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신 수업이 아닌 수능 단과 수업을 진행하거나 독학재수학원, 재수종합학원에서 만나는 학생들은
수능파 고3이거나 재수생, 삼수생 혹은 그 이상의 학생들이다.
대부분은 고3 학생들과 전년도에 수능을 본 재수생들이 강의실을 채우고 있는데
요즘은 재수에 대한 이미지가 학생들 스스로도 '실패자'의 느낌을 덜 갖는 듯하다.
오히려 더 좋은 대학을 가려고 준비하는 '고등학교 4학년'의 태도로 임하는 모습들이 많아져서
확실히 예전보다는 강의 초반에도 강의실 자체가 우울한 분위기가 덜하다.
여느 고등학생들의 수업과 크게 다를 게 없는 '고등학생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강의가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들 중 유난히 얼굴을 잘 들지 않고 교재만 바라보고 있거나 일부러 애써 강사의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학생들이 간혹 있는데 콕 짚어서 질문을 해보면 대답은 곧잘 하곤 한다.
그들은 부끄러움이 많은 학생이거나 삼수 이상의 학생이거나 나이가 많은 수험생들이다.
내가 강의를 진행하며 만나봤던 최고령의 수능 준비생은 당시 45세에 한의대를 준비하고자 하는 어린 삼촌이자 형님인 학생이었다.
그 삼촌의 간절한 떨림의 목소리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선생님 부끄럽지만 거두절미하고 여쭤보고 싶습니다.
제가 나이가 많은데 1년 안에 수능... 할 수 있을까요?
상담을 진행하며 이것저것 확인해보니
학력고사 세대였던 이 삼촌 학생은 수능을 구경도 해본 적도 없었다.
잠시 정적..
그리고 이내 곧 필자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
'강사 인생에서 재미있는 도전이 되겠군!'
그리고 말했다.
안 되는 게 어딨습니까? 무조건 되도록 도와드릴게요!
나와 삼촌 간의 지키지 못할지도 모르는 약속이 생겨버린 것이다.
강사 생활을 하면서 지금까지도 되도록이면 '무조건'이나 '반드시'와 같은 표현은 안 쓰려고 하고 있다.
세상에 무조건 혹은 반드시 되는 일은 별로 없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나도 모르게 헛된 희망고문을 주지 않으려는 나만의 작은 노력이다.
하지만 삼촌 학생의 진심 어린 모습과 나와의 상담을 위해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준비해온 계획에 감동을 받아 감정적으로 마음이 기울어버렸던 것이다.
삼촌 학생은 약 11개월 동안 정말 강사 생활을 하며 봐온 학생들 중에 손에 꼽을 정도로 정말 열심히 공부를 했었다.
그리고 수능..
비록 1순위로 원했던 대학의 한의대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차선으로 노렸던 대학의 한의대에 합격을 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얼마 후 합격증과 커피 한 잔을 들고 찾아와서 나중에 보약 지어주겠다며 함박웃음을 지으며 인사 후 사라진 삼촌 형님..
약속 지켜요 저 요즘 몸이 허해요
그때 이후로 강의와 상담을 하며 만나는 20대 중반 이상의 학생들에게만큼은 무조건 할 수 있다고 응원을 불어넣곤 한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노화에 따른 육체적, 정신적 변화가 오기 마련이다.
공부라는 것은 체력이 뒷받침이 되어야 장시간 동안 할 수 있고
특히 수능은 국어, 수학, 영어, 과학, 국사와 같이 분야가 너무도 다른 과목들을 적절하게 분배해서 공부하고 골고루 고득점을 받으려면 생각의 유연함이 많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가 많으면 공부가 어려운 것일까?
20대 중반이 넘어가기 시작하면 한 사람의 인격이 슬슬 완성되어 굳어져간다고 한다.
삶에 있어서 많은 것들이 고착화되고 유연해지지 못한다는 말과도 같다.
그래서인지 나이가 많은 학생들일수록 수능에 도전한다는 당찬 계획과 의지를 세우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한계를 정해놓고 그 굴레 속에서만 애쓰는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
그러지 말자.
역사적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들 중에는 노년에 학업적 성과를 남긴 사람들도 많다.
파브르 곤충기로 유명한 장 앙리 파브르는 85세에 10권의 곤충기를 완성했다.
베르디, 하이든, 헨델도 나이 70이 넘어서도 명곡들을 작곡했다.
스티븐 호킹 박사는 루게릭병을 앓고 있음에도 생을 다하는 날까지 끊임없이 물리학과 우주에 대한 연구를 했다.
'저 사람들은 천재잖아'라고 입을 삐죽거릴 필요는 없다.
목표에 대한 의지와 실천은 천재성도 나이도 상관이 없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나이를 더 먹었으니 삶에 연륜이 생겨서 글을 좀 더 넓은 시야로 읽을 수 있겠군.
나이를 더 먹었으니 애송이 시절보다는 성급하지 않게 문제를 풀 수 있겠어!
난 군대도 갔다 온 아저씨니까 얼굴에 철판 깔고 이런 쉬운 것도 질문할 수 있지 뭐!
이렇게 당차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꿔보도록 하자.
다시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던 처음의 각오를 잊지 말자.
수능을 보기로 마음먹었다면 그때부터는 나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수능을 잘 보는 것만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impossible이 아닌 im possib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