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나리>를 빌려 쓴 어느 이야기
미처 자리 잡지 못한 땅에서 우리가 우리를 서로 구해낼 수 있을까.
할머니는 자주 미나리를 곁들였다. 특유의 강한 향이 어색해 나는 젓가락을 교묘히 피했지만,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갖가지 미나리 요리를 탄생시키며 밥상을 채웠다. 무침은 입에 영 안 맞다니 굴과 피조개 혹은 보리새우 따위를 섞어 부침을 내어줬고, 비빔밥에 섞인 미나리를 속속들이 골라내니 구운 고기에 양념장을 듬뿍 얹어 솥밥을 내어줬다. 그제서야 머쓱하게 바쁜 숟가락을 드는 내게, 그는 굵은 주름 속 미소를 숨기고 꼭 이런 훈수를 두었다.
미나리는 미나리는, 끈질기다.
벌레나 병균도 이겨낼 수 있는 강한 생명력이 있다.
미나리는 미나리는, 정화롭다.
똥구정물에서도 향긋하게 피어나니 네 몸의 독소도 노폐도 깨끗이 해줄 거다.
너는 너는, 미나리 좀 닮아라.
미나리는 군말이 없다.
미나리는 잘 자란다, 어디서든.
너는 너는, 그렇게 좀 자라라.
할머니는 도시로 이사한 후에도, 미나리꽝을 찾는다며 이리저리 먼 길을 거닐었다. 하루는 그늘지고 축축한 땅을 찾아 헤매다 모기에 잔뜩 뜯겨 퉁퉁 부은 얼굴로 돌아와 몸져눕기도 했다.
도시, 내가 홀로 이주해 자리한 지 어언 7년. 간혹 작고 풀 죽은 미나리꽝을 마주한다. 지글지글 구워진 삼겹살 기름 빠지는 기로에, 혹은 보글보글 끓여진 전골 사이 축 늘어진 미나리. 천천히 씹자, 향긋한 향이 코끝에 샌다. 그러면 가끔 그 봄날의 밥상머리가 떠오른다. 단단한 울타리가 나를 둘러싸고 있던 시절. 그 나른한 안정과 느슨한 속박이 아득하고 갑갑하게 느껴지곤 한다.
익숙한 고향을 떠나 강제로 이주된 도시, 할머니는 왜 그토록 미나리꽝을 찾아 헤매었나.
할머니가 기도했던 미나리처럼 나는 그렇게 자랐나.
어느 날 여자가 물었다. 언뜻 미간에 얕은 주름을 잡은 채.
우리가 우리를 구할 수 있겠느냐고.
우린 줄곧 질문을 질문으로 답하며 밤을 새우곤 했다.
나는 네게, 당장 모든 것을 버리고 아무도 우릴 모르는 곳으로 도망갈 수 있냐고.
너는 내게, 당장 모든 것을 버리면 아무도 우릴 모르는 곳에 자리 잡을 수 있겠냐고.
나는 네게, 아무도 우릴 모르는 곳에서 혼자가 되면 우리는 우리만 살면 되지 않겠냐고.
너는 내게, 아무도 우릴 모르는 곳에서 혼자가 되면 우리가 우리를 구할 수 있겠냐고.
불확실 명제에 멈칫, 눈과 고개가 가만히 흔들린다.
그늘과 햇빛, 오수와 바람, 썩은 열매와 핀 꽃.
미처 자리 잡지 못한 땅에서 우리가 우리를 서로 구해낼 수 있을까.
이 도시에서 나는 구원을 믿지 않아. 대신 척박한 땅에서도 어떻게든 자라온 것들을 생각하곤 해.
끈질기게 향긋하고, 군말없이 자라냈던. 살다보면 살아진다고. 다만 사라지지 않기 위해.
답변하지 않는 놀이에 연결되지 않는 문장.
그렇게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고
이 이야기로 다시 말문을 열었다.
'할머니는 자주 미나리를 곁들였다'고.
주절주절 당신을 헤집으며
또 이런 말 따위를 곁들이며.
우린 우리의 자리를 잡아주자.
우린 우리의 양분이 되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