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인생(20220809화)
어제 아침 출근 때부터 비가 제법 내렸다. 이번 주 내내 비가 내린다고 하는데, 낮에 비가 제법 내리긴 했지만 나름 조용했다. 저녁 먹은 후 빗줄기가 제법 두꺼워지면서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다. 밤 9시쯤 운동을 마치고,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 본부 상황실에서 구조출동 방송이 나왔다.
"00리 산사태로 인한 사람 고립 출동"
이 출동을 시작으로 폭우로 인한 구조출동이 빗발쳤다. 우리는 먼저 산사태 현장으로 출동했다. 장시간 내린 폭우는 양평 시내를 이미 집어삼켰다. 곳곳에 도로는 침수되었고, 6번 국도에는 산사태로 차량 운행이 어려웠다. 우리가 산사태 현장으로 출동 중 반대쪽 지역에 화재 출동이 걸렸다. 나는 두 손으로 핸들을 꽉 잡고, 거북이 목을 한 채 폭우로 인해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도로를 운전했다. 곳곳에 침수된 도로를 달릴 때마다 '혹시 차가 퍼질까 봐' 엄청나게 걱정되기도 했다. 보통 80킬로 이상으로 달리지만 속도를 낼 수도 없고, 내면 안 되는 상황이기에 40킬로로 조심히 서행했다. 다행히 아무 사고 없이 화재 현장에 도착했고, 화재는 거의 마무리된 상태였다.
다시 산사태 현장으로 출동이다. 본부 상황실에서 무전이 끊임없이 들려온다.
"00리 구조출동~ 00면 산사태 출동~ 00리 사람 고립 출동 등"
6번 국도를 달리는 중 도로에 토사가 쓸려 내려와 큰일 날 뻔했다. 경기도 지역의 폭우로 인한 신고 폭주로 본부 상황실의 거의 마비가 되었는지, 서 통신 요원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나는 출동 중 소방서로 복귀하여, 오랜만에 수보대 앞에 앉아 무전기를 잡았다. 아마 무전기를 잡은 시간은 자정쯤 된 것 같은데, 몇 시간 동안 무전기를 잡고 교신했는지 모르겠지만 목소리가 이미 가 버렸다. 현장 대원들과 무전을 교신하면서 몇 가지 사건 중에 십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현장에 버스를 투입해서, 그들을 안전한 곳에 데려다주고, 두 명이 매몰됐다는 신고로 현장과 무전 교신하면서 그들을 잘 구조했고, 마지막으로 계곡물이 불면서 고립된 구조자들을 우리 팀과 구조대가 현장에서 로프를 이용해서 구조한 사건은 기억에 남는다.
현장 대원들과 무전을 교신하고, 출동대를 재파악하고, 출동 못 나간 곳의 신고자와 통화까지, 오랜만에 상황실 업무를 하니 2년 전 본부 상황실에서 근무했던 기억이 많이 났다. 이런 경험을 상황실에서 겪어서 그나마 수월하게 대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침 6시부터 비가 소강상태로 출동 벨 소리가 조금씩 줄었다. 나의 눈은 계속 감기고, 시계를 보니 어느덧 아침 7시다. 우리 팀은 아직 현장에서 돌아오지 않았고, 나는 도시락을 챙긴 채 오매불망 팀원들을 기다렸다. 9시가 넘어서 팀장님을 포함해서 팀원들이 돌아왔다. 비를 쫄딱 맞고, 고립된 사람들을 구조하느냐고 흙탕물로 범벅이 됐다. 나만 멀쩡한 것 같아, 미안했다.
아침 9시에 비상 소집은 해지됐고, 나는 팀장님을 모시고 하남으로 출발했다. 참고로 팀장님은 내년 6월이 정년퇴직이시다. 팀장님은 아침을 먹으면서 "어쩐지 밤을 새울 줄 알았어." 역시 경험에 나오는 촉은 그 누구도 따라갈 수가 없나 보다. 팀장님은 비를 쫄딱 맞고, 구조 작업을 하셔서 피곤한지, 조수석에 앉아서 조용히 주무신다. 덩달아 나도 졸음이 막 쏟아지지만, 허벅지를 막 꼬집으면서 간신히 집에 도착했다. 지하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집으로 올라가는데 타 팀의 쉬는 직원에게 카톡이 왔다.
"무전을 잘 받았다는 얘기가 여기까지 들립니다"
이 칭찬의 카톡이 오롯이 밤을 새운 나의 피로를 박카스를 마신 것처럼 풀어줬지만, 집에 도착하자마자 침대에서 눈을 잠시 감았는데 오후 5시다. 다시 저녁 먹고, 애들과 수다 떨고, 라디오 듣고, 수영 갔다가 이제는 밤 11시다. 이제 자야지.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전과 다르게 내가 무엇인가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자존감이 막 높아진다. 자뻑은 나의 힘이다. 그러나 상황실 근무는 빡세다는 걸 다시 느꼈다. 본부 상황실 직원들, 화이팅!
'열심히 밤샌 당신, 푹 잠자라. 그것이 당신에게 주는 신의 선물이다.' -김종하-
p.s
어제 현장 출동대가 떠내려가던 개를 구조해서 케이지에 있는 사진, 불안해 보였지만 살아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