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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Feb 23. 2018

과일 부자

발리의 과일

우기에 발리를 여행하다 보면 하루 1번 꼴로 소나기를 만난다. 정말 힘 있는 물줄기들. 쏴아 비가 지나가고 나면 맑은 하늘과 강한 햇살이 나타날 차례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어딜 가나 초록 초록하다. 우산으로 써도 될 것 같은 넓은 잎사귀들을 보니 학창 시절 배웠던 더운 나라의 활엽수와 추운 나라의 침엽수가 생각났다. 햇볕 가득 쬐고 빗물 쭉쭉 마시며 무럭무럭 자라는 동남아의 활엽수들의 하루를 보고 있노라면 풍족이란 이런 거라는 생각이 든다.

발리 우붓 길가의 흔한 나무들

여유로운 인상(?)의 활엽수들 말고도 동남아의 풍부한 비와 햇살이 낳은 보물들이 있으니 바로 알록달록한 과일들이다. 한국에서보다 싸고 다양하고 맛있는 동남아의 과일. 발리에서 한 달이나 머물기로 했으니 과일도 양껏 먹어보기로 했다. 우리는 아침마다 열리는 동네 시장에 가서 과일을 샀다. 

오색빛깔 과일들

과일은 보통 1kg에 15000루피아~20000루피아(한화 1200원~1700원) 정도의 가격이다. 과일의 왕이라 불리는 두리안만 특별히 개당 30000루피아(2500원 정도). 하지만 특별히 맛있고 크기 때문에 절대 비싸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3~4군데의 과일상 중 유난히 영어를 잘하고 이것저것 맛보게 해주며 적극적으로 호객했던 한 상인과 친해져서 단골이 되었다. 그동안 먹어본 과일들을 소개한다.


망고스틴

가장 먼저 사 먹은 과일은 망고스틴이었다. 최근에는 한국에도 수입되기 시작한 망고스틴.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과일이어서 그런지 과일가게 주인이 가장 먼저 권했다. 그 자리에서 까 주었는데 먹어본 순간 바로 "1kg please"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망고스틴이 뽀얀 속살을 내보이며 어서 와, 동남아 과일이란 이런 거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망고스틴은 새콤달콤이라는 맛이 결코 '새콤'과 '달콤'이라는 두 가지 맛을 단순하게 섞어놓은 게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새콤'과 '달콤'이라는 실을 지그재그로 짜 놓은 듯한 맛이랄까? 게다가 풍부한 즙은 햇살과 비를 통해 영양분을 잔뜩 머금고 있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선홍빛 속껍질과 새하얀 속살의 조화가 너무 예뻐서 곱게 단장한 부잣집 딸내미 같다.   


스네이크 후르츠

둘째 날 새로운 거 먹고 싶다고 했더니 권해준 스네이크 후르츠. 껍질의 무늬가 뱀의 표피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껍질은 꺼칠꺼칠한 작은 가시들이 있어 깔 때 조심해야 한다. 껍질을 벗겨 한입 베어 물면, 왜 껍질에 가시가 있는지 이해가 간다. 저속하게 비교하자면 마이 구미 포도맛 같다. 마이 구미 포도맛 봉지를 뜯었을 때 나는 그 인공적인 포도향에서 '인공'을 뺀 맛과 향이 입안에 가득 찬다. 과육은 딱딱한 편인데 씹어 먹을수록 향이 나고 달아 앉은자리에서 열개는 기본이다. 


두리안

망고스틴과 스네이크 후르츠에 삼일 동안 빠져 지내다가 불현듯 두리안이 떠올랐다. 동남아에 와서 과일의 왕이라는 두리안을 안 먹고 있었다니. 당장 다음날 두리안을 사 왔다. 두리안은 가시가 너무 크고 뾰족하다. 정말 너무 아프다. 스네이크 후르츠에 이어 껍질이 이렇게 성난(?) 것들은 달콤함을 지켜내기 위한 것임을 깨달았기에 가지에 찔려도 설레기만 했다. 


두리안의 맛은 정말 단순하지 않다. 서너 가지 정도의 맛이 나는데 단맛 말고 다른 것들은 표현할 말이 없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맛의 과일이 없어서 한국어 표현이 없는 것 같다. 물론 두리안은 악취로 유명한데, 발 냄새라고들 하지만 난 쓰레기 냄새에 가깝다고 느꼈다. 하지만 2초만 참고 일단 한입 베어 물면, 그다음부터는 악취는 안 느껴지고 황홀한 맛에만 빠져들 수 있다.


드래곤 후르츠

드래곤 후르츠는 제주도에서도 재배하기 시작해서 조금 익숙한 과일이다. 그래도 동남아에 온다면 꼭 먹어보길 권한다. 약간의 밍밍함 속에서 뚫고 나오는 달콤함이 한국에서 먹는 것보다 훨씬 강하다. 다른 과일에 비해 단맛이 독보적이진 않아 한입 먹으면 조금 아쉬울 수 있으나 두입 세입 먹으면 드래곤 후르츠만의 달콤함에 매료될 것이다.


내 주먹만 한 크기의 노란 과일이 있어 뭐냐고 물으니 배라고 하길래 조금 다른 배인가 싶어서 사봤다. 그런데 한국의 배와 똑같은 배였다. 크기만 작을 뿐. 배처럼 생긴 건 크든 작든 속은 똑같이 배였다.


리치

빕스에서도 먹을 수 있는 리치는 여기서도 저렴하고 흔한 과일인가 보다. 서비스로 껴주거나 1kg 가격도 10000루피아(1000원이 안 됨). 한국에서 먹어봤던 리치는 까기만 힘들도 맛은 완전히 밍밍했기에 안 사 먹으려고 했는데 한 움큼 주길래 먹어보았다. 한국의 리치는 배 타고 오는 사이 단맛이 바닷물에 다 씻겨나간 건가 싶을 정도로 이 곳의 리치는 달았다. 하지만 역시나 까기 힘든 것에 비해 내용물은 너무 적어 사 먹게 되지는 않더라.


슈가애플

아침 시장에 출석하기 시작한 지 일주일이 지날 즈음, 이제 웬만한 건 다 먹어봤다는 생각을 하며 새로운 거 뭐 없나 찾던 내 눈에 띈 슈가애플. 이거 얼마냐고 했더니 개당 가격을 말한다. 1kg로 한 파냐고 물으니 다 익지 않아서 안 된단다. 그래서 익은 것만 두 개 5000루피아(약 500원)에 샀다. 뭐길래 이렇게 까다롭나 생각하며 무심하게 껍질을 벗겨 한 입 먹었는데, 이걸 먹는 순간 눈이 번쩍 떠지며 '이건 익은 게 있으면 무조건 사야 된다!!' 생각했다. 과일가게 주인이 "씨가 많은데 괜찮겠냐"더니 씨가 보통 많은 게 아니다. 하지만 연유를 씹어먹는 것 같은 달콤함 때문에 씨 발라내는 수고로움 따위 하나도 귀찮지 않다. 그 뒤로 우리는 익은 슈가애플을 발견하면 무조건 산다. 

껍질 벗긴 슈가애플

사진은 미처 못 찍었지만 화이트 망고도 맛있다. 한국에선 옐로 망고가 흔한데, 화이트 망고도 달지만 맛이 조금 다르다. 그리고 과육이 굉장히 쫀쫀하다. 쫀쫀한 질감이 색다른 매력이랄까. 또 한국의 수박보다는 조금 작은 사람 얼굴만 한 크기의 수박이 한 통에 10000루피아(1000원이 안 됨)다. 


과일은 맛도 있고 색도 예쁘지만, 자연이 키워낸 열매라는 점이 나를 더욱 행복하게 한다. 지구가 회전하며 햇빛을 받고 수증기가 구름이 되어 다시 비로 내리는 자연의 흐름에 속해진 기분이 든다. 그리고 어디에 있든 감사하며 살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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