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의 나에게

by 김나현

사람은 모든 걸 잃고 나서야, 일상이 얼마나 고요한 축복이었는지를 알게 된다. 그리고 그 기적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조용하고도 깊은 은혜였는지를, 나는 이제야 비로소 이해한다. 잃기 전에는 몰랐던 것들이 있다. 너무도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사실은 기적에 가까웠다는 것. 그건 대부분 너무 늦게야 알게 되는 삶의 진실이다.


나는 늘 ‘조금 더 나은 내일’이 짠 하고 나타나기를 바랐다. 평일은 견뎌야 할 무엇이었고, 주말은 숨을 틔우는 도피처였으며, 오늘은 그저 통과점이었다. 그렇게 시간을 밀어내듯 살다 보니, 하루하루가 쌓여 어느새 낙서장 같은 삶이 되어 있었다. ‘아무 일도 없는 하루’가 지루하고 무의미하다고 여겼던 그 시절, 나는 가장 소중한 것을 잃고 있었다. 바로 ‘평범함’이라는 이름의 안온함이었다. 그것은 한때의 나에게 가장 하찮고도 가장 위태로운 것이었다.


스물다섯, 불치병. 내 삶은 그 짧은 단어 하나에 휘청거렸다. 익숙하던 일상이 무너졌고, 건강하던 몸은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양발은 저렸고, 체력은 급속히 빠져나갔으며, 밤은 끝날 줄 몰랐다. 그 시절 가장 간절했던 건 멋진 미래가 아니었다. 그저 ‘별일 없는 하루’가, 너무도 간절하고 원망스럽게 그리웠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그 말이 오히려 내 삶을 더 옥죄고 있었음을 그땐 몰랐다. 행복에 집착할수록 욕심의 그림자는 뾰족해졌고, 기대한 만큼 무너짐은 깊어졌다.


좌절했고, 불행했고, 다시 일어섰다. 아프지 않기 위해 아프지 않은 척해보았고, 행복해지기 위해 웃는 척도 해보았다.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그것이 최선이라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알게 됐다. 나는 아프지 않기 위해 참은 것이 아니라, 실망하지 않기 위해 내 감정을 숨긴 것이었고, 어른스러워지기 위해 웃은 것이 아니라, 버려지지 않기 위해 다정했던 것이며, 이겨내기 위해 강한 척한 것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무뎌진 척했던 것이었다. 그 오해들을 하나씩 걷어내는 일은, 갓 아문 상처의 붕대를 스스로 푸는 일처럼 조심스럽고 때로는 아팠다.


들여다보면, 같은 하루를 두고도 어떤 사람은 괴롭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감사하다고 말한다. 나는 그 단순한 진실을 받아들이기까지 많은 계절을 흘려보내야 했다. 기적은 드문 일이 아니라, 흔하지만 인식되지 않는 감각이라는 것도 뒤늦게야 알았다. 불행하다고 믿으면 모든 순간이 아프고, 감사하다고 여기면 어떤 순간도 다정해진다. 삶은 하나의 얼굴만 갖고 있지 않다. 하루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삶은 전혀 다른 색을 띠게 된다.


나는 아직도 완성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조금은 괜찮다고 느끼는 건, 더 이상 아프지 않기를 바라기보다, 그 아픔 속에서도 나를 지켜내는 연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탈한 하루가 얼마나 다정한지, 고요한 일상이 얼마나 드문 기적인지 이제는 안다. 괴롭다고 믿으면 모든 것이 괴로웠고, 살아 있음에 감사하려고 노력하면 세상은 과분하게 느껴졌다. 예전엔 별것 아니라고 여겼던 그 평범한 날들이, 지금의 나에겐 가장 애틋하고 간절한 순간이다.


행복해지기 위해 삶을 바꿔야 하는 것이 아니다. 먼저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어야 한다. 완벽한 날은 오지 않는다. 하지만 덜 아프고, 덜 외로운 하루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행복이란, 참 별것 아니더라. 불행하지 않은 것. 살아 있다는 이 단순한 진실. 그것만으로도, 우리가 끝내 놓치지 말아야 할 가장 조용하고 확실한 기적으로 충분하다는 걸 이제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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