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여름도 지나고 벌써 9월이 다가왔다.
고등학교 1, 2학년 학생들은 2학기 중간고사를 대비하기 시작하는 시기이고 3학년과 재수생 이상의 학생들은 두 달 남짓 남은 수능을 향해 여전히 열심히 달리기를 하고 있는 시기이다.
2022년 올 해는 9월 평가원 시험이 이례적으로 조금 빠른 8월 31일에 열렸다. 그래서인지 아직 9월 초임에도 작년까지와는 다르게 학생들은 9월 평가원 모의고사 결과를 분석하며 앞으로 남은 시기까지 어떤 전략을 가지고 수능을 대비해야 하는지 벌써부터 여러 방면으로 고군분투 중이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 나의 수험생 시절이 떠오르면서 안쓰럽기도 하고 남은 기간 동안 있는 힘껏 쥐어 짜내서 수능에서 최고의 결과가 나오기를 바라는 응원의 마음이 들기도 한다.
최고의 결과가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학생들과 모의고사 피드백을 하다 보면 많이들 하는 말이 있다.
저는 아직 문제 풀이 스킬이 부족해서 점수가 안 나오는 것 같아요
음... 학생들은 저 말을 즐겨한다.
위와 같이 말씀하시면서 우리 아이에게 문제 풀이 스킬을 가르쳐주면 좋겠다고 수업 내용을 구체적으로 요구하는 학부모님들도 많다.
왜일까?
수능 영어는 최소 10개년치 이상의 기출문제를 풀어보아도 문제 유형이 크게 바뀐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 문제 유형마다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하고 어떻게 하면 좀 더 쉽고 정확하게 답을 고를 수 있는지에 대한 기술적 분석이 많이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사교육 업체에서는 이를 대대적으로 어필하고 홍보하며' XX학교 내신 전문 학원', 'XX개 유형으로 완성하는 수능 영어' 등과 같은 메시지를 광고에 실는다.
학부모 입장에서는 혹 하지 않을 수 없다. 본인의 수험생 때의 입시와 지금의 입시는 무언가 다를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에 현세대의 '스킬론'에 더 믿음이 실리는 것이다.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중학교 내신 학원을 다닐 때부터 저런 말들을 많이 들으며 커왔기 때문에 학원, 과외, 인강 등의 사교육을 통해 누가 더 이런 기술, 즉 스킬을 많이 배웠는지에 따라 자신의 영어 점수가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매년 학원, 온라인 강의 등을 통해 수많은 학생들을 만나고 있지만 이런 생각에서 벗어나 있는 학부모와 학생들을 만나본 적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지난 글들에서 영어 시험도 문장들이 일정한 논리를 가지고 모인 글을 보고 문제를 푸는 것이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글을 잘 읽을 줄 아는 독해 능력이 중요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하나의 완성된 글은 일정한 논리적인 흐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각 논리에 맞는 독해 전략을 알고 있다면 핵심 내용을 빠르게 파악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시험에 나오는 글, 즉 지문들은 모두 같은 논리 구조를 가진 글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물어보고자 하는 문제의 유형이 변하지 않았을 뿐 해당 유형을 채우고 있는 지문들은 천차만별 제각기 다른 논리 구조를 가지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그랜저가 1986년 첫 출시 이후 오랜 시간 동안 같은 이름을 가지고 대한민국 대표 대형차라는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30년 전의 그랜저와 10년 전의 그랜저, 그리고 지금의 그랜저는 전혀 다른 차라고 해도 무방한 것과 같다.
주제, 요지, 제목 등을 물어보는 대의 파악 유형, 글의 순서를 물어보는 순서 유형, 글의 빈칸에 들어갈 말을 고르는 빈칸 유형 등 영어 시험에 나오는 각 유형들은 해당 문제의 출제 의도를 알려주는 가게의 간판과도 같은 상징일 뿐이다.
문제 유형별로 풀이 스킬을 알려준다는 것은
대의 파악 유형은 어디만 읽으면 답이 나온다.
순서 유형은 어떤 접속사들인지만 보면 답이 나온다.
등과 같은 말이며 이것 자체도 말이 안 되지만 굳이 따져보자면 저 말들은 문제 유형별 출제 의도와 원리만 설명하고 끝나는 것에 불과하다. 어떤 지문이 와도 똑같이 적용해서 답을 맞힐 수 있는 스킬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문제 풀이 스킬이 아니다.
각 유형 속에 들어있는 지문들마다 다양한 소재와 글의 전개 방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문마다의 소재, 핵심 내용, 논리 전개 방식을 파악해야 제대로 글을 이해하고 유형별 출제 의도대로 답을 찾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평소에 문제를 풀 때 답만 찾는데 전전긍긍하지 않고 해당 글이 어떤 소재를 다루는 글인지, 그래서 이 글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부터 정리한 이후에 해당 소재와 주제를 어떤 논리적 방식으로 써 내려갔는지 파악하고 정리해서 글마다의 논리 데이터를 누적해놓는 글쓰기 원리 및 논리적 독해의 정석을 연습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시간이 걸린다고 싫어하는 학생들도 많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공부라는 것이 올바른 방식으로 일정한 시간(경험치)을 들여야 그 안에서 깨달음도 얻게 되고 한 계단 위로 성장할 수 있는 RPG 게임 속 레벨과도 같은 녀석인 것을...
국어, 수학 시험 점수가 잘 안 나온다고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공부를 하는 것만큼 영어도 마찬가지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학생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영어는 기본적으로 완성해놓고 고등학교 올라온다, 영어는 절대평가라서 별로 안 중요하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만 해도 점수 잘 나오는 과목이다 등과 같은 일명 영어 무용론이 굉장히 퍼져있는 시대인 듯하다.
양심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내가 과연 저런 말들에 해당되는 안정적 1등급이 나오는 학생인지를.
우리 아이가 저기에 해당되는 영어 점수 잘 나오는 학생인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