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31 2020년 7월 10일
#홈스쿨링을시작했다
7월이 되면서 온라인 수업 때 활용하는 학습꾸러미의 양도 늘어났다. 학교에서는 등교일에 일주일 분량의 국어, 수학, 창체활동 학습꾸러미를 파일로 보내주신다. 나는 EBS 온라인 수업을 듣고 난 뒤 아이를 테이블에 앉힌 뒤 그날의 학습꾸러미를 시킨다. 문장 따라 쓰기, 수학 비교 연산을 한창 배우고 있는데 집중을 안 하다 보니 따라 쓰기만 하면 되는 문장들도 오탈자가 나오고, 크기와 길이, 넓이 등을 비교하는 연산도 가끔 헷갈려한다. 엄마들 사이에 내 자식이 친자식인지 확인하고 싶으면 공부를 직접 가르쳐보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욱! 하고 화를 내며 빨간 도깨비로 변신하면 내 자식이 맞다는 것. 꽁이는 분명 내 딸이 맞았다. ㅠㅠ
한두 달은 일주일에 한 번씩 가는 학교도 즐거워했고, 학습꾸러미도 매일 분량대로 잘 해오던 아이들도 '숙제=지겨운 것, 하기 싫은 것'이라는 생각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붙어 지내는 사이라 자칫 예민해지기 쉬운 우리는 실랑이하는 시간도 점점 늘어났다. '왜 이 아이와 숙제로 싸우는 엄마가 되었을까?'
그런데 이런 하루하루를 나만 보내는 건 아니었다. 친한 엄마들도 힘겨워하시길래 나는 카톡방에 "아이 셋 함께 수업할까요?"라고 입력했는데 엄마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일주일에 1회씩 각자 집에 모여 온라인 수업과 학습꾸러미, 그리고 점심을 먹는 홈스쿨링을 시작해 보기로 했다.
외롭게 수업 듣던 아이는 서둘러 자기 방과 거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세명이 앉을 수 있게 좌식 테이블도 꺼내놓고 창체 수업에 필요한 색종이, 색연필, 가위, 풀도 넉넉하게 준비했다. 나는 아이들의 공통된 취향을 고려해 사과, 얼려 먹는 요구르트, 과자 등을 구입하고 점심 메뉴인 오므라이스 재료도 미리 세팅해놨다.
홈스쿨링 첫날은 우리 집이다. 9시까지 집으로 아이들이 도착했다. 1교시 국어 수업을 하며 종종 잡담을 나누기도 했지만 그래도 TV 속 정소현 선생님의 수업을 집중해서 듣는 모습이 무척 대견하다. 한 명이 떠들면 한 명이 제지하고 한 명이 선창하면 두 명이 따라 한다. 아이들 스스로가 수업에 집중하려고 노력하는 모습 속에 그룹 스터디는 그린라이트가 켜진다.
#아이의속도
내 아이 하나만 바라볼 땐 이 아이의 속도가 성에 차지 않았다. 글자는 잘 쓰는 건지, 덧셈 뺄셈 속도는 적당한지, 문장 이해력은 괜찮은 수준인지... 가끔은 신나게 칭찬했다가 또 과하게 꾸중하기도 한 지난날이 스쳐 지나간다.
아이들이 함께 수업을 듣고 학습꾸러미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니 각자의 기질이 느껴진다. 조심조심 똑바르게 연필을 꾹꾹 눌러쓰는 아이, 빨리 끝내고 싶어 틀린 걸 지우지도 않고 덧쓰는 아이, 둘 보다 느리지만 속상해하지 않고 본인의 속도를 유지하는 아이를 보며 셋의 자존감을 지켜주며 칭찬을 했다.
‘옆집 아이를 가르친다는 마음은 이런 거였구나.’ 내 마음에도 반성과 함께 희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참으로 부끄러웠다.
#우리집에서공부하자
한집을 정해놓고 모여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세명의 집을 번갈아가며 수업을 한다는 것에 아이들은 고무되었다. 다음엔 누구 집에서 수업하는지, 자기 집에서 하는 날 뭐 할지에 대해서 벌써 들떠 있는 모습이다. 물론 엄마들에게도 일주일에 4시간의 여유가 더 생기는 것으로, 우리 모두에게 플러스가 될꺼다.
3주간의 여름방학을 보내도 코로나 19 바이러스 치료제가 대중화되지 않는 한 우리의 삶은 지금과 비슷하겠지. 수도권 내 거주하는 아이들은 매일 등교하지 못할 테고, EBS를 보며 온라인 수업을 병행할 것이다. 늘어나는 학습꾸러미의 양도 부담이지만, 어려워지는 국어와 수학을 엄마 선생님이 온전히 맡아 가르친다는 것은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아이는 학습지나 과외선생님에게로, 아님 학원으로 보내질 텐데 과연 그 방법이 공교육을 처음 접하는 8살을 위한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걱정된다.
다행히 4살 때부터 함께 먹고, 기도하고, 사랑해온 친구들 덕분에 집에서 함께 공부하는 모임을 루틴화 시켜 보기로 했다. 남들보다 더 많은 걸, 더 먼저 가르친다기보다 함께 배우며 성장하는 과정을 기억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