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치치 May 07. 2023

사랑했지만

오늘의 인생(20230505금요일)

2023년 5월 5일 어린이날은 안타깝게도(?) 24시간 근무다. 4명의 아이와 함께 독박으로 보내야 하는 혜경스에게 미안하지만 어쩌겠나. 양평을 지켜야 하니. 이 교대 근무자의 숙명이라고 해야할까.^^ 아침에 여행가는 차들이 많을 것 같아서 아침 6시 50분에 출발했다.


비가 내린다. 아침 출근길에 비가 내리는 날씨가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좋아지기 시작했다. 텀블러에 뜨거운 라테가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편의점에 들러서 뜨거운 아메리카노와 김밥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종일 비가 내린다.  좋다. 저 멀리 용문산에 구름이 걸쳐있다. 용문산의 기운 덕분에 조용한 근무 시간을 보내고, 퇴근이다. 퇴근하는 아침까지도 비가 내린다. 좋다. 비가 내릴 때는 김광석 노래다. 여러 곡을 지나 ‘사랑했지만’이 흘러나온다.


22년 전 군대에서 김광석의 ‘사랑했지만’을 처음 들었다. 당시 나는 이등병이었고, 갑자기 중대에서 방송병으로 뽑혔다. ‘내가 왜 방송병으로 뽑혔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경력도 경험도 없던 내가 왜 방송병이 되었을까. 이등병 때 방송병이 된 나는 빡센 점호를 피해서, 이른 시간에 대대 방송실에 올라갔다. 이등병으로 도저히 상상도 못 할 자판기 음료수를 막 뽑아먹고, 전화도 마음대로 걸었다. 나를 잘 봤는지, 대대 주임원사님이 나를 당번병으로 데리고 가려고 했으나, 중대장의 반대로 못 갔었다.


생각지도 못 한 방송병 생활은 고달프고, 갈굼의 퍼레이드였던 이등병 시기를 버티게 한 큰 힘이 되었다. 고참들은 김광석의 노래를 신청곡으로 많이 요청했고, 나는 방송병의 특권으로 고참들의 신청곡을 자주 틀어주곤 했다. 그때 김광석으로 처음 접했고, 처음 알았다. 김광석과의 만남은 제대 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김광석은 내게 큰 위로의 힘을 주었다. 한 참 힘들 때는 3개월 내내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면 우울함을 달래기도 했다.


퇴근하는 길에 김광석의 ‘사랑했지만’을 들으니, 잠시 옛 생각에 잠긴다. 돌이켜보면 늘 힘든 순간에는 어떻게 어떻게 숨을 쉴 수 있는 환경들이 생겼다. 22년 전에는 방송병을 하면서, 지금은 여러 좋은 사람들을 통해서 나를 알아가고, 찾아가고, 숨 쉬고 있다.


‘22년 전 나는 무엇을 사랑했을까? 지금은 무엇을 사랑하고 있을까?’


사랑했지만 by 김광석


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어

자욱하게 내려앉은 먼지 사이로

귓가에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그대 음성 빗속으로 사라져 버려

때론 눈물도 흐르겠지

그리움으로

때론 가슴도 저리겠지

외로움으로

사랑했지만

아 그대를 사랑했지만

그저 이렇게 멀리서 바라볼 뿐

다가 설 수 없어

지친 그대 곁에 머물고 싶지만

떠날 수 밖에

그대를 사랑했지만

그대를 사랑했지만

매거진의 이전글 중학생 참여 수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