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나이가 나를 조금 덜 몰아붙여 줄 때
한국에는 나이가 두 가지 있습니다.
일상에서 쓰는 한국식 나이와,
관공서에서 사용하는 만 나이요.
한국식 나이는 참 특이합니다.
한 해가 바뀌면 모두가 동시에 한 살을 먹지요.
1월 1일에 태어난 사람도,
12월 31일에 태어난 사람도
새해가 되면 똑같이 나이가 늘어납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식 나이보다 어려 보이게 만드는
만 나이가 썩 달갑지 않았습니다.
아파서 병원에 갔다가
약국에서 약을 받아오면
약 봉지에 적힌 만 나이가
늘 한국식 나이보다 한두 살 어려 보였거든요.
분명 중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아직도 초등학생 나이처럼 적혀 있는 걸 보면
괜히 기분이 상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스무 살을 지나고,
서른의 문턱에 서 보니
조금이라도 나를 어려 보이게 해주는
만 나이가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다행히도, 아직은 만 나이로 20대입니다.
저는 요즘
그 마지막을 억지로라도 붙잡고 있습니다.
마치 ‘마지막 잎새’처럼요.
한국식 나이로 생각하면
어느새 서른인데
이것도 못 했고,
저것도 못 했고,
아직 해야 할 것만 잔뜩 남은 사람처럼
자꾸 나 자신을 몰아붙이게 됩니다.
그런데 만 나이로 생각해 보니
조금 풍경이 달라집니다.
20대에 이것도 했고,
저것도 했고,
이런 일까지 해냈구나.
이미 지나온 시간 속에
생각보다 많은 흔적이 남아 있더군요.
그래서 요즘은
만 나이를 아주 알차게 쓰려고 합니다.
남아 있는 20대의 단물을
끝까지, 천천히, 제대로 누려보려고요.
그래야
다가올 30대를
조급함이 아니라
기꺼운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