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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영화 리뷰] 더 드로어 앤 더 크로우

미치도록 사랑한 사람과의 상실을 치유하고 새…

미치도록 사랑한 사람과의 상실을 치유하고 새로운 사랑의 순환의 유기적 연결


세상엔 수많은 단어가 있지만, ‘상실’이라는 단어만큼 강렬한 정서를 내포한 단어는 많지 않은 것 같다. 그 단어를 입에 머금고 있으면 마치 바다에 천천히 가라앉는 듯한 느낌이 든다. 고요함, 차분함, 어쩌면 우울일 수도 있을 복합적인 감정들이 가슴 속에서 무겁게 가라앉는다. 적어도 나에겐 ‘상실’이라는 단어가 ‘죽음’이라는 단어보다도 더 무겁게 느껴진다. 누군가를 상실한다는 건 슬픈 일이지만 한편으론 그래서 다행인 게 아닐까, 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물리적인 관계에서는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일지라도 부정적인 감정이 끼어들게 마련인데, 상실 이후에는 모든 감정이 거르고 걸러져 결국 사랑만 남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온전히 사랑의 감정만을 가지고 누군가를 생각할 수 있는 건 상실 이후에나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이런 생각은 상실의 아픔에 대한 합리화일 뿐이고, 또다시 상실의 경험을 하게 되면 이런 생각들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되겠지만 말이다. 결국 상실의 아픔이 사랑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면 상실은 사랑이 존재하는 한 필연적인 일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나 상실을 경험하고, 아파하는 동시에 성숙해지고, 다시 사랑하며, 살아간다. 그러다 언젠가 다시금 상실을 겪게 된다면 그 아픔이 후회에서 비롯되지 않도록 우린 더 열심히 사랑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이 영화에서는 말하고 있다. 


영화의 시작은 한 남자의 상실감에 빠져 있는 모습에서 시작한다. 그런 그에게 서랍이 스스로 열려고 하고, 남자는 그 서랍이 나오지 못하게 닫는다. 그러다 벽면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벽면을 열면 문이 나오고, 문을 여자 새로운 여자가 서 있다. 여자와 남자는 침대에서 어색하게 TV를 켜지만 TV는 나오지 않는다. 결국 둘은 서로에 대한 감정으로 사랑을 나누고 함께 지낸다. 그 와중에도 서랍은 나오려고 하고, 남자는 밤중에 일어나 서랍을 닫는다. 여자는 온통 하얀 주변의 배경을 자기 스타일로 바꾸기 시작한다. 뭔가 변화되고 색다른 모습을 잠자는 남자를 깨워 보여주지만, 남자는 반응이 별로 없다 여자는 그 원인이 서랍에 있다고 생각하고는 조심스럽게 서랍을 연다. 그 안에서는 아직 색깔이 흰 여자가 들어가 있고, 여자를 꺼내 아름답게 화장을 해주고, 입고 있던 자기 옷을 벗어 입고는 여자는 발가벗은 모습으로 그녀가 나온 서랍으로 들어간다. 


잠에서 깨어난 남자는 서랍 속에 그녀가 나왔다는 걸 알고는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린다. 하지만 그림을 본 그녀는 변화한 자신을 그린 그에게 실망 한 채 방을 온통 검은 색으로 칠한다. 마치 자신의 모습을 찾으라는 듯, 남자는 여자를 찾았지만, 여자는 안다, 창밖의 까마귀가 왜 울어대고 있는지, 그녀는 문을 열고 까마귀를 따라 날아간다. 그러자 남자는 서랍을 열고 서랍 속에 누워있는 원래의 여자, 서랍 속에 들어간 그녀를 바라본다. 


영화는 마술사가 작은 공에서 끊임없이 기다란 줄을 뽑아내는 것처럼 ‘상실’이라는 단어를 열어 그 안에 담겨있던 이야기를 줄줄이 꺼내어 쓴 것만 같다. 하지만 전반적인 정서가 우울하기보단 오히려 담담하고 차분하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주인공 자신이 어떤 감정에 휩쓸리기보단 감정을 스스로 관찰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마치 내가 언젠가 느꼈던 감정들을 스스로 관찰하는 느낌마저 든다. 


영화에서 나오는 까마귀는 계속 창가 주변을 맴돌며 니가 이미 상실되었다는, 죽음을 알려주는 메신저 역할을 한다. 예전부터 서양 사람들은 사람들은 죽은 사람의 영혼을 저승으로 데려가는 건 까마귀라고 믿는다. 서양에서는 기분 나쁜 울음소리나 검은 모습에서 까마귀를 불길한 새라고 하며, 죽음과 관계 짓는 속 신이 많은 편이다. 집 주위에 까마귀가 나는 것을 보고 ‘죽음의 전조’라고 여기기도 하며, 까마귀의 무리가 소란스럽게 하늘을 나는 것은 전쟁을 예언한다고 한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까마귀는 창 밖에서 누군가를 기다린다. 자신이 상실된 걸 아는 걸 깨닫느라고 울음소리도 거칠게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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