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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왕자 Sep 13. 2024

필요충분조건

절실과 충분사이 방정식  

제 5 화 필요충분 조건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다.     


가슴속에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저는 별을 헤며 어머니를 불러 봅니다.           


운명은 멀지만 앞에서 다가오고

숙명은 뒤통수를 쳐서 항상 골 때린다.  

매력남으로 환골탈태한 찌질남 한강수와 외모 지상주의 금사빠녀(금방 사랑에 빠지는 여자) 평지은의 숙명적인 사랑을 이해하려면 첫 만남을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절실함과 충분함 사이 방정식을 풀어가는 그들만의 필요충분조건을 살펴보자.




평지은은 퇴근 하면서 항상 병원 응급실 앞을 지난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실 돌아가면 집까지 10분 더 걸리는 길인데도 10분이 어딘지 지름길로 가서 그 시간이나마 줄이려고 항상 응급실 앞을 지난다.

평지은은 지나면서 건강에 대해 깨닫고 감사한다.

아프지 않은 것만으로도... 구급차 싸이렌의 주인공이 내가 아님에 감사하다.      


저 멀리 찌질남이 보인다.  감사한 마음이 싹 가신다.      


“아니 왜 내 퇴근시간에 일부러 맞추는 것도 아니고...

 왜 이 고귀한 내 앞에 저 찌질이는 얼쩡거리는 거야"

   

정말 묻고 싶었다.  찌질남 본인도 본인이 한심하다는 것을 자각하는지를...     

과학적으로도 증명되지 않는 이런 찌찔함은 뇌 공간의 낭비로 평지은이 연구하는 AI를 하루 빨리 더 연구하여...     


“아니 가만 있어봐...”     


“만약 내가 연구개발한 AI를 저 찌질남 뇌에 탑재시켜서

   아인슈타인으로 만들 수 있을까 ?”     


“아니다. 아니다. 절대 아니다.”     


평지은 이런 생각 자체가 시간의 낭비요, 기억의 낭비요...

더 나아가 인생의 낭비가 틀림없다고 믿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여느 때와 퇴근하다가 병원 앞 긴급한 싸이렌 소리가 그녀의 귀를 자극했다. 늘 들을 수 있던 소리였지만 오늘따라 옥신각신 사람들의 웅성대는 소리가 신경이 쓰였다.      


“아니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다니까요.”     


“태울 때는 이렇게 생긴 남자분 이었는데....”     


“병원 도착해보니 구급차에 다른 남자가 누워   있는거라니까요”     


“아니 그래도 일단 병실로 옮겨서 일단 응급 진찰을 받아야...”


번개를 맞고 응급실로 가는 구급차 안에서 매력남으로 변신한 한강수

부산하게 돌아가는 응급실 병원 앞에서 남자가 옮겨지며 뭔가가 뚝 떨어지는 것이 평지은의 눈에 들어왔다. ‘지갑’ 이었다.  무심코 지갑을 주어 들었다. 돈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평지은. 어쩌지 하다가 병원으로 지갑을 갖다 주려니 누군지 몰라서 지갑을 열어본 평지은.  다 낡아빠진 허름한 지갑 안에 빛바랜 신분증이 있었다.      


“앗... 이 사람은 ?”     


바로..... 찌질남이었다.      


“인연이 질기다 못해.. 이런 일이 생기네...”     


그렇다고 응급실에 실려간 사람의 지갑을 그냥 버리고 갈 수도 없는 상황.  지갑을 들고 들어가 데스크를 찾은 평지은.     


“저... 아까 급히 여기 응급실에 들어온...”     


평지은을 보는 듯 마는 듯 다급한 의료진의 한마디.     


“아 저 환자분 여자친구 이시군요.”     


“제가요 ?  아니요.. 절대 절대 아니에요”     


평지은은 평상시보다 100db로 소리가 높아졌다.

세상 살다보니 말도 안되는 일도 있었지만 지금은 현실이 아닌 것처럼... 말도 안 되는 상황의 파노라마다.     


“저는 그냥 지갑을 주워서.... ”     


“지금 긴급 수술을 할 수도 있어서 꼭 수술 동의가 필요해요.”     


사람 생명이 달려있는데.. 여친 운운할 수 없는 평지은은

등 떠 밀려서 찌질남 앞에 의료진과 함께 서게 됐다.


“제가 이 사람 여자 친구는 아니지만... ”     


“아니 이 남자는 대체 누구지? ”     


평지은의 눈망울에 앞에 누워 있는 남자가 망막을 덮었다. 심장이 요동치며 서 있을 수 없을 정도여서 주저앉았다.

세상 살면서 첫 눈에 반한다는 말이...

콩깍지가 아예 평지은을 덮어버린 상황.

그녀가 꿈꾸는 완벽한 사랑이 여기 응급실 침상에 누워 있었다.     


“저 여자 친구분이라도 수술 동의를 해주셔야...”     


“물론이죠. 저는 이 분과 결혼할 사이에요”


결혼 ? 평지은은 자신의 입을 꼬매고 싶었다. 진도가 나가도 너무 빨리 너무 멀리 나간 상황.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아니요. 결혼 했어요. ”

    

“전 이 사람의 아내에요”     


“네. 현재 번개를 맞아서 심장 정지 상태였는데...

가늘게 맥박이 살아나서.. 응급 수술이 필요합니다.”     


“또 혈액형이 같아서 아내 분께서 바로 수혈을 진행해주시면 더 빠른 응급처치가 가능하겠습니다. ”     


“물론이죠.. 제 피 다 뽑아서 수혈해도 좋아요”     


이미 결혼한 지 몇 년 지난 사이처럼 되어버린 상황.     


“아니야.. 이건 숙명이야”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한강수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병원 응급실에서 나와 일주일이 지난 후였다.

평지은은 연구실에 삼일 휴가를 내고 한강수의 집에서 매력남을 지극정성으로 간호했다. 옥탑방 한 칸 이었지만 평지은은 이 곳을 밀고 닦고 쓸고 사람 사는 집으로 만들었다. 지금껏 이렇게 모성애가 발동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이런 책임감은 보통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에게 발동되는데 어찌하여 여자인 내가 이렇게 이 남자를 돌보고 싶은지... 아리송했다.       


매력남이 서서히 눈을 뜨고 있었다.      


“저... 이제 정신이 좀 드세요?”     


한강수의 눈에 평지은이 들어왔다. 한강수의 눈이 커졌다.      


“어머니... 어머니... ”     


한강수는 아픈 몸을 일으켜 세우려 했다.      


“뭐야.. 이 남자 날 보자마자 어머니래 ”     


한강수의 눈에 평지은의 모습은 돌아가신 어머니와 흡사했다. 이것이 꿈이라도 좋았다. 어머니를 다시 뵐 수만 있다면 지옥에라도 찾아가고 싶었고 어머니를 지켜 드리지 못한 불효가 한강수의 마음을 뒤 흔들었다.      


“저는 당신의 어머니가 아니에요.”     


한강수는 평지은의 손을 꼭 잡았다.      


“어머니... ”     


차마 어머니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평지은의 손에 얼굴을 묻고 흐느껴 우는 한강수. 너무나 대성통곡을 한지라 감정의 준비가 안 된 평지은도 눈물이 떨어졌다.          

어머니를 닮은 평지은을 어머니의 환생으로 생각한 한강수

신이 모든 것을 다 돌볼 수 없어서 어머니라는 존재를 인간에게 보냈다고 한다. 한강수에게 있어 어머니는 신과 같은 존재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한강수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변화된 모습을 보았다. 실로 감탄할 따름이었다. 최첨단 성형수술로도 이렇게는 불가능해 보였다.     


“내가 폭풍 속에서 번개를 맞은 거구나...”     


“살이 있는 게 기적인데...”     


“어머니가 환생하셔서 날 살려 주셨구나”       


새벽으로 넘어가는 시간이 되었다. 두 사람의 대화만이 어두운 방에 울려 퍼졌다. 한강수는 지금까지 모든 스토리를 어머니 같은 평지은에게 실토했다.  지금까지 학교에서 매 맞고 무시 받고 대학도 못가고 허드렛일로 그 날 벌어 그 날 먹고 평생 찌질남으로 살아온 한강수의 삶이 펼쳐졌다.        


“아이고 이 남자가 바로 내가 혐오하던 찌질남이었구나”          


믿기 어려웠다. 이렇게 잘 생긴 매력남이 찌질남이었다니...     


“이게 가능한 일인가 ?”     


이렇게 스마트하게 보이고 눈길 손길하나만 움직여도 무에서 유를 창조할 것 같은  조각 미남이 찌질 했었다는 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내가 보이는 것만 믿는 과학자라서 그런가?”     


아니었다. 그녀는 보이지 않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고 우주의 블랙에너지, 양자 물리학 등 과학으로는 증명되기 힘든 과학적 사실에도 관심이 많았다.      

인생에는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일들이 많이 생긴다.

“이건 기적이야”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으로 두 손으로 고개를 감싼 평지은에게 한강수가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도와주세요 어머니” 한강수는 절실했다.      


“당신이 바라는 게 뭔지 정확히 말해 봐요.”


평지은은 단호히 말했다.      


“저는 당신의 어머니가 아니고.... 음... 아내인데... 음 결혼은 안했고...”     


계속 눈물을 흘리는 한강수는 고개를 떨구고며 평지은에게 말했다.      


“어머니... 제가 어떻게든 돈을 벌어서 어머니를 모시겠습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에요? 제 나이가 몇인데...

절 어머니라니.. ”     


“그리고 돈은 제가 벌어도 돼요.”      


“전 완벽한 남자가 되고 싶어요”     


“요즘 Hot한 구매대행을 통해 돈도 많이 벌고 싶고 무술 고단자도 되고 싶고... 무엇이든지 빨리 돈을 벌어서...어떻게든 어머니를...”     


이렇게 말하는 한강수를 평지은은 빤히 쳐다봤다.      


“초능력이 필요한데... ”


그렇다. 한강수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서는 초능력이 필요했고 그렇게 되려면 아직 임상 실험이 안 된 그녀가 연구하는 최첨단 AI를 한강수의 뇌에 탑재하여 실험해 보는 방법뿐이었다. 이건 과학자의 지적 호기심 문제가 아니라 한 인간의 생명과도 직결되며 생명 윤리에도 부합해야할 과학자의 책무였다.     


어짜피 이렇게 된 바에야 평지은도 현재의 상황을 한강수에게 자세히 설명했다.      


“어머니 저는 어짜피 죽다가 살아났고 이제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합니다”     


“제가 과학 임상 실험을 하고 잘 못 되어도 저는 여한이 없습니다”        


평지은은 눈을 감았다. 결단과 용기가 필요했다. 이미 한강수의 아내가 되기로 마음먹었고 심지어 그는 자신을 어머니라고 부르는 마당에 뭘 더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과학자의 본분은 도전과 실패를 거듭해 전진과 퇴보를 이어가며 나아가는 삶의 궤적이다.        


평지은은 다짐했다. 이 남자를 온달장군으로 만들어 놓겠다고. 그리고 세계 최고이자 최강의 남자로 바꿔 놓겠다고 ...     


평지은에게 모성애를 느끼며 불효를 씻어내려는 한강수.   

평강공주의 마음으로 한강수의 인생을 레벨업 시키려는 과학자 평지은. 이것이 한강수와 평지은이 만난 숙명의 필요충분조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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