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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든지 다칠 위험을 품고 상담을 한다.

나는 목숨 걸고 상담한다

 상담을 하며 내가 혹시 내담자에게 비현실적인 희망을 팔고 있지 않나 경계한다.

 팔이 없는 사람한테 "힘내세요! 조만간 손으로 짚을 수 있어요!" 라 하는 게 위로가 아닌 조롱이듯

 내담자에게 놓여진 삶을 배제한 '그저 기분 좋은 소리'는 힐링이 아니라 독이다.

 안전하게 가고 싶은 태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자만, 상담자 역시 현실 도피를 하고 있는 병적 낭만 등의 이유로 때때로 상담자는 상담이 아닌 립서비스를 판다. 그래선 안 된다. 상담사라는 직업에 얄팍한 위안을 가지며 '어때? 나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있어!' 라고 하지만, 사실 내담자를 더 더 돌아올 수 없는 깊은 구렁텅이로 떠미는 행위이다. 눈을 뜨고 바라보는 게 세상인데 눈 감고 웃는 법을 가르쳐주면 어떡하나.

 내담자에게 현실을 볼 수 있게 하라.

 내 기준, 극한의 따스함을 가진 말이지만 누군가에겐 매정하게 들릴 말이기도 하다.

 "내담자는 이미 현실에 치여 삶의 절벽에 놓여 있어요. 그런 사람에게 또 현실을 들먹이다니 너무 잔인하지 않아요?"

 귀에 들리듯 생생하군.

 허나, 이는 내담자를 '자기 삶에 책임질 수 있는 하나의 어른'보다 '나약하고 도움 받아야 하는 어린 아이'로 보기 때문이다.

 당연히 내담자의 영혼이 얼마나 강인해졌는지 단계에 따라 직면보다 공감을, 할 말 삼키고 우선 토닥을 할 때도 있지. 허나, 이는 전략 상 카드를 뒤로 뺀 거지, 거짓말이 아니다. 상담사는 결코 내담자에게 거짓말을 해선 안 된다.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믿었고, 배신 당했는데 상담사에게까지 그렇다니 끔찍하지 않은가?

 내담자가 자기 삶에 책임을 지고 '사는 방향'으로 돌아설 수 있게 돕는 조력자. 상담은 그런 면에서 예술적 행위이다. 아무나 넘볼 수 있으나, 누구도 쉽지 않은 일이다. 유리를 세공하듯 허나 행동은 거침 없게 해나가야 한다.

 삶의 현실은 잔인하고 아름답다. 세부적으로 보면 셀 수 없이 다양하지만, 결국 모든 상담의 방향은 여기로 귀결된다.

 1. 삶은 고통이다.

 2. 모든 일엔 나의 기여가 있고, 내가 불러일으켰다.

 상담은 내담자가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다. 

 삶은 고통이다. 눈 먼 낙관은 편식이다. 

 삶에 어디 기쁜 일만 있겠는가? 우린 사랑하고, 함께하기에 아픔을 나눠 가진다. 

 슬플 때 춤 추고, 화날 때 안아주는 게 삶이다. 삶에 고통이 있음을 받아들이지 못 하는 상담자는 내담자의 좋고 건강한(그렇다고 평가 내린) 모습만을 사랑한다. 삶 전체가 아닌 편린만 끌어 안는다. 존재의 부정이다.

 모든 일엔 나의 기여가 있고, 내가 불러일으켰다. 그렇기에 내겐 주체적인 힘이 있다.

 내게 남은 기억 속에 모든 탓을 상대에게 넘긴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지는 도망 뿐이다. 마음 속 꾹꾹 눌러담아 놓은 기억은 자꾸 고이고 썪는다. 영혼은 안다. 내가 병들고 있음을.

 방향은 명료하다. 우린 모두 가해자이다. 이를 받아들일 수 있음은, 모든 일에 나의 영향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 나아가 모든 선택에 내가 책임을 질 수 있음을 뜻한다. 정말 강인한 사람만이 할 수 있다. 내가 만나는 내담자가 이럴 수 있다면 얼마나 감동적인 일인가.

 이런 마음으로 상담에 임하면 상담 한 건 한 건이 결코 가볍지 않다.

 매 순간이 죽음의 장이다.

 평생 미움 받을까 두려워 만나는 사람마다 사랑을 얘기하는 이에게 얼마나 많은 원망과 분노가 있겠는가?

 이 사람도 싫고, 저 사람도 밉고 세상에 화날 일이 너무 많다고 하는 이에게 얼마나 많은 두려움과 불안이 있겠는가?

 모두가 당연스레 생각하는 기준과 도덕을 의심도 없이 지키고 있는 이에게 얼마나 많은 혼란과 방황이 있겠는가?

 그런 이의 삶을 사랑하고 존중하며 생명의 길로 안내하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저항이 있겠는가? 감정이 있겠는가?

 아는 선배는 상담을 하다 내담자에게 멱살을 잡혔었다. 집단 상담이었고, 주변 사람들이 말렸기에 큰 피해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만약 혼자였다면?

 나도 마찬가지이다. 심리극 도중 강렬한 전이 감정을 느낀 내담자가 내게 책상을 던지고 죽여버리겠다고 달려들고 자해를 하는 등 위기의 순간도 적지 않다. 그럴 때 내담자는 삶 평생에 쌓인 자신의 울분을 상담사를 통해 털어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상담자가 고작 자기 안전, 자기 목숨 지키겠다고 역동을 거두는 순간 내담자의 생생한 저항은 어두운 동굴에 묻힌다.

 맘 속 평생의 은사님인 대화스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내 목숨으로 누군가의 삶에 진정한 평화가 올 수 있다면 기꺼이 웃으며, 눈물 흘리며 바치고 싶다." 고.

 그게 가능해...? 했는데, 이제 조금, 아주 조금은 대화스님이 하신 말씀의 뜻을 알 것 같다.

 얼마든지 다칠 위험을 품고 상담을 한다.

 당신은 그러했군요. 저는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이 살기를 바라요. 그 삶을 존중해요. 

 이런 마음으로 온전히 내담자의 삶을, 내담자의 영혼을 보려 노력한다.

 물론 아직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 방향으로 보려 한다.

 나를 거친, 거칠 이들에게 부디 현실을 바라볼 힘과 안녕 있기를.

 미움과 원망 딛고 내담자를 사랑하고 존중할 수 있는 그릇을 허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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