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부산과 경기 소방 후배들의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직접 아는 후배들이 아니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브런치 작가인 소방관 아빠 무스의 글을 읽은 후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선배로서 지켜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
왜 이렇게 슬픈 소식이 자주 들리는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개인사와 조직문화 적응의 어려움이 있었을 거라 생각이 든다. 아마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까지 주변 사람들에게 신호를 보냈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그 신호를 감지 못 했을 확률이 높다. 나도 힘들었을 때가 있었다. 다행히 좋은 선배들의 조언이 당시 내게는 큰 힘이 되어, 위기의 순간을 잘 벗어날 수 있었다. 하여튼 안타깝고, 미안하다. 지켜주지 못하고, 신호에 반응하지 못하고, 손잡아주지 못해서 말이다.
주위를 둘러본다. 나는 어떤 선배이고, 후배인지 생각해본다. 우리 모두 다 성인이고, 인격적인 존재다. 각자의 인격이 다르듯 우리는 서로를 잘 모르는 상황에서, 짧은 근무 기간 동안 서로를 잘 알고 있다는 생각으로 20년~30년간 다른 문화를 살아온 이들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맞다. 선배의 입장에서 어렵겠지만 이들 또한 누군가의 자녀이자 누군가의 부모이기에 말이다. 제일 중요한 선후배 간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지금 같은 슬픈 소식은 줄어들 것이다. 지금의 후배는 곧 선배가 될 것이고, 지금의 선배는 어떤 후배의 부모가 될 수 있기에 우리 모두 한 뺨씩 물러서서 서로를 바라보면 어떨까. 이 이 자리를 빌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