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라는 이름의 반려(伴侶)
슬픔
슬픔아, 너도 배가 고프면 먹이를 쫓는구나.
슬픔아, 너도 목이 마르면 물을 찾는구나.
누군가 그리우면,
네 눈물로 이리 한 바가지씩 흠뻑 쏟아내는구나.
그리 눈물이 많아 목이 마른 것이냐?
슬픔아, 나도 네가 그립다만
스스로 제 설움을 알아차리지 못한단다.
아무리 슬픈 감정이라도
나 혼자서는 이리 힘들게 참아 내고,
온갖 기쁨에 겨운 때라도
너 없이는 손에 잡히는 날 하루도 없단다.
슬픔아, 그리움이 많아 그리 눈물이 흔한 것이냐?
[슬픔이라는 이름의 반려(伴侶)]
그 녀석은 예고도 없이 찾아와 문 앞에 웅크리고 앉아 있곤 했다.
어떤 날은 배가 고픈지 내 허기를 야금야금 갉아먹었고, 어떤 날은 목이 마른지 내 눈을 발갛게 달구며 물기를 찾아 헤맸다. 나는 그 녀석의 이름을 '슬픔'이라 불렀다.
사람들은 왜 그런 고약한 녀석을 집 안에 들이느냐고 혀를 찼지만, 나는 녀석이 쏟아내는 눈물의 양을 보며 녀석이 얼마나 지독한 그리움을 앓고 있는지 짐작할 뿐이었다.
"너는 그리 눈물이 많아 목이 마른 것이냐."
나는 녀석의 젖은 털을 쓰다듬듯 혼잣말을 내뱉었다. 녀석은 대답 대신 내 가슴팍에 고개를 묻고 한 바가지씩 눈물을 쏟아냈다. 녀석이 울 때면 방 안은 금세 눅눅한 그리움의 냄새로 가득 찼다.
사실 고백하자면, 나 역시 그 녀석이 그리울 때가 있었다. 녀석이 잠시 집을 비운 사이 찾아오는 고요는 평온함이라기보다 무색무취의 진공 상태에 가까웠다. 나는 스스로 내 설움을 알아차릴 만큼 영민하지 못해서, 녀석이 대신 울어주지 않으면 내 마음이 얼마나 타들어 가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둔한 주인이었다.
혼자서는 그 무거운 감정들을 참아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신기한 일은, 녀석이 곁에 없을 때는 아무리 기쁜 일이 생겨도 그것이 내 손에 잡히질 않았다는 점이다. 슬픔이라는 녀석이 핥고 간 자리에 생긴 팽팽한 감각이 있어야만, 비로소 기쁨의 온기도 느낄 수 있었다.
어느덧 해가 저물고 방 안이 어두워졌다. 녀석이 또다시 목이 마른 모양인지 끄윽끄윽 소리를 내며 내 눈가를 적시기 시작했다. 나는 녀석을 밀어내는 대신, 기꺼이 내 눈물을 먹이로 내주었다.
"그래, 실컷 마시렴. 그리움이 많아 그리 눈물이 흔한 것이니 어쩌겠니."
슬픔이 내 안에서 한껏 배를 불리고 잠이 드는 밤. 역설적이게도 나는 그제야 아주 조금, 내일의 기쁨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슬픔은 나를 파괴하러 온 괴물이 아니라, 내가 사람임을 잊지 않게 하려는 가장 충직하고 눈물 많은 반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