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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랑 Dec 17. 2021

짧지만 위력적이고 잔잔하지만 강력한 연가

영화 <언어의 정원> 리뷰

1. 개요

 저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을 좋아합니다. 장단점이 굉장히 명확한 감독이기에 전반적인 커리어에 관해서 호불호도 많이 갈리는 감독이지만, 저는 그 특유의 감성 처리를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흔히 신카이 마코토 감독 최고의 작품으로는 <초속 5cm>나 <너의 이름은.>이 많이 꼽히지만 개인적으로는 오늘 리뷰할 <언어의 정원>을 가장 좋아하고 있습니다. 이런 저런 단점도 있고 완성도 면에서 최고라고는 하기 힘들지만 가장 제 취향인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의 장점은 1. 화면 구성과 작화, 2. 잔잔한 드라마와 인물대비를 꼽겠고, 아쉬웠던 점은 1. 매력적 조연의 부재, 2. 러닝타임으로 선정하겠습니다.


2-1. 화면 구성과 작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영화가 작화 문제로 지적을 받은 경우가 2002년 <별의 목소리> 이후로 있었나 싶긴 하지만 그 중 <언어의 정원>은 탁월한 경지를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2021년 기준 개봉한지 8년이 넘은 애니메이션이지만 현재까지도 확실히 <언어의 정원>보다 나은 작화를 극 전체에서 보여준 애니메이션은 흔치 않습니다.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며, 감독의 후속작들인 <너의 이름은.>과 <날씨의 아이>마저도 <언어의 정원>보다 확실히 낫다고는 말할 수 없는 수준일 정도로 이 영화의 작화는 환상적입니다.


 신주쿠교엔을 묘사하는 전반적인 장면들과 빗방울 묘사는 엄청난 수준으로 아름다웠고, 엔딩씬은 정말 전율이 돋을 정도로 환상적이었습니다. 순간 화면이 전체적으로 빛을 받으며 밝은 모습으로 변화하는 엔딩에서 여태까지 보여준 장면들과는 사뭇 다른 도시의 풍경은 정말이지 넋을 잃게 만들었습니다. 결정적으로 저는 이 영화를 보고 신주쿠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이 영화의 작화는 훌륭했습니다.


 화면 구성도 수준급입니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면이 2개 있는데요. 바로 유키노의 발 사이즈를 측정하는 장면과 엔딩씬입니다. 타카오가 유키노의 구두를 제작하기 위해 그녀의 발 사이즈를 측정하는 장면이 끝나는 부분을 보면 카메라가 의도적으로 두 주인공이 아닌 화면을 반으로 가르는듯한 나뭇가지를 포커싱하고 장면을 마칩니다. 이는 서로를 향한 연심이 깊어지더라도 이루어질 수 없는 둘의 관계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한 엔딩씬 역시 연출이 훌륭합니다. 두 주인공에게 비는 회피와 직면이라는 상반된 개념을 상징하는 존재입니다. 비가 오면 현실에서 회피하고, 서로를 직면하는 상황을 조성하는 키워드가 날씨죠. 그리고 엔딩에 다다르면 타카오와 유키노는 서로 헤어지게 됩니다. 더는 만날 수 없는 상황이기에 유키노가 타카오의 고백을 거절한 상황이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날씨가 갑자기 화창해지는 상황은 서로의 만남은 끝이나지만 두 인물 모두 현실을 직면하고 나아갈 준비가 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멋진 장면이었습니다.


2-2. 잔잔한 드라마와 인물 대비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금단의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미성년자와 성인의 정서적 사랑을 다루면서도, 그 대상이 사제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에서 소재 자체는 자극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본 후 이 영화를 자극적이라고 평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인물의 독백과 나레이션 위주로 진행되며 엔딩에 다다르기 전까지 감정선을 최대한 억누르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실제로 등장인물들이 감정적 표현을 한 경우는 엔딩을 제외하고 거의 없죠. 그렇기에 엔딩의 연출이 큰 힘을 받을 수 있었고, 자극적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잔잔한 드라마를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주인공 타카오와 유키노는 서로 대비되는 존재입니다. 타카오는 학생, 유키노는 교사이면서, 미성년자와 성인, 남성과 여성, 현실을 직시하는 태도마저도 조금씩 다릅니다. 타카오는 현실에서 도피하는 성향을 갖고 있으면서도 현생을 살아야 할 시기에는 자신의 꿈을 찾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현실에 정면으로 맞서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유키노는 과거의 트라우마에 의해 현실의 생산적 활동을 중단하고 무의미한 것에만 집착하며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서로를 바라보며 발전한다는 점에서는 두 인물이 같습니다. 타카오는 성장하기 위해, 그리고 유키노를 다시 걷게 할 수 있도록 구두를 더 열심히 만들게 되었고, 유키노는 그런 타카오로 인해 알코올과 초콜릿 대신 서툴지만 요리도 시작하는 등 다시 한 번 삶의 동력을 찾게 됩니다. 이렇게 상반된 속성을 가진 두 인물이 다른 방향으로 서로 나아가기에 헤어지게 되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중요한 인물임은 변하지 않는다는 점은 이 영화를 굉장히 매력적으로 만들어냅니다.


3-1. 매력적 조연의 부재

 이 영화는 주연인 타카오와 유키노의 감정선을 가지고 진행이 됩니다. 하지만 너무 이 둘에만 치중한 나머지 매력적인 조연이 단 한명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주연만 매력적이어도 상관은 없지만, 모든 조연의 비중이 없다는 점은 극의 배경을 넓히고 세계관을 탄탄히 정립시킬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단편적으로 타카오의 가정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유키노는 전 애인과 어떻게 헤어지게 되었는지와 같은 것들이 거의 묘사되지 않기에, 오히려 주연들의 입장에 몰입하는게 어려워진 케이스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엄청 큰 단점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너무 아쉬움이 남던 파트였습니다.


3-2. 러닝타임

 이 영화는 장편영화라기에는 너무나도 짧고 단편영화라기에는 긴 애매한 러닝타임을 지니고 있습니다. 차라리 더 함축하여 단편영화로 하거나 분량을 늘려 적어도 <초속 5cm>정도의 장편영화로 만드는 것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앞서 서술한 조연의 부재도 사실 러닝타임 문제에서 기인한 것인 만큼 이 영화의 가장 큰 단점은 러닝타임입니다. 너무나도 잘 만든 영화이지만 극단적으로 짧은 러닝타임의 안에서 보여줄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보니 이곳 저곳 아쉬운 부분들이 남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둘의 배경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전반부에 깔아놓고 후반부를 현재와 같이 만들었다면 지금보다 더 매력적인 영화로 기억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4. 마무리

 영화 <언어의 정원>은 앞서 말했듯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영화 중 가장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여러 아쉬운 점이 있지만, 사실 장점이 훨씬 큰 영화임에는 틀림이 없는 영화죠. 이 영화는 적어도 보고 후회하시진 않을 영화라고 확신합니다. 러닝타임도 짧기에 오히려 간단하게 볼 수 있기도 하고, 잔잔한 드라마라 대부분 좋아하실 거라고 생각이 드네요. 인물 대비와 화면 구성에 집중해서 보신다면 보는 재미가 쏠쏠한 영화로 느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영화 <언어의 정원> 리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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