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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롱님 Mar 04. 2020

8살, 코로나 입학생 #2 몰랑이 학사모

D-10 2020년 2월 21일


#최애캐릭터 #몰랑(Molang)

나에게 하얀 토끼는 그 옛날 '마시마로'였고, 그나마 발전해서 최근 캐릭터 중에 얘기하라면 '오버액션 토끼'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몰랑이'라며 꽃이나 도넛, 핫초코 등을 들고 있는 하얀 토끼를 자랑하며 아끼기 시작했다.  


"몰랑이?"

"응, 몰랑이. 선생님이 주셨어."

"몰랑몰랑해서 몰랑이인가? 근대 만져보니 딱딱한데? 지우갠가."

"아니야. 친구들이 다 몰랑이라고 했어. 자두는 오늘 도넛 몰랑이 받았고, 승기는 펭귄 몰랑이 받았어. 돌돌이 말로는 이마트 가면 몰랑이 12개를 판대. 돌돌이는 아빠가 주말에 사줬대. 선생님도 거기서 사 오시는 거래."

"그래? 선생님이 착한 친구들에게 선물로 주시는 거구나."

"응. 나도 몰랑이 많이 갖고 싶어. 우리도 이마트 가면 안돼?"... 결국 기승전이마트이긴 했다.

 

꽁이는 4살부터 집 근처 국공립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했고, 이제 곧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담임 선생님은 초등학교 갈 준비로 한글과 수 공부를 맡아 챙겨주셨다. 겨울부터 선생님은 학습 및 생활 태도가 좋거나, 받아쓰기나 수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에게 연필 한 자루씩 선물하기 시작했다. 연필 끝에 '몰랑이'라는 하얀 토끼 캐릭터가 달려 있었는데 이 몰랑이가 열매반 어린이들의 잇템이 될 줄은 그땐 상상을 못 했다. (지우개는 아니었다.)




#몰랑이_학사모  

엄마는 몰랑이를 사주지 않겠다고 얘기했다. 어릴 때부터 장난감을 컬렉션 하기 좋아하는 성향이라 몰랑이를 수집하기 위해 전국 어디에도 갈 기세인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몰랑이 연필 1타스가 6천 원 정도로 가격보다 성향 때문에 엄마는 미리 철벽을 친 거다. 다 모으려면 2~3타스는 사야 하는데 연필을 팽개쳐두고 몰랑이들만 가지고 놀게 뻔하다.


2월 20일에 만난 친구에게 이런 얘기를 했더니 이모 찬스 써야 한다며 모닝글로리에서 몰랑이 연필 1타스와 몰랑이 보석함, 파우치를 졸업 선물로 사주었다. 나는 네가 엄빠를 제치고 서열 1위에 올라설 거라며 웃으며 고맙다고 전했다. 그날 오후 어린이집 하원길에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어린이라며 빨리 집에 가서 몰랑이들과 놀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어린이집에서 선물 받은 몰랑이 9마리에 새로운 12마리가 집에 왔다.


2월 21일, 이날이 어린이집의 마지막이 될 줄 몰랐지만... (그걸 알았던 것처럼)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몰랑이 학사모를 만들어 왔다. 학사모엔 평소 가장 사랑하는 고양이 대신 귀여운 몰랑이가 그려져 있었다. 이른바 '몰랑이 학사모'!  이 학사모를 쓰고 몰랑이들과 함께 넷플릭스 'Molang' 만화영화를 보는 모습이 우리의 졸업 세리머니였을 줄이야...


2월 23일 밤, 어린이집에서 공문이 왔다. 24일 월요일부터 휴원 한다고. 25일이 졸업식이었는데 졸업식도 취소한다고 했다. 학교 입학식에 이어 졸업식도 사라진 허무하고, 속상하고, 그냥 화가 나서 짜증이 폭발해 잠이 오지 않는 밤이었다.




#몰랑이와의일상

몰랑이들은 진짜 토끼처럼 계속 번식을 했다. 엄마 친구가 선물해준 몰랑이에 없는 개구리몰랑이, 펭귄몰랑이 등을 갖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 꽁이 돼지 저금통에서 용돈을 꺼내 몰랑이들을 찾으러 완구시장으로 출동했다. 새로운 몰랑이 연필 1타스와 몰랑이 컬러펜, 필통, 스케치북, 지우개 등등 몰랑이 문구들을 구입했다. 그런데 꽁이 친구 엄마가 몰랑이 연필 1타스를 또 선물해주셨다.


몰랑이 부자가 된 꽁이는 몰랑이 집이 필요하다며 당장 만들자고 했고, 우유팩을 쌓아 10층 아파트를 만들까 하다가 계란을 사고 남은 계란판을 활용하기로 했다. 그렇게 집과 레고로 만든 자동차가 탄생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몰랑이들 출석 체크하고, 놀이를 하고, 밥을 먹이고, 저녁엔 목욕을 시키고, 집에 잠을 재운다.





#졸업기념사진 #상장  

다행히 어린이집 엄마들의 간곡한 부탁에 열매반 졸업식은 초등학교 입학 후 좋은 날에 다시 만나 하기로 했으나, 엄마는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집 근처 사진관에서 졸업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꽁이가 좋아하는 노랑 폼폼이 국화꽃이 학사모를 쓰고 있는 꽃다발을 들고 졸업을 축하했다.  


꽁아, 그동안 잘 자라준 너에게 엄마도 상장을 줄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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