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 4기, Life goes on(2)
얼마 전 2023년도에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예쁘다는 다샤 타란이 출연한 영상을 보았다.
21살에 한국살이를 시작해 4년째 한국서 산다는 그녀는 좋아하는 음식이 흑염소탕, 사우나, 맨발 걷기라고 했는데 이유가 나이 든 아주머니나 할머니들 밖에 친구들이 없다는 것이었다.
같은 또래 친구들을 사귀고 싶다는 게 다샤의 희망이었다.
다샤가 그녀의 유명세만 노리지 않는 순수하고 야무진 한국 친구들을 사귈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녀가 좋아하는 흑염소탕과 사우나, 맨발 걷기 중에 적어도 한 가지는 나도 오늘 해치우자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오늘은 영하 1도지만 미쉐린 타이어 캐릭터 못지않게 둘둘 싸매고 길을 나서본다.
서대문구는 중심에 안산이 자리 잡고 있다. 서울 중심에 있으면서 산에는 작은 계곡이나 제법 유서 깊은 절, 심지어 잣나무숲이나 메타세쿼이아숲도 있고 뭣보다 건강에 좋다는 황톳길이 인왕산바라보는 천연동 쪽에도 홍제폭포가 시원한 서대문구청 쪽에도 아주 길게 잘 조성되어 있다.
덕분에 나는 일년 정도 안산을 맨발로 즈려밟으며 종횡무진하기도 했고 발바닥이 아파서 뜨거워지면 황토길에서 식히기도 하며 누려왔다.
나의 맨발걷기는 유방암 진단과 함께 바로 시작되었다.
지난해 9월 16일 첫 진단부터 림프까지 전이된 유방암임이 틀림없다는 CT결과를 접한 후 인터넷 서핑을 통해 맨발 걷기의 효과에 대해 알게 되었고 '이건 바로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니 레고~'하며 아침 운동장 맨발 걷기나 뛰기를 시작했다.
10월 한 달은 학생들이 등교하면 책가방을 중앙현관에 던져놓고 바로 운동장을 뛰는 프로젝트가 있는 달이다.
운동장을 돌면 스티커를 하나씩 손등에 붙여줬고 한 달 후 가장 많은 스티커를 받은 학급에는 상금을 주는 프로그램이라 담임들은 같이 뛰는 게 당연지사였다.
'맨발로 뛰어볼까?'
조금 민망하긴 하지만 깨발랄하게 뛰는 중학생들 사이를 맨발로 뛰다 걷다를 시작했다. 동학년 선생님들과 행정실, 교장교감선생님께만 암밍아웃을 한지라 다른 선생님들은 아직 모르고 계시는 상황이어서 애들과 동료교사들이 가끔 물어왔다.
"어? 왜 맨발로 뛰세요?'
'하하... 밤에 잠이 잘 온대요~.'
'하하.. 얘들아 밥맛이 좋아져요. 급식 더 먹으려고'
한번 시작한 맨발걷기는 계속 이어졌다.
아침 운동장 걷기 뿐 아니라 퇴근 후에 가까운 별도봉을 맨발로 한 바퀴 걷거나 삼양해수욕장을 40분 가까이 걷다 귀가하곤 했다.
아. 나는 지금 한시적으로 서울에 살고 있지만 자발적으로 강제종료시킨 나의 직장과 생활 근거지는 제주도였다.
맨발걷기가 효과가 있었냐고 묻는다면
"Absolutely, of course!!"였다.
사실 코로나 감염의 후유증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는데 일이 년 이상 간기능에 이상이 없는데도 너무 피곤했었고 겨드랑이와 어깨에서 지속적이고 기분 나쁘게 찌긋거리던 통증이 처음 하루만에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정말 작전기도하듯이 맨발걷기를 했고 맨발걷기를 하는 동안 바닥이었던 체력도 점점 올라오고 통증도 사라졌기 때문에 게으름이 안 올리가 없었다.
그런데 맨발 걷기를 사나흘 빠지면 통증이 다시 올라왔고 일 년이 지난 지금도 맨발걷기를 사나흘 빠지면 통증이 심해진다.
진통제가 필요하진 않지만 기분나쁘고 무거운 지릿거리는 통증이 여지없이 다시 찾아오니, 할머니친구들 때문에 맨발 걷기를 좋아하게 된 다샤 타란과는 다른 이유로 나는 [맨발 걷기]를 안 할 수가 없다.
그나저나 도대체 유방암?
이게 왜 진짜 내게 온 거지?
사실이냐?
사실이냐고요~~
라고 외마디 비명 한 번 외쳐보지 않았지만 어쨌든 내 몸에 찾아온 이 이상한 세포덩어리들이 왜 생겼는지 이유는 알아봐야 했다.
유방암은 호르몬수용체 발현에 따라 네 가지로 구분한다.
이걸 알면 왜 유방암이 내게 찾아왔는지를 일단 알 수 있다.
1. 호르몬 양성 HER2 음성 유방암
가. 에스트로겐 수용체(이하 ER) 및 프로게스테론 수용체(이하 pR) 양성 이면서 HER 2 증폭 음성인 유방암
- 가장 순한 유방암에 속함:속도가 느리고 공격적이지 않다고.
- 호르몬 차단을 치료법으로 사용하여 재발을 방지한다고 한다. (항호르몬제를 사용하며 나의 경우 페마라 라는 호르몬차단제를 처방받는다: 이럴 경우 강제 폐경시키는 경우와 같아서 사춘기보다 무섭다는 폐경기 증상이 후유증으로 온다. 손발이 뜨겁다. 열이 난다. 호흡이 가빠지고 화가 자꾸 난다..... 등등... 만약 주위에 페마라같은 항호르몬제를 처방받는 유방암환자가 있다면 이해해주시기 바란다. 그분은 지금 사춘기보다 무서운 폐경기를 겪고 있는 것이라고...이미 완경:폐경을 치뤘다면 두번째 폐경기를 겪어야한다... )
- 좋은 소식은 이 경우에는 3기만 돼도 1기나 2기까지 내리는데 예후가 좋다고 한다. 빠른 속도로 좋아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 ER 양성, PR 음성이면서 HER 2 증폭 음성인 유방암인 경우나 ER, PR 모두 음성(또는 약양성)
이면서 HER 2 증폭 음성인 유방암, 드물게 ER 음성에 PR양성이면서 HER 2 증폭 음성인 유방암
- 호르몬치료를 할 수 있으며 1번보다는 항암제 내성이 잘 생기는 편이며
- 전체적으로는 그래도 예후가 좋은 편이라고 함
-호르몬 양성 치료제로는 입랜스, 버제니오, 키스칼리 등의 표적 치료제가 효과적으로 쓰이고 있음.
ㅡ페마라와 함께 키스칼리를 표적치료제로 쓰고있음:키스칼리는 표피세포 즉 암덩어리 외곽을 공격하므로 온 몸의 상피세포들이 같이 공격받는다고 생각하면 됨.
처음 하루 세알 복용하다가 화학지표가 너무 나쁘게 나와 두알로 줄인후 계속 유지중. 종양사이즈가 유의미하게 줄어들지는 않고있지만 일상생활 가능하고 혈액검사의 화학적 지표가 나쁘지않으므로 내성만 생기지 않으면 장기복용하며 생존기간을 연장할 희망을 가져보고있음.
부작용으로 손바닥과 발바닥 벗겨지고 갈라지고, 입안은 원래 약한데 툭하면 벗겨지고 툭하면 코피도 주르륵임.
자주 어지러움 등은 아무것도 아닌 증상이므로 거의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데 무리가 없음.
다만 머리를 조금만 많이 쓰거나 몸을 두시간 이상 쓰면(걷기제외) 급 체력저하 옴.
한마디로 연약하며 가련해짐. 이므로 속으로 좋아하고 있음. 내생에 이렇게 연약해본적이 없어서 내심 청순가련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는.. 청순은 불가하지만 연약가련은 도달.. ㅋ
2. 호르몬 수용체는 음성이면서 HER 2 증폭 양성인 유방암
-최근까지 가장 공격적이고 난치성에 해당했고 젊은 여성들이 걸리는 경우 진행속도가 빨라 위험군에 속했었는데 퍼제타라는 표적치료제가 쓰이다가
-최근 허셉틴이라는 표적치료제가 나와서 예후가 상당히 좋아졌음.(허셉틴 쓰고 좋아진 환자를 직접 보았으므로)
요즘은 허 2 유방암에 대한 공포감은 사라져가는 듯함.
3. 삼중음성 유방암(TNBC: triple negative breast cancer)
ER, PR, HER2 모두 음성인 유방암
- 공격적이고 치료가 어려우나 조기치료인 경우 완치 가능하지만 전이된 경우 치료제가 마땅치가 않아서 예후가 확실힣 좋지 않음.
-호르몬 치료, 표적치료가 불가능하여 일반 항암제를 사용
-키트루다, 티센트릭 병용 항암치료가 효과적
4. 삼중양성 유방암(TP 희귀)
고전적인 네 가지 유형이 아니지만 희귀하게도 모두가 양성인 유방암
-HER2처럼 공격적이지만 호르몬수용체 양성이라서 호르몬치료와 표적치료를 모두 해보는 것이 가능한 케이스임.
혹시 유전적 요인이 작용한 건지 BRACA검사를 해본 결과 해당사항은 없었다.
유전자 검사는 치료제를 찾는데도 도움이 되고 자매나 딸이 있는 경우 조기 발견을 할 수 있으므로 해볼 필요가 있어서 했었다.
안젤리나 졸리가 브라카 검사 결과 유방암 유전자가 있다고 나와서 미리 절제를 한 걸로 유명하다. 그녀가 지금까지 건강한 것은 절제수술을 했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아마도 건강관리를 위해 식생활이나 건강관리 스트레스 관리 등도 철저하게 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나는 비교적 순하다는 호르몬양성 HER2음성 유방암에 해당된다.
순하다는 표현을 함부로 써서는 안되지만 스스로 용감해지기위해 주문처럼 내몸의 암세포들을 달래기위해 말해보곤 한다.
'얘들아, 내안의 유별난 세포덩어리들아.
순하고 착한 애들아.
우리 천천히 오래오래 같이 가자.
너희가 화내고 성내면 우리 모두 다 주거~~~
그러니 순하게 가자. '
나는 어차피 이 애들을 도려내거나 지지거나 하며 공격적으로 처리할 수가 없다.
그러니 달랠 수밖에...
호르몬수용체 양성 유방암이라는 말은 체내의 여성호르몬이 과량발현되거나 필요한 때에 소모되지 않는 경우로 발암가능성이 높아진다.
- 임신 횟수가 적고(요즘 자녀가 하나 아니면 둘... 나의 경우는 아들 하나를 간신히 건졌었다.그 전에 둘을 잃었었다. )
- 모유수유를 안 했으며 (B형 간염 보균 때문에 모유수유를 못함.)
- 완경 후에는 5Kg 가까이 체중이 늘었던 것도 이유(부신에서 생성되는 화학성분이 지방세포에 의해 에스트로겐으로 전환될 수 있음)
기본적으로 생식기계통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던 것도 체질적으로는 관련성이 있어 보임
-초경이 빠르고 완경이 늦음 그러나 엄청 불규칙했음
-난소와 자궁에 물혹이나 근종이 출산 전에 계속 발견되어 두 차례 수술
결국 신체적인 여러 가지 내력이 유방암에 걸리기 좋은 조건들을 갖추고 있었다는 걸 확인함.
이걸 미리 알았더라면 좀 더 확실하고 자주 몸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만져지는 것은 없는지 자가진단을 해보았을 터인데 늘 사후약방문이고 소 잃고 나서 외양간 벽 뚫어진 곳을 찾아낸 셈이다.
하지만
어디 그것뿐이랴.
암의 먹이라고 일컫는 탄수화물에 중독 상태였던 나는 밀가루, 쌀가루, 은은한 단맛에 '환장'하는 타입이었으니 빵순이에 떡순이였으며(식생활 점검 필요함)
코로나 기간 지나치게 주의하느라 주말만 되면 오름으로 바다로 쏘다니던 사람이 방콕 집콕하며 에라잇 혼술하는 것을 낙으로 삼기 시작했으니 주종은 막걸리, 와인, 캔맥을 불사하였으며 운동량은 바닥을 친 게 3,4년 되었었다.
사실 여러 가지 스트레스도 없었다고는 절대로 말을 못 하는 게.....
모두 다 알다시피 중학생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통제하기 힘든 시기의 아가들 아닌가?
더구나 내가 너무나 사랑했던 중학교 1학년들은 초등학교에서 올라온 지 일 년도 안된지라 아직 옷차림과 학교생활은 중학생이지만 정신적으로는 초등학생과 중학생 그 사이 어드매서 헤매이며 툭하면 싸우고 울고 이르고 서로 거짓말하고 심지어 치고박는다.
부모님들 역시 아직 초등학생부모님과 중학생 부모님 그 경계 어드매서 헤매고 계시는 분들이 적지 않으신지라 퇴근 후에도 트러블이 생겼을 경우 전화통화하느라 한두 시간씩 옷도 못 갈아입고 전등도 켜지 못한 채 전화상담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지금은 그럴 수 없게 되었지만 딱 2년전만 해도 그랬다.)
유난한 해가 있는 법인데 그게 이년 연속 우리 반이 그랬었더라고.
수업시간에는 조금만 뭐라고 하면 '시발시발'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아직 초등학생 맛을 못 버린 여자 아이들 사이의 예민하고 은근한 다툼은 사내아이들끼리의 치고받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게 고단하고 오래간다.
중학교 2학년이 되면 아이들이 얼마나 확 커버리는지 키워본 부모들과 학교현장의 교사들은 잘 안다.
사내아이들도 여자아이들도...
그럼에도 나는 그 1학년 꼬맹이들을 3년째 담임을 하고 있었는데 중학교 1학년까지는 그래도 요래요래 정성 들여 조물조물하면 1학기 말이 끝날 때, 2학기 말이 끝날 때쯤 자타공인 특별한 우리 학급의 분위기라는 게 생기는 걸 놓치기가 싫어서였다.
시간이 남아도 아이들의 구구절절 좌충우돌 성장기를 굳이 글로 옮길 마음은 없지만 암튼 그 시간들 속 나는 이래저래 몹시도 힘들었던 게 사실이었다.
지쳐 돌아오면 맥없이 앉아 있다가 티브이 켜면 예능이나 로코사극에 바보 같은 웃음 흘리며 겨우 머리를 비웠던 시간들....
때로는 섬 속의 섬처럼 살아내는 시간들이었음을 가끔 고향의 언니에게 자조 섞인 푸념을 늘어놓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어쩌면 내 몸 속에서 4기 유방암까지 득달같이 내달렸던 이유들이 아니었을까 되돌이켜 생각해 본다.
주위의 암환자들이 스스로의 생활패턴에서 문제점들을 공통적으로 얘기하는 것들은 정리해 보면
1. 몸 관리: 신체적으로 취약한 기관들을 미리 잘 돌봐줘야 하는데 못함. 규칙적인 운동 부족
2. 식생활 관리부실: 밀가루음식, 흰쌀밥이나 떡, 다디단 디저트, 라테 즐겨마시기, 붉은 고기 과량 섭취, 반복되는 혼술
3. 마음 관리 부실: 우울증이 생겼을 경우 운동이나 생활습관 통제를 통해 극복해야 하는데 주저앉아버림==운동부족, 과식, 티브 끌어안고 실기, 핸드폰 삼매, 나쁜 안주에 혼술(우울증은 과체중을 불러옴. 과체중은 건강의 적)
4. 삶에 대한 철학 부족: 좋은 삶에 대한 철학이 필요하며 적극적으로 자신의 몸과 맘에 대한 존중과 보살핌 필요
물론 운동도 열심히 하고 식생활관리도 잘했음에도 불구하고 (흡연경험이라고는 1도 없는데 폐암에 걸린 환자도 있었다.) 암환자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위와 같은 원인들이 발암의 중요한 이유로 작용했다고 스스로들 분석하고 있다.
암에 걸리고 보니 주위를 돌아보면 뛰어가서 잔소리하며 말리고 싶은 게 하나둘이 아니다.
맘 편하게 먹을 수 있는 먹거리들이 거의 없다.
달디잔 주전부리를 입에 달고 사는 아들녀석 하나도 어쩌지 못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먹든, 운동을 하든 안 하든, 다소의 스트레스가 있든 없든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살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살아갈 날이 많은 소중한 많은 사람들이 다들 너무 늦지 않게 스스로를 돌보는 짱짱한 힘을 갖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잠 못 이루고 글을 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