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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데드 Aug 29. 2023

왜 그런 때가 있지 않나요?

Yeah, That's We are.

Yeah, That's We are.

왜 그런 때가 있지 않나요? 높은 고개를 넘으면 또 다른 고개가 보이는 것. 고개를 들 때마다 시야가 흩어지는 블랙아웃 같은 현상말이죠. 그게 참 사람을 괴롭게 만들어요. 아무리 행복에 대해 떠들어댄다고 한들 행복은 만들어지지 않죠. 뇌는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줄 알아요. 너무 어이없는 게 뭐냐면 긍정에너지의 근원지를 참된 진실이 알아채서 현실을 가증스럽게 만든다는 거죠. 글쎄. 이런 시스템을 누가 만든 건지 아시나요?


네, 바로 저 자신이에요. 제가 만들려고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무의식적으로 빚어진 공포감이 퇴적되어 만들어지는 거죠. 예술계의 거장들이 가끔씩 슬럼프에 빠지곤 하죠? 제가 말하려는 건 그거예요. 

이길 수 없는 현실, 넘어뜨릴 수 없는 도미노, 미지수 혹은 변수. 욕망에 비례한 투항의 상태이죠. 


어릴 적에 저는 받아쓰기 점수가 늘 좋은 편이었어요. '한국인은 아니다'라고 해도 전 세계가 속을 외모임에도 한국언어영역이 비교적 안정적이라는 결과가 참 뻔하게 나왔어요.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도 90점은 가뿐히 넘겼죠. 투박하게 엉킨 기묘한 단어들이 조잡하게 얽혀 문장이 만들어지는 것에 무척이나 흥미를 느꼈더랬죠. 그래서 국어시간을 너무 좋아했어요. 아참, 선생님에 따라 달랐는데 초등학생 시절엔 사실 영어보다 국어를 더 좋아했던 것 같아요. 영어선생님의 미모에 반한 건 사실이지만 뭐, 이제 와서 그런 건 중요치 않아요. 그저 한국에서 감사히 살아있다는 게, 그게 기적인 것 같아요. 아마 그때부터였을까요.


믿기지 않겠지만 진심으로 저는 작가가 되고 싶었어요. 거창한 베스트셀러, 밀리언셀러는 꿈에도 못 꾸걸랑요. 그런데 말이죠. 어릴 때의 제 행동은 다른 애들과 뚜렷하게 다른 점이 많아서 왠지 더 열악한 느낌을 받았기에 잘 되고 싶었어요. 밥을 다른 친구들보다 조금 늦게 먹었다고 쇠국자로 머리를 때려 울 때까지 혼내지를 않나. 방학숙제를 못 끝내서 무릎을 꿇리고 목재의자를 몇 시간 동안 들게 하지 않나. 충치로 부은 얼굴을 들고 다니기 무서워 철문뒤에 숨었는데 끌어내리고선 쇠자로 손등을 내리치지 않나. 휴, 말하자면 더 많지만 여기까지만 할게요. 제가 보육원에서 자랐을 땐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딴 선생 치고는 제대로 된 선생님이 드물었어요. 더군다나 곤충을 병적으로 좋아해서 그 행동이 문제아로 찍혀 양말자루에 들어가 반 친구들에게 밟힌 기억도 있어요. 거의 울다가 지쳐 잠에 든 날이 많았던 것 같네요. 얘기치 못하게 악몽을 꿔서 실례를 하기도 했고요. 


그래도 웃는 날이 조금이나마 있었어요. 매년 1월에는 왕엄마인 대장 수녀님께 절을 올려서 용돈을 받았고요. 2월에는 이사와 개학준비로 시설 전체가 분주했어요. 3월에는 새로 단장한 깔끔한 교복을 입고 학교를 갔다 오면 집에 오는 언덕 내리막길에서 개미를 만지작 거리다 밥을 먹으러 갔어요. 찬물을 워낙에 좋아라 하니까 4월에는 공부생각은커녕 수영 시 간만을 기다렸고요. 그때 우릴 가르치던 선생님의 친절함이 너무 좋았어요. 그때의 순수함은 지금 어디 갔는지 모르겠지만요. 아무튼 5월 초에는 1령 사마귀가 우화 하는 기간이에요. 요즘은 지구온난화로 5월 중순-말로 미뤄졌겠지만 왠지 그때의 낭만이 아직도 어렴풋이 남아있는 것 같아요. 6월은 여름방학을 준비해야 해요. 미술대회도 가끔 열려요. 하물며 입상이나 했다면 수여받은 상품을 개봉하는 것도 정말이지 쏠쏠했고요. 


저는 다소 어린 행동에 비해 생각이 많아 '난 안 될 거야'가 베이지컬 브레인스토밍이었어요. 비관론주의적인 리스크테이커랄까요. 모든 도전이 어려웠지만 해볼 만한 가치는 있었죠. 학교 선생님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제 사전에 '도전'은 국물도 없는 원수지간이 되었을 거예요. 등쌀에 떠밀려 짚게 된 판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죽고 싶지 않았어요. 맞아요.

예술가에겐 '두려움'이란 도전의 반대말이나 다름없는 거예요. '두려움'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무엇보다 큰 적이며 '시도하지 않음'은 척결대상이라고요. 둘 다 같은 배에서 나온 동물이지요. 시도하지 않음은 두려움 깊숙한 곳에서 기인한 감정이고요. 아무튼 전 그걸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도전을 너무 부여하면 그것도 모양 빠지는걸요. 사실, 전 정신적 및 체력적으로 정말 많이 지쳤어요. 그런데 오늘 정말 굉장한 일이 많이 일어났어요. 몇 개월에 걸쳐 해결되지 않은 일을 둘이 힘을 합쳐서 해냈다는 게 믿기지 않았어요. 컴퓨터 앞에서 잠시 떨어지지 못했어요. 결과는 얼떨떨했으니까요. 수전증이요? 거의 다 나았어요. 

사회에 발을 내딛는 게 어려워서 무더운 여름에 긴팔 입고 나간 어린 시절의 제가 아니에요. 전 저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아냈고, 앞으로는 그 방식이 매우 다양해지겠지만 여전히 물살이 이끄는 흐름대로 따라갈 거예요. 어떠한 문제도 저를 이길 수 없어요. 설령 이따금 찾아오는 '정신적인 빈곤 상태'라 해도 말이죠. 그걸 해결할 방법을 단 한 가지로 충분히 밀어낼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거든요! 휴리스틱, 아니죠. 단기휴식, 맞아요.


말이 길었어요. 7월은 녹아내릴 정도로 더워져서 계곡엘 가야 해요. 말벌에 쏘이지 않게 전방 주시는 잘해야 하고요. 8월엔 주방에서 수박이 자주 올라와요. 어찌나 달던지 둘이 먹다 배 터져 죽을지도 모르겠던데요. 9월엔 책을 읽어야 해요. 고독하고 쓸쓸한 남성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사색에 잠길 필요가 있는 계절이 되는 거죠. 아스팔트에 저장된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걸 알아도 애써 가을을 타야 해요. 그래야 글이 잘 나와요. 머리로는 시를 생각하지만 가사를 써 내려가야 하고요. 이번 연도의 여름도 꽤 그럴듯하게 유영하고 있네요. 시간 참 빨라요. 아, 너무 바쁘게 살아서 그런가. 글을 쓰고 싶어서 얼마나 참았는지 몰라요. 이런 날이 자주 오면 좋겠는데 우리 언제 만날지. 빈곤함과 빈약함이 주체가 되면 저의 창작활동의 폭은 적어지므로 이 부분은 신경을 써야 하겠죠. 그동안... 우리 사이가 너무 멀었던 것 같아요. 집착은 싫지만 가까워져 볼게요. 뭐, 저도 나름 노력은 해야겠으니까요. 


물론


포기하고 싶어 지겠죠. 하려던 일들, 이어나가야 할 관계들, 그리고 여러 개의 나침반이 가리키는 목적지들.


가차 없이 끊었기도 했고, 두 팔 벌려 안아줄 때도 많았어요. 적어도 저는 인간성만큼은 상실하지 않길 바라면서 돈에 미치기를 거부했어죠. 다시 말할게요. 왜 우리 모두 그런 때가 있지 않나요? 지금보다 나아지길 바라는 게 간절해지면 통하는 거. 이번엔 좀 주렁주렁 달고 올게요. 오리온 박스 안에 있던 과자를 기억하면서. 맙소사, 겨우 15분밖에 안 됐네요. 아무튼 잘 자요, 새우잠은 못 면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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