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5화)

슬픔이라는 이름의 반려(伴侶)

by 씨킴

슬픔


슬픔아, 너도 배가 고프면 먹이를 쫓는구나.

슬픔아, 너도 목이 마르면 물을 찾는구나.

누군가 그리우면,

네 눈물로 이리 한 바가지씩 흠뻑 쏟아내는구나.

그리 눈물이 많아 목이 마른 것이냐?


슬픔아, 나도 네가 그립다만

스스로 제 설움을 알아차리지 못한단다.

아무리 슬픈 감정이라도

나 혼자서는 이리 힘들게 참아 내고,

온갖 기쁨에 겨운 때라도

너 없이는 손에 잡히는 날 하루도 없단다.

슬픔아, 그리움이 많아 그리 눈물이 흔한 것이냐?











[슬픔이라는 이름의 반려(伴侶)]


​그 녀석은 예고도 없이 찾아와 문 앞에 웅크리고 앉아 있곤 했다.

​어떤 날은 배가 고픈지 내 허기를 야금야금 갉아먹었고, 어떤 날은 목이 마른지 내 눈을 발갛게 달구며 물기를 찾아 헤맸다. 나는 그 녀석의 이름을 '슬픔'이라 불렀다.

사람들은 왜 그런 고약한 녀석을 집 안에 들이느냐고 혀를 찼지만, 나는 녀석이 쏟아내는 눈물의 양을 보며 녀석이 얼마나 지독한 그리움을 앓고 있는지 짐작할 뿐이었다.


​"너는 그리 눈물이 많아 목이 마른 것이냐."


​나는 녀석의 젖은 털을 쓰다듬듯 혼잣말을 내뱉었다. 녀석은 대답 대신 내 가슴팍에 고개를 묻고 한 바가지씩 눈물을 쏟아냈다. 녀석이 울 때면 방 안은 금세 눅눅한 그리움의 냄새로 가득 찼다.

​사실 고백하자면, 나 역시 그 녀석이 그리울 때가 있었다. 녀석이 잠시 집을 비운 사이 찾아오는 고요는 평온함이라기보다 무색무취의 진공 상태에 가까웠다. 나는 스스로 내 설움을 알아차릴 만큼 영민하지 못해서, 녀석이 대신 울어주지 않으면 내 마음이 얼마나 타들어 가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둔한 주인이었다.

​혼자서는 그 무거운 감정들을 참아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신기한 일은, 녀석이 곁에 없을 때는 아무리 기쁜 일이 생겨도 그것이 내 손에 잡히질 않았다는 점이다. 슬픔이라는 녀석이 핥고 간 자리에 생긴 팽팽한 감각이 있어야만, 비로소 기쁨의 온기도 느낄 수 있었다.

​어느덧 해가 저물고 방 안이 어두워졌다. 녀석이 또다시 목이 마른 모양인지 끄윽끄윽 소리를 내며 내 눈가를 적시기 시작했다. 나는 녀석을 밀어내는 대신, 기꺼이 내 눈물을 먹이로 내주었다.


​"그래, 실컷 마시렴. 그리움이 많아 그리 눈물이 흔한 것이니 어쩌겠니."


​슬픔이 내 안에서 한껏 배를 불리고 잠이 드는 밤. 역설적이게도 나는 그제야 아주 조금, 내일의 기쁨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슬픔은 나를 파괴하러 온 괴물이 아니라, 내가 사람임을 잊지 않게 하려는 가장 충직하고 눈물 많은 반려였다.

작가의 이전글영화나 한 편(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