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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현석 Nov 03. 2023

소반(강원반) 만들기

앎을 통한 기쁨

앎!

쉼 없이 살아온 동안 나는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못하는가?를 고민하며 지냈던 것 같았습니다. 잘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 같습니다.     


내 삶에 위안을 주었던 이야기로 시작해 보렵니다.     


조선조 말기 종이장수 최총각이 절에 창호지를 필러 왔다가 스님들에게 설법을 하는 조실 스님의 법문을 듣고 스님이 되고자 합니다. 열심히 물 긷고 나무 하는 등 절 일을 거들면서 스님이 읽어 주는 대로 불경공부를 시작합니다. 생각과는 달리 불경을 한구절도 외우지 못해 좌절감에 빠진 최총각은 자기의 머리 나쁨을 탓하며 절과 인연 없음을 알고 하산하려 했으나 조실 스님은 깨달음을 주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부처시절 판타카야는 부처님 법문을 설하셔도 기억하지를 못한다며 나는 바보이기에 떠나려 한다고 했습니다. 부처는 “판타카야, 내 말을 기억하거나 외우는 일은 그렇게 소중한 일이 못 된다. 오늘부터 절뜰을 깨끗이 쓸고 닦으면 얻는 바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날부터 판타카야는 절 안팎을 열심히 청소하다 어느 날 빗자루를 던지며 알았다며 제게 쓸고 닦으라는 말씀은 매일같이 나의 업장을 쓸고 마음을 닦으라는 뜻임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 후로 날마다 더 노력하여 글 한 줄 못 외던 최총각이 무엇이든 한번 보면 줄줄 암기해 버렸고 훗날 누구나 존경받는 스님이 되었다고 합니다.     


진로교육원에서 강원반을 만드는 연수를 들었습니다. 나무판에 못을 쓰지 않고 오직 끌과 톱을 이용하여 반상을 만드는 연수였습니다. 강원반을 만드는 일은 매우 어려웠습니다. 똥손인 내가 무엇을 재단하거나 도구를 사용하여 정확하게 깎아내고 잘라내는 일은 나에게는 낯선 작업이었습니다. 잘 만들어야겠다 혹은 완성해야겠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참여하였기에 배우고 만드는 즐거움을 잃어버렸습니다. 마치 최총각이나 판타카야처럼 잘 못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인해 배우는 즐거움을 잃어버려 바보라고 생각한 것처럼 말입니다. 


나는 천천히 배우기를 즐겨하며 오랜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기에 한번 휙 보고 지나가는 것은 금방 잊어버리고, 하려고 시도하면 당황스러워져 바보처럼 생각이 잘 나지 않습니다.(최총각처럼 말입니다). 새로운 배움은 나를 익숙하게 만드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로 하더군요.         


지금 잘했든 못했든 여러 경험 많으신 분들의 조언과 도움으로 만든 강원반을 보면 마음이 흐뭇해집니다. 되어서 익숙해져 가는 나 자신을 보는 것 같습니다. 나무 뚫고 톱질하며 끌로 다듬고 하는 과정들이 점점 두려워지지 않게 되면서 내 몸은 그 과정이 익숙해져 만드는 일이 기쁘게 되더군요. 그래도 여전히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은 두렵습니다. 생각 속에서는 잘 만들 수 있지만 내 몸에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겠죠.     


 강원반을 만들면서 배움은 무엇인가를 단지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앎으로 해서 생기는 그 기쁨 때문에 배우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배운다는 것은 그것을 어딘가에 이용하거나, 혹은 특별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배우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배운다는 것은 배우는 것 자체가 기쁘기 때문입니다. 난 그것이 앎이라 생각합니다. 


배움을 힘들어하는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를 더 잘 이해해 주고 도와주어야겠습니다. 배우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기쁨으로 전달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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