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
나는 한때 번듯한 직장을 다니며 안정적인 미래를 꿈꾸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중견기업에서 시작해 대기업까지, 계약직이라는 불안한 고리를 걸고 있었지만 매일 열심히 일했고, 언젠가는 나도 회사의 정규직원이 되어 안정적인 생활을 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날, 마지막 계약 연장이 되지 않으면서 그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갑작스럽게 직장을 잃고, 막막한 마음에 사업을 시작했지만 결과는 실패로 돌아갔다. 통장 잔고는 마이너스 5천만 원.. 매일 밤 술에 의지하며 나락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내가 가정을 이끄는 가장이라는 사실은 그 절망의 끝에서도 나를 붙잡아 세웠다. 내가 이렇게 주저앉아 있을 수 없다고, 포기할 수 없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나섰고, 그 시절 가장 힘든 일로 손꼽히는 인삼밭 아르바이트와 대리운전을 시작했다. 쉬운 길은 없었지만 내 가족의 얼굴을 떠올리며 이를 악물고 하루하루를 버텨나갔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지금은 오토바이 위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라이더가 되었다. 달리면서 마주치는 사람들, 바람이 전해주는 거리의 이야기들은 나에게 새로운 동력을 불어넣었다. 그렇게 오토바이 핸들을 잡고 질주하며 나의 삶도 다시 굳건히 정비해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인생이란 계획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는 것 같다. 어느 날 ‘길랑바레 증후군’이라는 생소한 이름의 희귀병이 내게 찾아왔다. 내게는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었고, 몸과 마음 모두 무너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나를 버티게 해 주었고, 나는 다시금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내게 주어진 이 새 삶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글을 쓰는 라이더가 되었고, 이제는 이 이야기를 사람들과 나누고자 한다.
시간을 거슬러 보면 30대 후반에 접어들며 취업을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다. 번듯한 대학 졸업장도 없었기에 자신 있게 이력서를 낼 수 없었다. 잔고는 100만 원도 채 남지 않았는데 세 아이와 아내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결혼식도 제대로 올리지 못한 채 살고 있었는데 장인어른이 결혼을 부추기면서 예식을 올리게 되었다. 하지만 결혼식 당일, 장인어른이 축의금을 가져가버려 예식장 비용과 식비까지 모두 빚으로 남게 되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고, 나는 불철주야 일하게 되었다.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면서 매일 10만 원이라도 벌고자 했고, 한 달 300만 원이라도 가져다줄 수 있기를 바라며 발이 닳도록 뛰어다녔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거리 두기가 시행되면서 술자리도 사라졌고, 대리운전마저 할 수 없게 되었다. 절박함 속에서, 나는 배달 라이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 배달을 시작할 때 친구들은 짜장면이나 치킨 배달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겠냐며 걱정하기도 했다. 나도 한편으로는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물러설 수는 없었다. 처음에는 자주 잘못 픽업하기도 하고, 잘못 전달해주기도 했고, 내비게이션 보는 것도 어려웠으며 가게를 찾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하지만 대리운전을 하며 쌓아온 경험 덕분인지, 한 번 간 길은 금세 기억해 냈고 다른 사람들보다 빠르게 배달에 익숙해질 수 있었다. 그리하여 대한민국의 배달 성지로 불리는 강남까지 진출하게 되었고, 한 달에 최고 800만 원을 벌어보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배운 거 없으면 배달이나 하지"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배운 것이 없어서, 혹은 대학을 나오지 않아서 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정당하게 돈을 벌기 위해 이 일을 선택했다. 배달은 내게 단순한 일이 아니라 일상이자 하나의 사업이다.
이제 사람들에게 이 글을 통해 내 경험을 나누고 싶다.
"우리 모두의 삶에는 분명히 의미가 있고,
그 안에서 발견할 가치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