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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치 Oct 20. 2022

언론보도에 나올 뻔

오늘은 소방서에서 가장 큰 고가사다리차 점검을 위해서 양평에서 평택에 가는 날이다. 물론 나는 16년 차 소방관이지만 운전 경력이 길지 않기에 바로 위 선배가 가고, 나는 그 선배의 출동 공백을 메울 예정이다. 좋아하는 라디오를 들으며 기분 좋게 출근했는데,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듣고 말았다.

“김종하 반장, 오늘 반장님이 고가사다리차 운전해서 평택에 가야겠다. 출동 인원이 부족해서 어쩔 수가 없네.”

“네? 제가요? 저 고가사다리차 두 번밖에 운전 안 해 봤는데요.”

“아무튼 조심히 갔다 와.”

센터장님의 말씀에 갑자기 두통이 밀려오고,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25t 크기의 차를, 그것도 7억도 넘는 차를, 그것도 이 차를 두 번밖에 운전하지 않은 내가 운전하다니. 살짝 겁이 나고, 조퇴하고 싶어졌다.

‘내가 과연 저 큰 차를 두 시간 동안 고속도로를 달려서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을까?’

운명의 시간은 왜 이리도 빨리 오는지. 나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고가사다리차에 올랐다. 다행히 첫 관문인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무사히 지나니, 자신감이 조금 생겼다. 고속도로의 커브 길에서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여러 터널을 안전하게 지나서 목적지 부근까지 도착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 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두 시간 동안 길을 잘 알려주던 예쁜 목소리의 내비게이션이 이상한 길로 알려준 것이다. 초행길이라 내비게이션만 믿고 그 길로 들어갔는데, 그 길은 좁은 농로로 고가사다리차 바퀴가 간신히 들어갈 정도였다. 게다가 앞으로 조금 더 가보니, 차를 돌릴 공간이 없었다.

‘내가 무슨 생각으로 이 길을 들어온 거지? 분명히 내비게이션이 이 길로 안내했는데?’

나는 함께 온 후배와 약 100m 농로를 살펴본 후 과감히 후진으로 나오기로 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대형 트럭이 딱 한 대 정도 지나갈 폭이었기에, 솔직히 후진은 너무 무서웠다. 약 30분 동안의 후진과의 사투를 벌인 끝에, 우리는 안전하게 차량을 이동시켰다. 사실 바퀴가 농로 끝에 닿을 때마다 천당과 지옥을 100번은 맛본 것 같다.

‘십년감수했네.’

만약 고가사다리차를 후진하다가 농로에 빠졌다면, ‘**소방서의 000 소방관 7억짜리 고가사다리차 부주의로 큰 피해 입혀’라고 신문에 보도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후진으로 좁은 외길을 빠져나온 후 잠시 나갔던 정신이 돌아왔다. 차에서 내려 후진으로 나온 농로를 보니, 아찔했지만 잠시 ‘내 운전 솜씨가 훌륭한데.’라며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나는 고가사다리차를 업체에 잘 전달하고, 다시 소방서로 돌아왔다. 그리고 원래 가려고 했던 선배에게 이 끔찍한 사건을 이야기했더니, 내 얘기를 다 듣고 난 선배가 한마디 한다.

“그러면서 운전 실력이 느는 거야. 고생했다. 다음에도 네가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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