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지날 무렵의 초록한 마음
모두들 보셨나요, 오늘 구름 하늘.
오늘은 하늘님보다 구름님이 주인공이셨으니까 구름 하늘이라 불러 봅시다.
어찌나 비현실적으로 뭉게뭉게 피어올랐는지
길거리를 교차하는 사람들이 모두 같은 곳을 한참 응시하고 있더랍니다.
찍어내고 담아내고 멍-하고,
반경 3m 이내 나를 포함한 세 명이 그러고 있으니
지나가던 세 명의 또 다른 사람들도 하나같이 뒤를 돌아
찍어내고 담아내고 멍-하고,
33초가량 그러고 있다 보니 일종의 보이지 않는 공동체 의식도 뭉게뭉게 피어올랐다죠.
서로 다른 두 개의 눈으로 같은 한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기분은
나는 잘 살아있구나, 하는 쾌감과 함께
찐득하게 눌어붙은 반창고를 벗겨낼 때의 상쾌감을 주었달까요.
그때 느꼈습니다.
여름이 벗겨지는구나.
여름 내내 찡그렸던 사람들의 표정이 벗겨지는구나.
낮엔 닿기만 해도 소스라치던 한 사람 한 사람이 이제
밤엔 닿지 않아도 상쾌하게 부드럽게 벗겨지는구나.
우리 숨에 두둥실 들러붙은 먹구름이 벗겨지는구나.
여름이 지날 무렵 아쉬운 건 딱 한 가지입니다.
이제 올해의 초록을 만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올해의 마지막 초록을 눈에 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떠오른 곳이 바로 남한산성이었습니다.
희고 희다 못해 시퍼런 눈이 내리는 남한산성이 아니라
초록 볕이 드는 남한산성을 걷고 싶다, 고 당신은 말씀하셨습니다.
성벽이 둘러싸인 둘레길을 걷기 위해선 최소 한 시간이 소요됩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어휴 그건 무리입니다, 당신이 허리와 고관절 사이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나는 조금 슬펐습니다.
몇 해 전만 해도 당신은 걷는 거라면 지구 한 바퀴 끄떡없는 사람이었는데
무심했던 몇 해 사이의 여름이 얼마나 길었을지, 죄책감이 듭니다.
그래서 그래서 당신을 최대한 초록과 함께 담았습니다.
초록은 치유를 의미하지,
초록은 사람을 가장 편안하게 하는 색이지, 하고 생각하며
담지 못한 그동안의 여름이 자꾸만 미안해서 눈을 사진기에만 딱 붙이고 있었습니다.
사진이 찍힐 때마다 사진기에서 '초록', '초록' 소리가 나는 듯했습니다.
그래그래 가을이 왔을 때는 최소한 후회는 말자,
생각을 하니 사진기는 곧바로 '저런', '저런' 소리를 내는 듯했습니다.
사진에서 내 찡그린 표정이 싫어요,
햇빛이 강했던 날이었기에
손으로 빛을 겨우 가려 액정 속 사진을 확인한 당신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여름이라 그렇습니다,라고 했어야 했는데
그건 당신의 문제입니다,라고 뱉어버린 후엔
가을이 오기도 전에 후회를 하겠군, 하고 후회를 했습니다.
뒤이어 셔터를 누를 때 사진기는 '쯧쯧' '쯧쯧' 소리를 내는 듯합니다.
바람 한 점 없는 어느 여름날 흘러가는 구름보다도 천천히 걸어
남문(南門) 쯤 다다랐을 때였을까요.
작년 여름엔 왜 혼자 꼭 경주를 갔어야만 했느냐, 하고 당신이 물었습니다.
그건 경주가 40도였기 때문이죠,라고만 답했습니다.
순간 마음속은 포자를 퍼뜨리는 버섯처럼
말할 수 없는 수많은 이유들이 은밀하게 솟았습니다.
나는 홀로 떨어져 있고 싶었고 도망치고 싶었고 미지로 사라져 버리고 싶었기 때문에,
그것도 가장 더운 곳에 나를 떨어뜨리고 싶었고 한껏 찡그리고 싶었고 녹아내리고 싶었기 때문에,
그러다 <무진기행>에서 그랬던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다시 돌아와 살고 싶었기 때문에,
아니 제가 '경주는 죽어있는 도시다'라고 표현했다는 연유로
많이들 오해하시는데요,
나는 죽고 싶어서 간 게 아니라
살고 싶어서 간 거란 말입니다.
그래서 석굴암의 본존불께 그렇게 말했죠.
살게 해 주십시오, 부디.
생각해보니 작년 그곳에서도 비슷한 대답을 한 기억이 떠오릅니다.
석굴암을 내려오는 길에 불국사에서부터 유일하게 옆에 있던 한 스페인 가족이 말을 걸었습니다.
그들은 영어로
왜 혼자냐, 고 물었고
나는 어눌하게
그건 경주가 40도이기 때문, 이라 말했습니다.
그 후 스페인어로 무어라 말한 것 같은데 나는 알아들을 수 없었기에
그래서 여기 우리밖에 없군, 이라 말했을 거라 나는 마음대로 상상했습니다.
버스를 함께 기다리던 풍경은 그 무엇보다 초록했습니다.
문득 나는 그들에게 가장 경주스런 노래를 들려주고 싶다, 생각했고
한참을 고민하다 노고지리의 <찻잔>을 들려주었습니다.
'너무 진하지 않은 향기를 담고
진한 갈색 탁자에 다소곳이
말을 건네기도 어색하게
너는 너무도 조용히 지키고 있구나'
어떻습니까,라고 물으니
땡큐,라고 여자는 웃으며 답했고
그녀의 딸처럼 보이는 어린아이도 따라서
땡큐,라고 말하며 웃었습니다.
나는 언뜻
그라시아스,라고 말해버렸고 순간 부끄러운 감정이 들어 얼굴이 벌게졌는데
다행히 버스가 와서 재빨리 탔지요.
죽어있는 도시에서 강렬히 살아있는 기분을 느꼈기 때문에
나는 내일 다시 서울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외에도 아무도 없었던 숙소에 들어와
야시장에서 사 온 주전부리를 펼치려는 순간
그곳에 들어온 두 명의 스페인 남자의 이야기라던지,
세 명의 중국인이 내게 길을 묻는 듯했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던 언어였기에 어색하게 뚜이부치, 만 반복했던 이야기 등등
죽음의 공간에서 벗겨지듯 생의 감각을 느낀 경험들
나를 살게 해 준 그 언어들
내가 경주를 가야만 했던 이야기들을 모두 들려줄 수 없기에
그건 경주가 40도였기 때문이었죠,라고 뭉뚱그려 대답한 겁니다.
대답이 되지 못했던 것 같았기에
나를 수련하러 간 겁니다,라고 덧붙였지만 그 역시도 대답이 되지 못한 건 마찬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아, 물론 하필 그날 전국에서 유일하게 경주가 최고 기온이었던 건 도착해서야 알았습니다.
아무튼 그때의 경주는 그 무엇보다도 솔직하게 초록했고,
또한 원 없이 담은 초록은 지난 일 년을 살게 한 원동력이었고,
내 소원을 들어준 석굴암의 본존불께도 심심한 감사인사를 드리러 다시 찾아갈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경주가 40도였기 때문이죠, 라는 대답엔
이 수많은 생의 이야기가 가득하다는 겁니다.
비록 들려주진 못했지만.
계절과 계절 사이엔 늘 지나는 계절감을 떠올려 봅니다.
여름이 벗겨지기 시작하고서야 보이는 초록과
잔뜩 찡그린 표정이 벗겨지고 나서야 보이는 구름
대체로 떳떳하게 여름을 마주하지 못한 것을 생각해보면
여름은 그 어느 계절보다 솔직하게 초록했는데
여름의 나는 늘 겁쟁이였나 봅니다.
그래서 가장 용기 있었던 작년 경주의 여름 한창과 3년 전의 여름 초입의 기억이
유일하게 숨지 않고 제자리에 버티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상수는 아버지에게 오랫동안 외면받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던 삿뽀로의 여름과, 어느 식당에 끌려가 된장술국밥이라는 글자를 끊임없이 쪼개어 읽으면서 죄책감을 덜어보려 했던 여름, 그리고 은총과 영화를 찍었던 여름까지 이야기했다. 그 겹겹의 여름에 대해 들은 경애는 “여름은 원래 그런 계절인가봐요.” 했다.
“제가 혹독한 이별을 겪은 것도 여름이었거든요.” (<경애의 마음>, 김금희)
글을 완성하지 못한 용기 없는 날 우연히 읽게 된 구절이었습니다.
나만 겁쟁이 같은 여름을 보내는 건 아니란 생각에 용기가 조금 났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초록을 원 없이 보고 싶었습니다.
영화를 봐야겠다, 싶어 집 밖을 나왔고
덕분에 오늘 구름 하늘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초록과 함께.
상영 중인 영화에서 포스터에 초록이 가득한 영화를 골랐고
마침 이 영화도 자꾸만 과거를 기억해내려고 발버둥 치는 것 같았습니다.
대뜸 나타났던 어느 겨울 코 끝을 간질이던 밀가루 반죽 냄새라던지
홀연히 사라졌던 어느 여름 끝 축축이 식은 계란말이 같은 것들.
영화에서 그런 게 자꾸만 기억에 남습니다.
계절감에 들러붙어버린 사사로운 기억들.
찝찝하고 고통스러울 만큼 찐득찐득한데
그런 것들이 결국 올해를 살게 하고 돌아올 계절을 버티게 합니다.
감독님도 동의하시죠?
이제 가을이 옵니다.
많은 여름의 흔적이 벗겨진 만큼 우린 이제 많은 것들을 껴입어야 합니다.
겉쟁이들이 판을 칠 것입니다.
벗겨야 할 표정들이 많고 벗겨야 할 겉옷들이 많아서 분간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제 올해에 여름처럼 벗겨지는 계절은 더 이상 없습니다.
여름이 지날 무렵 아쉬운 건 딱 한 가지,
무엇보다 솔직하고 떳떳한 초록을 만날 수 없다는 것.
내일부턴 먹구름이 비바람을 몰고 옵니다.
가을이 닥칩니다.
이제 저도 슬슬 겉옷을 준비해야겠습니다.
버팁시다 우리.
<초록>, 19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