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단지에 있는 놀이터는 언제나 아이들로 붐빈다. 딸아이가 크면서 이제는 갈 일이 없는 곳이지만 육아를 하며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은 아마 놀이터다. 딸아이는 365일 중 360일은 놀이터를 가는 아이였다. 심지어 비가 오는 날에도 온몸이 흠뻑 젖을 때까지 놀이터에서 뛰어놀았다. 미리 약속하지 않아도 놀이터는 만남의 광장이 된다. 아이가 잘 놀아서 좋지만 놀이터에서 몇 시간을 노는 동안 나는 내내 벤치에 앉아서 기다려야 한다. 3~4살 정도 나이 때는 계단을 오르다가 넘어지진 않을까, 미끄럼틀에서 떨어지진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아이 뒤꽁무니만 쫓아다녔다. 5살이 지나면 아이가 신나게 놀 동안 벤치에 앉아서 쉴 시간이 생긴다. 한가하게 스마트폰을 하면서 쉴 수 있을 줄 알지만 그런 기대는 접어두길. 아이 친구의 엄마들이 하나둘 모여들면 가벼운 인사를 시작으로 입 모터를 가동할 준비를 해야 한다.
“아니, 놀이터에서 들었는데……” 아파트 내에서 돌고 도는 이야기의 출처는 대부분 놀이터 벤치다. 짧게는 30분, 길게는 2~3시간 거뜬히 이어지는 ‘벤치 수다’. 육아 고충이나 아이에 대한 고민이 주를 이루지만 초면이 아닌 사이라면 주제는 훨씬 방대해진다. 오늘 저녁 메뉴나 마트, 병원 정보를 서로 공유하기도 하고 인터넷 검색으로는 알기 어려운 학원 정보도 쏠쏠히 얻을 수 있다. 짧게 치고 빠지는 엄마가 있는가 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벤치를 지키는 엄마도 있다. 엄마들의 벤치 점유율은 아이의 놀이터 점거율에 비례한다. 그만 자리를 뜨고 싶어도 아이가 더 놀고 싶어 하면 수다에 계속 참여해야 한다. 때로 아이의 고민은 유치원에 대한 불만이나 다른 아이에 대한 불평으로 흘러간다. 궁금하지 않은 남의 남편, 시댁에 관한 험담에도 맞장구가 이어진다.
벤치에서 몇 번 안면을 튼 엄마들은 자연스럽게 서로 나이를 묻는다. 20대에 출산한 나는 종종 가장 어린 엄마가 됐다. “그냥 언니라고 해~”. 또 올 것이 왔구나. 정말 반갑지 않은 말이다. 분명 그런 관계를 즐기던 시절도 있다. 약속하지 않아도 놀이터에서 조우해 자연스럽게 저녁을 같이 먹으며 술잔을 기울였던 적도 많다. ‘OO 엄마‘에서 ‘언니’로 호칭만 바뀌었을 뿐인데 윗사람과 아랫사람으로 관계의 축이 묘하게 기운다. 아이들이 늘 평화롭게 잘 지낸다면 문제가 없지만, 아이들의 관계는 예상 밖인 경우가 훨씬 많다. 아이들 무리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라인이 존재하고 아이마다 기질과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언제나 갈등은 발생한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갈등과 화해는 당연하고 건강한 일이지만, 엄마의 감정이 이입되기 시작하면 엄마들 사이에 작은 균열이 생긴다. 애초에 ‘놀이터 모임’은 부실 공사인 경우가 많다. 단기간에 급하게 성립된 관계이다 보니 작은 균열에 와장창 무너지기도 한다. 특별한 갈등이 없어도 아이의 학년이 바뀌거나, 반이 바뀌면서 다른 친구를 사귀게 되면 자연스레 소멸되기도 하다.
유효 기간이 있는 관계를 몇 차례 반복하다 보니 마음의 문이 활짝 열리지 않도록 스토퍼를 걸어 두었다. 아이와 함께 평소처럼 놀이터에 출근 도장을 찍었지만 그 관계를 놀이터 밖으로 끌고 가지 않았다. 소극적인 엄마 탓에 아이가 소외감을 느끼는 순간이 종종 있었지만, 아이의 교우 관계가 엄마의 모임 여부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것은 절실히 깨달았다. 놀이터에 자주 가면 유독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고 어른에게도 싹싹한 아이들이 있는데 그중에는 엄마가 바빠서 놀이터에 한 번도 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어떤 엄마는 아이를 위해 이 놀이터, 저 놀이터 다니며 친구를 만들어 주지만 아이의 교우 관계는 엄마의 노력에 비례하지 않기도 한다.
놀이터의 시간은 째깍째깍 돌아간다. 아이가 초등 고학년이 되면서 같이 놀이터에 갈 일도, 아이의 교우 관계를 위해 놀이터 모임에 낄 일도 없어졌다. 놀이터는 주인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아이와 엄마들로 북적인다. 그 시절 놀이터에서 같이 뛰놀던 아이의 친구는 우연히 만나면 스마트폰으로 얼굴을 가리기 바쁜 사춘기 소녀가 됐고, 유모차에 누워 있던 아기들은 이제 놀이터를 활보하는 골목대장이 됐다. 요즘 같이 해가 길어지면 저녁 7시까지도 놀이터가 활기차다. 여름 뙤약볕에도 벤치를 지키는 엄마들을 보며 연민과 존경의 눈빛을 보낸다. 이제는 다음 주인에게 넘어간 놀이터가 유난히 작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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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생일 주간을 맞아 경주 여행을 다녀왔다. 정확히는 부산을 시작으로 울산, 경주 순서로 올라오며 여행을 했다. 경주는 20대 때 친구들과 여행한 이후 근 10여 년 만이다. 남편과 아이는 경주를 가본 적이 없다. 나도 딱 아이 나이 때 처음 경주를 가봤다. 초등학생 아이를 둔 가족들의 단골 여행지인 건지...... 아니면 나의 어릴 적 기억이 자연스럽게 경주로 이끈 건지도 모르겠다.
아빠의 역사 설명이 함께한 나의 첫 경주 여행은 어린 나의 눈에도 볼거리로 가득했다. 언덕처럼 보이던 것들이 왕의 무덤인 게 놀라웠고 작은 십 원짜리 동전에 그려진 탑이 실제 어마어마한 크기라서 한참을 우러러본 기억도 난다. 그리고 하룻밤 묵었던 호텔의 야경이 예뻐서 엄마랑 거기서 사진을 찍었던 기억도 있다. 하루종일 유적지 앞에서 포즈를 취했던 터라 ‘엄마는 왜 이런 곳에서까지 포즈를 취하라는 거야‘라는 불만을 가지며 조금은 부끄러웠던 기억.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호텔 카페에 들렀다가 가격이 너무 비싸서 온 가족이 그대로 나왔던 일도 있었다. “핫도그 하나에 만 원이 넘네?”하던 아빠의 멋쩍은 웃음. 도망치듯 빠르게 카페를 빠져나가는 우리 가족을 쳐다보던 직원의 모습. 이상하게도 그런 장면들을 경주 여행의 한 조각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10살의 여행이 마냥 무지갯빛은 아니었다. 어디서든 사진을 남기고 싶어 하던 엄마의 카메라도, 깜빡이 없이 불쑥 들어오는 아빠의 역사 설명도 유난하지 않았다. 그걸 받아들이는 내가 달라졌을 뿐.
아이에게 이번 여행은 어떻게 기억될까. 엄마 아빠 맘대로 데려간 식당에서 징그러운 곰장어를 목격한 일이나 비싸서 못 샀던 인형 대신 좋은 기억이 훨씬 많았길 바란다. 부모가 짜놓은 루트에 아이를 끌고 가는 여행은 유효 기간이 있다. 아이의 시간은 너무도 빠르게 흘러서 몇 개월 전 여행에서는 기꺼이 즐기던 것도, 어느새 시시해한다. 그래서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도 함께 정해야 한다. 의견이 맞지 않는 것은 서로 양보하면서 타협점을 찾아간다. 딸아이는 보통 소품샵을 가서 예쁜 잡화를 사거나 맛있는 디저트가 있는 카페를 가고 싶어 한다. 하지만 아빠는 다르다. 여자들의 소품샵 투어가 재밌을 리 없다. 그래서 한때는 아이와 둘이서 다녔다. 여행까지 와서 의견이 충돌하는 상황을 없애고 싶었다. 그런데 피하는 게 정답은 아니었다. 싫어도 기다려주는 것. 재미가 없어도 함께 해보는 것. 아빠가 소품샵 투어에 함께하면, 그다음 아빠가 가고 싶어 하는 곳에 군말 없이 따라간다. 이제는 엄마 아빠의 쇼핑이 길어져도 스스로 앉을 곳을 찾아 기다릴 줄 아는 아이가 됐다. 그런 의젓함이 고마우면서도 어른의 시간보다 몇 배는 빠르게 흐르는 아이의 시간이 서글프다.
어쩌면 카메라 앞에서 이토록 활짝 웃는 표정을 내년에는 못 볼 지도 모르겠다. 내가 “카메라 봐봐~”라고 부르면 ‘옛다 포즈’ 느낌으로 어물쩍거리는 우스꽝스러운 포즈도 내년에는 못 볼 수 있겠다. 그렇게 생각하면 여행의 매 순간이 특별하고 애틋하다. 언젠가 친구들과 경주 여행을 할 때 엄마 아빠와 함께했던 첫 경주를 문득 떠올려 주기를 바란다.
매주 금요일 연재 중
육아를 하면서 느낀 단상들을 적습니다.
‘아이가 나를 키운다’는 말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10년 차 엄마의 자아 성찰 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