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지 않은 이해에 대하여

by 김나현

감정은 이성보다 늘 먼저 다가왔다. 서운함이 왜 생겼는지도 모른 채, 마음 한켠에 이미 그 감정이 자리를 틀고 앉는다. 말로 설명할 틈도 없이 마음은 저만치 앞서가고,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꾹 눌러 삼키다 보면 서운함을 끌어안은채 어느새 시간이 흘러버린다. 그러다 감정이 습관이 되어 속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리기도 하고, 괜히 쌓아둔 마음을 삐딱하게 표현하여 결국 관계를 자신도 모르게 늪에 밀어넣기도 한다.


사랑은 그리고 관계는, 이토록 복잡하고도 난해하여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문드러지게 만든다. 주는 감정보다 받지 못한 마음에서 더 깊은 흔적을 남기고 기대했던 사랑이 기대만큼 다가오지 않을 때, 그 간극은 단순한 차이가 아니라 깊은 결핍이 되어 돌아온다. 그리워서 애타게 불렀던 이름이, 정작 눈앞에 있을 때 가장 낯설게 느껴지는 건, 오랜 기다림이 그 사람의 실체를 왜곡해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건, 받지 못한 사랑을 스스로 해석하고 감당하는 법을 배우는 일인듯 싶다. 애초에 사랑은 누군가의 방식이 아니라 받는 사람의 언어로 번역되어야 하는데, 그 번역이 끝내 실패한 채로 남은 것이다. 사랑이 없었다는 게 아니라, 그 사랑이 자신이 갈망한 방식으로 오지 않았음을 더는 원망하지 않는 것. 그것이 성숙인 것일까.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이토록 다른 우리에게 완벽한 이해와 무오해의 관계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완벽에 가까운 일이 우리에게 기적처럼 일어나기엔 이미 모든 것이 늦었다. 우리는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존재이고,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자주 오해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서로를 꿰뚫어보길 기대하기보다는, 다름을 인정하고 조율해가는 과정을 사랑하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


사랑은 너무 작고 영롱해서, 언어로는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 현실은 그 영롱함을 질투하듯 흔들어대고,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해석이 되며, 이해보다는 번역에 가깝도록 어렵다. 서운할 수 있고, 마음이 다를 수도 있다. 그 감정을 억누르지 말고, 그것이 애정에서 비롯된 것임을 잊지 말자. 관계는 틀어지지 않도록 애쓰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틀어질 수 있는 관계를 어떻게든 회복해보려는 태도에서 단단해진다. 버티는 게 능력이 아니라 넘어졌다가도 다시 걷는 게 삶인 것처럼.





keyword
이전 11화너에게 가는 동안,나에게서 멀어지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