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모의고사를 치르고 난 후 상담을 할 때마다 반에서 한 두 명은 꼭 이런 이야기를 나에게 하곤 한다.
아 듣기만 다 맞았으면 80점 넘는 건데 아쉬워요
듣는 나도 아쉽다...
그렇다면 이런 학생들에겐 어떤 처방전이 필요할까?
답은 단순하다.
듣기를 하면 된다.
사실 모의고사나 수능 기준으로 3등급 언저리가 나오는 학생들 대상으로 강의를 하면서 보면 따로 시간을 내서 듣기를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은 많지 않다.
듣기를 따로 공부한다는 것 자체가 영어를 잘 못한다는 낙인과도 같아서 더 안 한다는 학생들도 있다.
많은 고등학생들에게 듣기란 초등학교, 중학교 때 학습지, 어학원 등을 통해 공부했던 영역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리고 이 정도 수준으로도 고등학교 올라와서 진행하는 듣기 시험에서는 처음부터 다들 꽤나 높은 점수를 받기 때문에 이때부터 학생들은 듣기에 대해서는 긴장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나는 그래도 듣기는 잘하네?!
그렇게 고등학교 1학년, 2학년을 지나 3학년을 맞이하는 동안 듣기 영역에 대한 시간 투자는 사실상 거의 제로에 가까워진다.
실제로 계산을 해보면 꽤나 충격적인 결과가 나온다.
1, 2학년은 매년 4회, 3학년은 수능을 제외하면 6회의 모의고사를 치른다.
대한민국의 고등학생이라면 3년 동안 총 14회의 정규 모의고사를 치를 수 있고
영어 듣기 시간은 20분 남짓이므로 3년 동안 약 280분 정도의 시간을 듣기에 할애하는 셈이다.
고3 때는 그래도 나름 실전 대비를 위해서 따로 사설 모의고사를 구입해서 치르는 학생들도 있기 때문에 여기에 몇 회 분량의 듣기 시간을 더한다고 해도 500분~600분 정도가 최대라는 계산이 나온다.
3년 동안 영어 듣기에 할애한 시간이 약 10시간 정도가 되는 것이다.
너무 억측이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정말로 상당수의 학생들이 듣기 시험을 치르는 시간 외에는 따로 듣기에 노출되는 시간을 가지지 않는다.
3년 동안 10시간 정도를 공부에 사용한 것도 아니고 그저 시험 볼 때 듣고 잊어버리는 용도로 보내기 때문에 고3이 되어서 아무리 열심히 집중해서 듣고 시험을 봐도 듣기에서 만점이 나오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이런 이야기를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칠판에 숫자를 써가면서 보여주면 다들 자기 이야기라면서 새삼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단순하게 듣기 공부를 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지만 단어 암기, 문법 공부, 독해 문제 풀이 등만이 영어 영역 공부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듣기 영역은 영어 영역 총 45문제 중 17문제로 전체 시험의 약 37% 정도로 꽤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하지만 듣기 문제 특성상 한 문제당 종이에서 차지하는 양이 많지가 않아서 한 페이지 반 안에 모든 문제가 들어있기 때문에 마치 비중이 적은 것처럼 보인다는 것도 학생들이 듣기에 소홀히 하는 것에 한몫하는 것 같다.
듣기 영역에서 중상위권 이상의 학생들 중 듣기 만점이 나오지 않는 학생들은 14~16개 정도를 맞추는 경우가 많다. 듣기에서 한 두 개 틀린 대신 다른 영역에서 더 맞추면 되지 않나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독해 영역은 이미 모든 학생들이 열심히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있는 영역이라 쉽게 점수가 오르지 않는다.
그리고 이 학생들의 가장 큰 문제는 듣기를 다 맞았다고 계산해보면 70점, 80점, 90점 근처에서 1~2점 모자란 점수가 나온다는 것이다.
절대평가인 현행 영어 시험에서 69점, 79점, 89점이라는 점수들은 등급이 아래 등급으로 한 칸씩 밀리는 무척이나 안타까운 점수이다. 이 1점 차이 때문에 수시 최저 등급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거나 정시에서 쓸 수 있는 대학 레벨을 낮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듣기 영역에서 만점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입시 영어 수준의 듣기는 꾸준히 듣고 푸는 시간을 확보만 해주어도 충분히 만점을 받을 수 있는 난이도이기 때문에 투자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듣기만 다 맞았다면 몇 점인데..라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하루에 1회 정도씩 듣기 문제를 풀고 왜 틀렸는지 분석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하루에 1시간도 안 걸리는 이 시간이 훗날 입시에서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