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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

[오늘의 심리학 #103.]

Unloved Daughters: Getting to the Heart of Self-Compassion

 Why it's so hard to love and accept yourself

 Posted Feb 01, 2020 Peg Streep


https://www.psychologytoday.com/us/blog/tech-support/202002/unloved-daughters-getting-the-heart-self-compassion



* 주요 내용

- 자기연민(Self-compassion)과 자기애(Self-Love)는 어떻게 다를까?
- 자기애가 우리 문화에서 나쁜 평판을 받는 일이 많다. 자만하고 고집불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그러면 자기연민은 무엇인가? 인생의 실패나 좌절을 자신의 성격적 결함과 결부시켜 생각하는 습관이다.
- 실패나 좌절의 책임을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 생각하는 게 무조건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다.
- 그러나 안정 애착을 지닌 사람들은 실패나 좌절이 온전히 자신의 성격이나 특성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결과에 기여했을 지 모르는 많은 맥락적인 근거를 함께 사용한다.

- 건강한 자기애란 어떤 것인가? Kristin Neff 는 자기연민의 본질을 밝히며 건강한 자기연민의 특징을 규정했다.
 1. 판단이나 비판보다는 자신에게 친절과 이해를 넓히는 것.
 2. 더 큰 인간의 삶 속에서 자신의 경험을 인식하는 것.
 3. 자신의 아픈 감정을 지나치게 동일시하지 않고 계속 의식하는 것.

- 그러나 온전치 않은 유년기를 보낸 이들은 감정의 관리와 분리를 어려워한다.

- 어떻게 해야 무차별한 자기연민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1. 일이 예상대로 되지 않을 때 머릿 속에서 들려오는 자기 비판의 목소리에 빠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객관적인 사실들을 되내어라
 2. 타인의 긍정적 평가나 칭찬을 '누구나 하는 일'이라며 쳐내지 말라. 
 3. 일이 잘 풀릴 경우 자신이 하고 있는 성과를 확실히 인정하라.




* Bandi Thinks


© whitesession, 출처 Pixabay


 국내로 한정했을 때 최근 대중 심리학의 동향은 확실합니다. 위로와 힐링입니다.


 10년 전만 해도 "나는 나를 사랑해.", "누구도 내 권리를 침해할 수 없어." 라는 개념은 생소했습니다. 관계 중심 사회에서 적당히 양보하고, 혼나고, 배우고, 맞춰가는 게 미덕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자본의 유무가 힘을 상징하고, 있는 자가 없는 자에게 지급하는 급여가 그들의 사회적 권위까지 만들어내는 작금의 현실에서 소위 '갑'들은 지나치게 기고만장해졌고, '을'들은 지나치게 지쳤습니다.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건가?', '나는 왜 이렇게 못 하지?' 라며 자기 비난을 하고 있던 상황에서 '위로'와 '힐링'이 가지고 온 파급력은 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지치면 쉬어도 된다는 것. 무조건 내 잘못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나에게도 지켜낼 사적 영역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따뜻한 위로에 지금까지 억눌려 있던 '을'들은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이 용기가 마냥 좋게 발현되고 있느냐? 하면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억눌렸던 에너지는 팽창이 아니라 폭발을 하게 되거든요. 감정에선 이를 '분노'라고 표현하죠. 지금까지 자신을 억눌렀던 '갑'과 '자본'에 대한 분노, 이렇게 억눌릴 동안 자신을 보호해주지 않은 '사회 체제'와 '국가'에 대한 분노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갑'이 했던 말의 느낌이 나면 미리 가시를 세우고 찌르는 '방어 기제'까지 만들어 냈죠.


 그럼 '갑'이 지금까지 했던 말은 무엇일까요? 그들의 말은 100% 잘못되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문제가 되는 건 정도의 차이였을 뿐 메시지 자체는 좋아요. 좋은 게 좋은 거다. 너무 나만 내세우면 같이 갈 수 없다. 좋은 관계를 유지해서 더불어 살자. 이런 내용이 틀릴 순 없잖아요? 문제는 이런 메시지를 쓰는 메신저들의 속내에 '하지만 나는 너희를 써서 너희보다 앞서갈 것이다.'는 구릿함이 있었다는 거죠.




 '위로'와 '힐링'은 좋습니다. 비로소 개인을 챙길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분노가 섞인 개인 주의는 관계, 배려, 양보, 공생의 아름다움마저 갑의 잇속 챙기기로 여기며 뭉개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상담 현장에서도 느낄 수 있어요. 관계에 상처 입은 이들에게 과거 상처 받았던 관계를 떠올리고, 분노하게 하여 이제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겠다고 독을 품게 하는 상담사가 많아지고 있거든요. 정말 상담 이론을 수박 겉핥기로만 배운 채 심리 상담하겠다고 나서는 분들입니다. 


 심리상담 아니 인간의 궁극적 목적은 행복입니다. 행복을 위해선 건강, 나, 돈, 관계, 지혜 등 정말 많은 것이 필요합니다. 과거 있었던 상처를 드러내어 피투성이 전사로 만든 다음에 '그러니 앞으로 어떤 공격이 들어와도 너는 너 자신을 지켜야해.' 라고 얘기하며 토닥이면 어쩌자는 걸까요. 과거에 묶인 게 아니라 현재에 충실하게 해야죠. 미래로 나아갈 수 있게 해야죠.


© JillWellington, 출처 Pixabay



 과거 상처를 얘기하는 것이 불필요하다는 게 아닙니다. 그건 첫 걸음이라는 얘기를 하는 거에요. 당연히 상처 받은 이에게 가장 먼저 할 것은 어디를 어떻게 다쳐서 어떤 연고를 바를 지 파악하고, 붕대를 감아주는 거겠죠. 그러나 그렇게 회복한 다음엔 한 명의 건강한 개인으로써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그래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함께 걸어주어야 합니다.


 본 저널은 이 첫 걸음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대중 심리학을 통해 이젠 흔한 정보가 되어버린 '객관화'의 과정입니다. 모든 일을 무작정 자기 탓으로 돌리지 말고 상황 전체를 보며 인식하라는 거죠. 동시에 어떤 일이든 자신과 동일시하지 말고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라는 얘기입니다. 근데 심리 상담 많이 해보니까 알게 된 건데 저거 불가능합니다.


 정확하게는 어느 정도 마음의 힘이 있는 분들에게는 가능한데 저 정도로 심한 분들에겐 '객관화'가 되지 않아요. 왜냐하면 자기 연민, 자기 비난은 감정의 영역이기 때문이죠. 감정과 생각이 있을 때 이 둘을 균형 있게 컨트롤 할 수 있는 사람이 건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정의했을 때, 감정의 힘이 너무 강한 사람들은 이미 휩쓸려 있습니다. 진정 시키고 생각을 주입한다고 해서, 이론을 주입한다고 해서 쉽게 달라지지 않아요. 오히려 '그래. 객관적으로 보면 아닌데 나는 왜 계속 객관적으로 보지 못 할까?' 하며 자기 비난을 추가할 뿐입니다. 이것을 뜻하는 좋은 말이 있죠. 바로 '인지부조화'입니다.


 필자의 시선에서 현재 우리나라가 앓고 있는 가장 큰 아픔은 '인지부조화'입니다. 알만큼 알아요. 그러나 깊이 알만큼의 여유가 없어요. 그러니 감정과 생각이 맞지 않아 도리어 괴로워 하는 사람, 감정을 지키고자 모두를 내치고 공격하는 사람, 감정대로 생각을 맞추려고 생각을 단순화시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대중 뿐만 아니라 심리 상담 전문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요한 건 '옳고 그르다'가 아니에요. 인간 세상에 그런 게 얼마나 있겠어요. 더 따져봐야 하는 것은 바로 '균형'과 '정도'입니다. 그 밸런스를 맞추는 힘을 기르도록 돕는 게 심리 상담의 본질이라 생각합니다. 본 저널에서 소개한 방법이 적용 가능하다면 아마 당신은 심리적 근육이 꽤 있는 분일 거에요. 혼자서도 충분하실 거고, 전문가의 코칭이 함께 한다면 더더욱 빨리 안정을 찾으실 겁니다. 그러나 소개한 방법대로 안 된다면? 당신은 정상입니다. 되는 분들 별로 안 계세요. 그러니 지금까지 그 문제로 힘든 거 아니겠나요? 그러니 '나는 왜 이렇지?' 하며 자책하지 마시고 심리 상담센터의 문을 두드려보세요.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 거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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