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뭐뭐 했다"라는 말을 자주 쓰는가?
자연의 이치 말고는 원래 그랬던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공부에 있어서는...
이번 주까지 거의 모든 대학의 수시 원서 접수가 끝이 났다.
학생들은 수시 원서를 넣기 전에 최대한 여러 선생님, 입시 컨설팅 업체 등의 도움을 받아서 합격 확률이 높은 6개의 대학을 선정한다.
1학년 때부터 수시만을 바라보고 달려온 학생들도 있고 내신 성적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나는 수능파다'를 외치다가 주변 친구들이 수시 지원을 하는 모습을 보고 분위기에 휩쓸려서 혹은 위기감에 휩싸여서 수시에 지원을 하는 학생들도 있다.
이렇게 각자의 사정이 다양한 학생들과 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절대평가화로 인해 우선순위가 많이 내려간 영어 과목의 성적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가 많다.
그리고 나는 영어 강사다 보니 이런 말을 제일 많이 듣곤 한다.
원래 영어 1~2학년 때 까지는 잘했는데 고3 때부터 내신이랑 수능 다 망했어요
공감한다...
하지만 저런 케이스에 해당되는 학생들이 요즘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있었던 현상이다.
무슨 일이 생겼길래 3학년 때부터는 영어 점수가 잘 안 나오는 것일까?
정말 그들의 말대로 원래부터 잘 하긴 했던 걸까?
현시대 대한민국의 사교육은 초등학교를 지나 영유아까지도 유혹의 손길을 뻗고 있다.
영어유치원부터 시작해서 초등영어 전문 학원, 중등 어학원, 고등 내신, 수능 전문 학원까지 풀코스로 사교육을 누릴 수 있는 시대이다.
학생에 따라 이런 풀코스의 성과가 확실하게 있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는데 많은 학생들이 후자에 해당이 된다.
특히나 이런 학생들의 큰 특징은 중학교 때 까지는 타 과목에 비해 수학과 영어 학원에 큰 비중을 두고
열심히 공부를 하는 모습을 보인다.
중학교까지의 영어 시험은 반복된 학습과 암기가 주를 이루게 되면 성적 자체는 높게 나오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 시기까지는 중상위권까지는 공부에 신경을 조금만 쓰면 금방 올라갈 수 있어서 학생과 학부모님들 모두가 큰 경각심 없이 중학교 졸업, 그리고 고등학교 입학을 맞이한다.
문제는 고등학교 시기부터 발생한다.
고등학교 입학 전 겨울방학 시기부터 각종 고입 설명회를 통해서 내신의 중요성을 인지하게 되고 여러 가지 특강을 들으며 입학을 맞이한다.
하지만 애가 타는 건 부모님일 뿐 많은 수의 학생들 스스로는 중학교 때 까지는 학교 시험 성적도 괜찮게 나왔었고 중학교 때 다녔던 영어 학원에서도 성적이 괜찮게 나왔었기에 그때처럼만 학원에서 알려주는 대로 열심히 공부하고 암기만 하면 점수가 잘 나올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처음 맞이하는 고등학교 1학년 중간고사
많은 수의 학생들이 이때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대부분 아래와 같은 반응들을 보인다.
1) 좀 어렵긴 했는데 5등급? 뭐지? 엥..
2) 뭐야 고등학교 내신 왜 이래.. 빠르게 포기하고 난 오늘부터 수능파!
3) 나 그래도 중학교 때 90점은 나왔는데 2등급? 그래도 이 정도면 뭐 히히
여기에 해당이 되지 않는 학생들은 애초에 최상위권으로 시작하는 학생들이라서
졸업하는 순간까지 알아서 잘해나갈 것임이 틀림없다.
문제는 3번에 해당하는 학생들이다.
이 친구들은 분명 못한 것이 아니다.
영어점수 2등급 정도만 나와도 학교 전체를 둘러봐도 자신보다 점수가 높은 친구들은 극소수이기 때문에
조금 긴장만 할 뿐 크게 걱정을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 성적은 관성처럼 이어져서 별 다른 큰 노력을 하지 않아도 2학년쯤까지는 비슷하게 유지가 되곤 한다.
하지만 3학년 때부터는 상황이 다르다.
지문의 길이가 1~2학년 때와는 다르게 길어지고 단어도 많이 어려워지며 지문 자체가 복잡한 논리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읽어도 한 번에 이해가 잘 되지 않기도 한다.
그동안 영어 공부에 있어서 큰 노력을 기울이거나 수학이나 국어처럼 중요성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실력 자체는 1학년 초에 머물러 있는데 갑자기 난이도가 상승하는 시기를 맞이했으니 당연히 점수가 떨어지고 영어 자체가 갑자기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다.
고3초에 영어학원에 찾아와 상담을 하는 이런 학생들의 손에 들려있는 내신 및 모의고사 성적표에 적힌 영어 성적은 대부분 4등급 근처이다.
분명 예전엔 영어 잘했는데, 영어만큼은 별 문제없다고 생각해온 이 학생들에게는
4등급이라는 성적을 받아들이고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함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렵다.
수학도 중요하고 어려워진 국어도 중요한데 영어까지 추가로 하려니 앞이 막막한 것이다.
영어는 언어이다.
언어는 이론도 물론 중요하지만 경험치가 더 중요한 분야이다.
써먹지 않으면 녹슬기 마련이고 감각이 둔해진다.
해외에 1년 이상 체류하며 생활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 시간이 지날 때마다 자신의 외국어 능력과 감이 떨어지고 있음을 실시간으로 느꼈던 경험을..
입시 영어도 마찬가지다.
중학교 때 까지는 암기력으로 커버가 어느 정도 되지만 고등학교 시험부터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암기보다는 이해력과 문해력을 꾸준히 길러놔야 높아지는 난이도를 따라갈 수 있고 지배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고등학교 초반 시기에 본인이 만점에 가까운 점수가 나오는 최상위권 점수대가 아닌 학생이라면 국어, 수학과 마찬가지의 긴장감을 가지고 꾸준히 영어 공부도 진행해야 한다.
공부를 할 때에도 중학교 때처럼 단어 암기, 지문 암기만 해서는 고득점이 나올 수 없다.
문장들이 어떤 문법 규칙들을 활용해서 쓰여 있는지,
문장 간의 연결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지문 전체가 어떤 논리적 구조를 가지고 구성이 되어 있는지,
이를 통해 문제에서 요구하는 답의 근거를 글에서 확실히 찾을 수 있는지를 항상 염두하며 공부를 해야 한다.
국어 공부랑 다를 게 없어 보인다면 착각이 아니다.
영어도 국어도 결국 언어라서 원리는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말하는 ‘절대평가니까 영어에 별로 신경 안 써도 괜찮아, 그 시간에 수학이랑 국어 해야지’라는 발언대로 고3 생활을 보내려면 1~2학년 때 꾸준히 영어 공부를 해두어야 한다.
1~2학년 때 제대로 꾸준히만 공부해줘도 고3부터는 저 말대로 신경 별로 쓰지 않아도 점수가 알아서 잘 나올 과목이 영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