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키레쌤 Sep 01. 2022

단어 때문에 영어가 어려워요!

많은 학생들의 가장 큰 고민이자 끝나지 않는 숙제와 같은 존재는 단어 암기이다.

요즘에는 한글을 다 떼기도 전에 영어 단어부터 공부하면서 글자를 익히는 영유아들도 많으니

고등학교 졸업하는 순간까지 최소 10년 이상 영어 단어와 씨름을 하며 살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렇듯 세대를 불문하고 대한민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는 학생이라면 어릴 때부터 긴 세월 동안 단어 암기를 하는데 왜 학생들은 어휘력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찢어지고 까매진 필자의 학창시절 단어책


사실 어휘력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아니, 어휘력이 문제가 아니다.


매년 수업 시간에 단어 암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평범하게 학교 교육과정을 거치며 남들 다 보는 단어책 한 두 권쯤을 공부했던 학생이라면 시험 보는데 기본적인 어휘력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고 하면 학생들의 반응은 이렇다.


단어책 아무리 암기해도 시험에 모르는 단어가 나오는걸요?
단어 때문에 영어가 어려워요


이런 말과 함께 금세 다들 끄덕끄덕하며 동조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뭐.. 맞는 말이기도 하다.

시중 서점에 있는 수많은 단어장에는 나오지 않는 단어들도 가끔씩 모의고사나 수능 지문에 나오기도 하고 그중 일부는 나도 처음 보는 단어들도 종종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어려운 단어들은 정작 시험에서 답을 고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다.

심지어 '이 단어'라고 하고 넘기고 지문을 읽어 내려가도 답을 고르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음을 실제 문제 풀이를 하며 보여주기도 한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일까?


나는 독해력의 차이라고 말하고 싶다.

영어를 비롯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언어들은 단어들을 문법이라 불리는 일정한 규칙들로 조합해서 문장을 만들어서 대화에 사용을 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말로 하는 대화와 마찬가지로 눈으로 읽는 글도 전체 문장의 대부분의 어휘들은 기본적인 수준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래 문장을 한번 살펴보자.


If there is anyone out there who still doubts that America is a place where all things are possible, who still wonders if the dream of our founders is alive in our time, who still questions the power of our democracy, tonight is your answer.


버락 오바마 전 미 대통령이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후 시카고에서 했던 연설문의 첫인사 말인데

처음 이 글을 보면 한 문장이 굉장히 길어서 끝까지 읽기도 힘들다고 느낄 것이다.


하지만 하나씩 천천히 들여다보면


if / there / is / America / is / place

things / possible / tonight / answer


등과 같이 쉬운 단어들이 문장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쉬운 단어들이 문장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는데 단어가 모자라다고 호소하는 학생들은

doubt / founders과 같은 단어들이나

who still doubts ~ 과 같이

문장이 안 끝나고 계속 길어지는 듯한 느낌을 주는 단어들의 나열에만 눈이 고정되어서

문장 전체를 끝까지 보지도 못하고 지레 포기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 문장을 쉽게 볼 수 있는 독해력을 가진 사람들은 아래와 같이 본다.


if there is anyone ~ (who ~ , who ~ , who ~ ), tonight is your answer.

만약 누군가가 있다면 (누군가1 / 누군가2 / 누군가3), 오늘 밤이 여러분의 대답이다.


정도로 조금 애매하지만 문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큰 틀과 그 속의 주어, 동사와 같은 핵심 요소들을 먼저 잡는다.


이 과정에서 어렵거나 신경 쓰이는 단어/문법 구조는 챙기지 않는다.


마무리에 '오늘 밤이 여러분의 대답이다'와 같이 조금 이상한 뉘앙스를 풍기는 해석을 할 수도 있지만

이런 말을 이해하기 쉽게 바꾸는 건 번역에서 할 일이므로 당장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일단은 문장 전체의 큰 틀을 잡는 것이다.


이 문장을 분석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문법 지식은 중고등학교 내내 배우는 가정법과 관계대명사 정도이다. 이 두 개의 문법만 활용해서 오바마 전 대통령은

'만약 이러이러한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면 오늘 밤 여러분이 보여준 선거 결과가 그 답이 될 것입니다'

라는 의미를 전달한 것이다.


tonight is your answer이라는 말로 선거 승리라는 결과가 자신을 지지해준 시민들이 보여준 대답이라는 멋진 비유적 표현이 위에 있는 긴 문장 속에 들어있는 핵심 문장인 것이다.


핵심 문장은 간단하고 짧은데 문장 전체가 길다고 포기하고 단어가 몇 개 어렵다고 포기하는 학생들은 여기까지 다다르지 못한다.




풍부한 어휘력을 바탕으로 디테일하거나 비유적인 표현을 이해하는 건 부수적인 것이다.

핵심은 어휘력이 아니라 문장이 어떻게 구성되어있는지를 빠르게 파악하면서 끝까지 읽어내고 핵심적인 메시지를 추출해내는 독해 능력이다.


이 독해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 1순위로 공부해야 할 것은 단어 암기가 아니라 단어들을 일정한 규칙으로 모아 문장을 만들어주는 문법을 익히고 실제로 사용해보는 것이다.


사전에 있는 단어 암기하듯이 '관계대명사는 뭐고 분사는 무엇이다'와 같은 사전적 개념을 나타내는

what(무엇)을 공부하라는 것이 아니다.


관계대명사 등의 문법 요소들을 왜 쓰는지(why), 어떻게 쓰는지(how)를 공부해야 한다.

문법을 what의 방식으로 공부하기 때문에 학교, 학원 등에서 그 부분을 다룰 때에만

뜻이 매우 긴 숙어 암기하듯이 암기해버리고 독해를 할 때에는 그 지식을 꺼내서 사용할 줄 모른 채로 문장을 보게 되고 이내 포기하게 된다.


문법은 죽어있는 정지된 지식이 아니라 움직이고 살아있는 지식이다.

왜(why) 5 형식을 배우는지, 시제를 배우는지, 관계사를 공부하는지 그 목적을 먼저 생각해야 하고

어떻게(how) 그 문법을 문장으로 만들어서 활용할 수 있는지

짧게라도 직접 글쓰기를 해봐야 다른 사람이 쓴 글을 보더라도 문장 구조가 눈에 들어올 수 있다.


예를 들어서 관계대명사를 공부한다고 하면

who, which, 주격, 목격적 이런 개념만 암기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개념 설명과 함께 나와있는

He is tennis player who can win this game.

과 같은 예문을 함께 보면서


1) 그가 어떤 테니스 선수인지에 대한 추가 정보를 나타내기 위해 관계대명사를 이용했다

2) He is tennis player + He can win the game이라는 두 문장을 간결하게 한 문장으로 표현하기 위해 관계대명사를 사용했다

3) 두 문장을 한 문장으로 합칠 때 중복되는 단어를 어떻게 없애고 합치는지 알게 되었다

4) 관계대명사에 포함된 문장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내용, 즉 추가적인 정보임을 알게 되었다


와 같이 why(이유)와 how(방법)을 찾고 이해해야 한다.


이를 할 수 있다면 스스로 단어만 바꿔서 다른 문장으로 얼마든지 응용할 수 있게 된다.

나중에는 어떤 문장을 보더라도 위 패턴의 관계대명사가 사용된 문장은 쉽게 독해할 수 있게 되고

문장의 핵심 내용도 더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된다.


He is the greatest baseball player who has 10 cars.

-> He is the greatest baseball player가 핵심 정보

-> has 10 cars는 추가 정보


She is student who loves him.

-> She is student가 핵심 정보

-> loves him은 추가 정보


He whom she loves loves me.

-> He loves me가 핵심 정보

-> she loves는 추가 정보



이유(Why)와 방법(How)의 방식으로 공부를 하는 학생이라면 핵심 정보와 추가 정보를 구분하는 것이 문법 공부의 핵심임을 알 수 있을 것이고 아래의 긴 문장도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정도는 아주 쉽게 보일 것이다.


As they move into September with a trip to the Tampa Bay area for the conclusion of a two-coast, three-city, 10-game, 11-day trip, the Yankees’ mission for the final leg of the season is hits.


As로 시작하는 부사절 등등 다 넘어가고 핵심 내용이 있는 주된 문장을 찾을 수 있으므로 이 문장의 핵심은


Yankees' mission is hits.


-> 뉴욕 양키즈 팀에게 필요한 건 타격(안타, 홈런 등의 공격력)이다.


임을 알 수 있다.




이런 독해력을 최우선으로 밑바탕을 만들면서 단어책 등으로 어휘력을 보충하면 아무리 긴 문장이라도

큰 틀 -> 중간 틀 -> 작은 틀 순으로 글 전체를 볼 수 있는 독해 능력이 만들어진다.


실제로 수업에서 학생들은 이미 중고등학교 내내 여러 교재, 학교, 학원, 인강 등으로 문법 수업을 수 차례 들었던 경험이 있었지만 왜 배웠는지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명확하게 아는 학생들은 많지 않다.


그래서 이를 조금 수정하는 방향으로 문법 수업을 짧게는 2주에서 길면 한 달 정도 진행하며

교정만 해주었을 뿐이었는데도 독해력이 크게 상승하고 문제 풀이 능력까지도 향상된 학생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어휘력이라는 개념은 훌륭한 엑스트라의 역할이지 주인공이 아니다.

주인공을 보조하며 주인공을 돋보이게 해주는 약방의 감초와 같은 역할이라서 때로는 존재감이 너무 없기도 하고 때로는 주인공을 압도할 정도로 눈에 띄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결국 본질은 보조 역할이다.


보조 역할이 극의 주인공을 압도해버리면 제대로 스토리가 만들어질 수 없는 것처럼 영어 공부를 할 때에도 단어 암기하느라 더 중요한 문장이 주는 메시지를 파악하지 못하고 허우적대는 주객전도 상황을 만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이전 01화 Intro. “선생님, 그거 시험에 나오나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