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로마 신화 - 시시포스
제우스가 요정을 납치하자 요정의 아버지에게 딸의 행방을 알려준 시시포스
그는 제우스의 미움을 받고 저승에 버려지는 벌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 벌마저 지혜를 발휘해 벗어나는데 그 일화는 다음과 같습니다.
저승에 내려가기 전 시시포스는 아내에게 “자신의 장례를 치르지 말고 시신을 광장 한가운데 버리시오”라고 말했다. 시시포스의 아내는 아무 영문도 모른 채 그의 말을 따랐다. 이후 시시포스는 저승을 다스리는 하데스(Hade) 앞에 끌려갔는데 그때 시시포스는 하데스 앞에서 아내를 비난하며 말했다. “저는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했는데 아내에게도 버림받았습니다. 더욱이 장례조차 치르지 않는 건 지하의 신 하데스를 존중하지 않는 뜻입니다. 제가 이승으로 다시 돌아가 아내를 혼내주고 오겠습니다.” 이 말을 들은 하데스는 자신을 무시한 사실에 분노했다. 그래서 하데스는 시시포스가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사흘의 시간을 주어 다시 이승으로 보냈다.
이승으로 돌아온 시시포스는 아내와 함께 행복하게 살았다. 다만, 하데스는 자신을 속인 시시포스를 용서하지 않았고, 제우스 또한 순순히 벌을 받지 않고 자신에게 망신을 준 시시포스를 용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시시포스가 수명을 다하고 저승으로 오자 무시무시한 벌을 내렸다. 바로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올리는 벌이다. 그런데 산꼭대기는 바위가 머물 수 없을 정도로 뾰족했다. 결국 어렵게 올린 커다란 바위는 다시 아래로 떨어졌는데, 평생 시시포스는 바위를 올리고 내리는 행위를 반복하며 지내야 했다.
'출퇴근을 반복하는 직장인', '육아하는 부모', '공부하는 학생들'
매일 반복해서 바위를 올리고 내리는 시시포스의 모습은 현재 우리들의 모습과 다를 바 없습니다. 특히 힘들게 바위를 정상에 올려놓는 시시포스의 모습과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바라보는 시시포스의 모습은 어떤 일을 해냈지만 다시 좌절하게 되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좌절로 결론지어지는 무기력한 삶이 시시포스에게 내려진 처벌인 셈이죠. 그렇다면 그의 삶은 무의미하다고 볼 수 있나요?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소설가 알베르 카뮈(Albert Camus)는 돌이 떨어져 내릴 줄 알면서도 다시 돌을 굴려 올리는 시시포스의 모습을 부조리에 맞선 ‘인간 승리’라고 평가합니다. 바위를 올려놓는 결과가 아닌 그러한 투쟁 자체가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포기하지 않는 시시포스의 모습에 초점을 맞춘 것이죠.
형벌을 수행하거나 수행하지 않아도 바위가 아래로 떨어지는 결과는 똑같습니다. 하지만 시시포스는 매 순간 도전하는 모습에서 의미를 찾았습니다. 시시포스는 산 정상에 돌을 올려놓는 과정에서 의미를 찾았으며, 돌이 굴러 떨어질 때 산에서 내려가면서 주변을 다시 돌아보고 휴식의 기쁨을 느꼈습니다.
시시포스는 자신의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자긍심을 느끼고 지난날 신에 대항했던 일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소설가 알베르 카뮈(Albert Camus)는 시시포스의 이야기를 통해 부조리에 직면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선택을 말했습니다. 부조리에서 도피하기 위해 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그냥 현실에 순응하며 지낼 수도 있습니다. 또한 시시포스처럼 삶의 의미를 두고 살아가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요?
나치 수용소에서 죽음의 문턱까지 경험한 빅토르 플랑클(Viktor Frank)은 극한의 상황에서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자기 삶에 의미가 있는가?'라고 합니다. 가스실로 끌려가지 않은 수용소 사람 중 ‘헤어진 가족을 다시 만나야 해!’, ‘나의 연구를 마무리해야 해!’ 등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가 있었던 사람은 죽지 않았습니다. 반면 수용소에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사람은 죽고 말았습니다.
'To be or not to be(사느냐 죽느냐)'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입니다. 하지만 인생은 위 대사처럼 이분법적으로 나뉘지 않습니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고, 행복한 상황 속에서도 회의를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진다’라는 말처럼 현재 내가 살고 있는 환경 속에서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즉, 바꿀 수 없는 부분에 집중하기보다 바꿀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나 주변 상황은 바뀌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마음을 바꾸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마음을 바꾸어 내가 할 수 있는 일,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합니다.
<파우스트>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습니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어쩌면 지금 느끼고 있는 회의감은 치열한 삶 속에서 너무 열심히 노력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긴 연휴 마음에 여유를 갖고 나의 모습을 돌아보며 사색하는 시간을 갖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