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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롱님 Mar 05. 2020

8살, 코로나 입학생 #3 1학년 1반 1번

D-113 2019년 11월 10일


#1학년교실 @경기도어린이박물관

작년 가을 미국 한달살기 후 한 뼘은 더 큰 꽁이가 어린이박물관에 가고 싶다고 했다. 여름에 다녀왔는데 뭐가 재미났을까 싶어 물었더니, 1학년 교실에 가서 학교놀이하고 싶단다. 용인에 위치한 어린이박물관 1층에는 경기도 초등학교 1학년 교실이 체험공간으로 마련되어 있는데, 1학년 교과서 외에도 알림장, 받아쓰기 종이와 연필, 지우개가 있어서 누구나 학교놀이를 할 수 있다. 여름에 갔을 때에도 선생님과 학생 놀이를 한참 하고 왔는데, 그동안의 한글과 수 공부 실력을 뽐내고 싶었는지 다시 가잔다.


다시 찾은 1학년 1반 교실 밖은 초록 초록한 느낌에서 단풍이 들어 우아한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엄마는 담임선생님이 되어 입학한 학생들의 번호를 정하고, 시간표를 짜고, 알림장에서 쓸 내용을 부르고, 받아쓰기를 하는 놀이가 반복되었다.


꽁이는 원하던 1번이 되어 창가 앞 첫 번째 자리에 앉았고, 함께 온 매직이는 30번이 되어 1번의 짝꿍 자리에 앉게 되었다. 번호는 똘똘한 순이란다. (학창 시절 때 성적순으로 자리를 앉혔던 기억이 나기도 ㅠㅠ)



초등학교 전에 한글과 국어를 다 떼어야 하고, 수학은 기본 연산 정도는 마스터해야 하며, 영어는 3학년부터 시작하니 그동안 까먹지 않게끔 꾸준히 가르쳐야 한다는... 선배 엄마들의 말을 수백 번 들었지만, 사실 초등학교를 직접 가보지 않는 한 부모가 사교육의 광풍 안에서 중심을 잡기는 어렵다. 그런 나에게 경기도어린이박물관 1학년 교실은 따뜻함과 안정됨을 선물해준 곳이기도 하다.


1학년이 배우는 국어, 수학 교과서와 봄/여름/가을/겨울 교과서를 보면서 초등학교라는 곳에 미리 겁을 먹을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학교를 두렵고, 무서운 곳이라고 생각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선행을 아무리 해도 학교는 재미없는 곳으로 느낄 테니 나는 최대한 꽁이에게 학교는 즐겁고 새로운 배움이 가득한 곳이라고 알려주기 시작했다.




#1학년1반1번

꽁이는 취학통지서가 나오고, 예비소집일을 함께 가고, 어쩌다 입학이 연기된 후에도 계속 1학년 1반 1번이 되고 싶다고 얘기했다. 1반이 될 가능성은 1/5 또는 1/6 확률이고, 1번이 될 가능성은 0에 가깝다고 설명을 했다. 가나다 순으로 번호를 메기면 뒷 번호, 생일 순으로 하면 중간, 키 큰 순으로 하면 앞이나 중간 번호가 될 거니까 혹시 학교에 가서 실망하지 말라고 얘기했더니, '똘똘한 순' '수영 잘하는 순' '밥 잘 먹는 순' 등 자기만의 기준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아이의 눈높이대로 다양한 기준이 도입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2월 28일 오후 4시 반 배정을 문자로 통보해준다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로또 당첨을 기다리는 것처럼, 대학 입학 합격을 기다리는 것처럼,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4시 알람을 맞춰놓고 만화영화를 보고 있었다. 어린이집에서 3명이 같은 초등학교에 가는데 과연 누가 어느 반이 될까? 10,9,8,7 카운트타운을 외친 뒤 받은 문자엔 1-3반이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나는 바로 카톡방에 들어가서 상황을 확인했다. 여자 친구 A는 5반이란다. 마지막 남자 친구 B는... 한참 후에 5반이라고 톡이 왔다. 이 사실을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망설였는데, 아이는 내 감정을 읽었는지 자기만 3반이냐며 울기 시작했다. 아마도 세상에서 엄마가 해줄 수 없는 게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된 순간이었을 거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 뒤 아이는 나에게 왔다. '왈칵' 눈물이 흘렀고, 아이는 조용히 내 얼굴을 닦아주었다.




#1학년3반 #스스로

3월 23일부터 1학년 3반 교실로 혼자 올라간다. 교문에서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면 또다시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기분이다.


마지막 어린이집 등원이 될줄이야


꽁아, 엄마가 교문 앞에서 힘차게 손 흔들어 줄게~ 초딩이 된 걸 진심으로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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