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20
내 자리와 물건은 항상 정리되어있다. 연필은 연필끼리 케이블은 케이블끼리 심지어 컴퓨터 속 파일까지 각자의 쓰임새에 따라 배치되어 있다. 정리가 되어있지 않으면 마치 금지된 지역에 있기라도 한 듯 정리하지 않은 물건들을 위한 장소에 두었다가 시간이 날 때 정리를 했다.
나는 항상 정리되어있는 것이 좋았다. 자기자리에 딱 진열되어 있는 물건들을 보면 모든 것이 나의 통제 아래에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의 정리벽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미 정리를 마친 물건들을 다시 꺼내서 정리를 하는가하면 결국 용도와 이름, 색깔까지 분류하여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쯤 되면 정리벽 중증이었다. 그렇지만 나의 마음에는 아직 완벽하지 않았고 기어이 정리에 모든 힘을 다 소진하고 나서야 정리를 멈췄다.
무엇이 부족할까. 무엇이 부족하기에 나는 정리를 멈출 수 없는 것일까. 선반 속에 크기순대로 나열되어있는 책들, 색상별로 배치된 가방, 용도별로 분류되어있는 케이블을 바라보다 한숨이 나왔다.
공허했다. 방 안에 있는 물건들은 전보다 완벽하게 제자리에 있는데 내 마음은 전보다 더 정리가 안 되어있었다. 부족한 것은 정리가 아닌 내 마음을 들여다 보는 시간이었다. 나는 애꿎이 분풀이를 받던 물건들을 손에서 내려놓았다.
나는 항상 나에게 무언가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번에도 정리가 아직 완벽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끝이 없는 정리와의 싸움에서 패배한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애초에 물건들은 정리할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정말로 정리해야 했던 건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의 강박적인 생각이었다. 나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었고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은 나의 오만이었고 욕망이었다. 스스로를 통제하기 위한.
나는 다시 한숨을 크게 내쉬고 아직 정리가 끝나지 않은 (어쩌면 이미 정리가 끝났을) 물건들을 서랍 빈칸에 쑤셔 박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정리되지 않은 물건 칸’
나는 어리석다. 깨달음을 얻었지만 분명 또 다시 정리를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무엇을 정리해야 하는지 알았으니 조금은 다를 것이다.
부디 이번엔 정리가 끝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