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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라이더 Oct 29. 2024

서른의 갈림길에서, 길 위에서 찾은 나의 길

삶을 바꾼 결정

우유를 마시는 사람보다 우유를 배달하는 사람이 더 건강하다 - 영국 속담


30대 중반에 가까워질 때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까지 뭘 하면서 살아온 걸까…’

중견기업에 입사해 삼성 SDI와 SK이노베이션을 거쳐온 경력도 있었지만 어찌 보면 계약직이라는 이유로 대기업 생활의 달콤함에 빠져 있다 보니 딱히 다른 곳으로 이직할 용기도 나지 않았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이룬 것도 모은 것도 없이 학력은 고졸에 반듯한 직장 하나 없는 상황이 되었고 그렇게 고민 끝에 아는 동생과 함께 세차 사업을 시작했는데… 결과는 망했다. 서로 다른 의견으로 마찰이 많아 결국 그 동생과도 멀어졌고 사업에서 벌지 못해 돈도 남지 않았다. 오히려 1년 넘게 집에 제대로 생활비를 가져다주지 못하면서 모든 것이 빚으로 쌓여만 가던 시기였다.


이제는 뭐라도 해야 했다. 급한 마음에 와이프가 택배 일을 하던 쿠팡플렉스에 따라나서기도 하고 공장 일이라도 찾으려 아르바이트 사이트를 헤매기도 했다. 그렇게 방황하다가 처음으로 대리운전기사라는 일을 선택하게 되었고, 낮과 밤이 바뀌며 생활 리듬은 잃었지만 돈을 벌어야 했기에 매달리게 됐다. 


그러던 2019년 세상이 심상치 않았다.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가는 바이러스! 바로 코로나가 시작된 것이다.

대리운전 수요는 줄어들었고 30대 후반에 들어선 내게 취업이란 말 그대로 막막한 일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혼란스러워하던 어느 날 대리운전 동료였던 형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배달 한번 해볼래?”

그 형은 이미 킥보드를 타고 틈틈이 용돈 이상의 수익을 올리고 있었기에 나에게도 권유한 것이었다. 중학생 때 원동기 면허를 따고 치킨집에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했던 경험도 있어서 오토바이를 타는 건 문제 되지 않았다. 특히 코로나와 맞물리며 취업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배달 대행은 나에게 유일한 탈출구처럼 느껴졌다. 사실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먹고살아야 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하던 일을 바로 접고 배달에 올인할 수는 없었다. 나는 일단 배민 라이더에 고용계약서를 쓰고 바이크를 렌트해 낮에는 배달대행, 밤에는 대리운전이라는 강수를 두고 두 가지 일을 병행하기 시작했다. 돈을 벌기란 쉽지 않았다. 하루 벌이로 5~6만 원 정도가 고작이었고, 기존 대리운전 수익의 절반도 안 되었기 때문에 고민 끝에 다시 대리운전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전국 어디를 가든지 쓸 수 있던 프로그램을 탑재한 후 핸드폰 세 개를 들고 다니며 탁송 일까지 추가해 전국을 누비며 일했다. 

초반 투자 비용이 들었지만, 당시 대리운전 수입이 수수료를 떼고도 하루 15만 원 이상 벌 수 있었기에 안정된 수입을 유지하며 다시 적응해 나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을 때, 처음 배달대행을 권유했던 형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현진아, 지금 분위기가 달라. 빨리 배달해야 해.”

급한 말투였다. 코로나가 더욱 확산하면서 사람들이 외식이나 회식을 거의 하지 않게 되자 대리운전 수요는 거의 바닥을 쳤고, 반대로 배달음식 주문은 폭발적으로 늘고 있었다. 라이더가 부족해지자 라이더들에게 지급되는 콜비는 말도 안 될 정도로 높은 수준까지 치솟았다. 형은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 들어가야 돼. 우리 대리운전은 접자.”

그 한마디에 나는 결국 대리운전 일을 모두 내려놓고 다시 배달대행의 세계로 발을 내디뎠다.

그 시절 나는 무얼 하든 일단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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