨리 대화창 밖으로 나왔다. 그가 답장했는데 바로 1이 사라지면 자기가 기다리고 있었음을 알리는 꼴이니까. 애써 카톡을 껐다. 허나 마음만은 여전히 온라인 상태였다.




 10분이 지났다. 답이 없었다. 1도 없어지지 않았다. 그녀의 애달픔은 절망으로 채색되기 시작했다. 아예 확인조차 안 하고 있다니. 밑도 끝도 없이 메시지를 전송한 자신의 엄지손가락이 원망스러울 따름이었다.


‘이 시간에는 별다른 하는 일도 없을 텐데? 왜 확인을 안 하지? 내가 귀찮게 했나?’


 초조함에 애꿎은 손톱만 더욱 짧아졌다. 10분 전의 자신이 미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럴만도 하지, 아무 일도 없는데 그냥 연락하다니. 그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할 일 없어 보였을 거다. 어쩌면 부담스러웠을 거다. 아, 그러고보니 저번에 술자리에서도 그랬어. 2차로 자리를 옮길 때 분명 내 다음다음으로 가게에 입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내 옆자리가 아닌 건너편 테이블에 앉았었지. 그 전에 모임에서도 나한테 말 안 걸었었어. 계속 다른 사람들하고만 얘기했지. 

 맞네. 이 오빠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 거야.




 우울했다. 그러나 주진은 비굴해지고 싶지 않았다. 이제 그를 포기하겠노라 다짐했다. 힘들겠지만, 상처받겠지만 그래도 나를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매달리는 것보단 낫다. 주진은 아직도 답이 없는 그의 카톡 방을 삭제했다. 핸드폰을 침대 구석에 던진 후 방문을 닫았다. 집엔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발걸음을 옮기며 티를 벗어 아무데나 던졌다. 브래지어를 풀어 아무데나 던졌다. 보행을 유지하며 헐렁한 추리닝 바지를 벗었고 팬티마저 벗었다. 

 목욕이라도 하면 마음이 진정될까? 점점 쌀쌀해져가는 가을의 문턱이었다. 타일이 차가웠다.  질색하며 슬리퍼를 신고 샤워기를 잡았다. 밀려드는 한기에 몸을 부르르 떨며 아 맞다. 아직까지 열려있는 욕실 문을 닫았을 때,



<위잉->




거슬리는 소리가 귀를 스쳤다. 모기의 소리였다. 주진은 샤워기를 놓고 금방이라도 박수를 칠 것 같은 포즈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 쪽 벽 구석에 때를 모르고 살아있는 모기 한 마리가 있었다. 밝은 조명에도 불구, 눈에 버젓이 보일 정도로 컸다. 이미 열댓명은 물었겠구만, 날렵하게 박수를 쳤다. 손바닥을 여니 모기는 그대로 찌그러져 짧은 생을 마감해 있었다.



샤워기 물로 모기의 잔해를 씻어내며 주진은


‘어라? 피가 없네? 아무도 안 물었나봐.’


라고 잠깐 생각했지만 이내


‘어차피 놔뒀으면 누군가라도 물었겠지. 잘 한 거야.’


 생각하며 온수를 머리에 뿌렸다. 밀려오는 평온함에 잠시 기분이 좋았다.






내 안에서 식겁하여 날려버린 기회가 어디 한 둘일까? 현재는 답하지도 않았는데 이미 미래로 가서 단념해버린 어리석음을 우린 미련하다고 해야할 지 여리다고 해야할 지...

작가의 이전글 심리상담(마음공부)을 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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