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면, 무의식적으로 손이 휴대폰부터 향한다. 한쪽만 어렴풋이 뜬 실눈으로 SNS를 켜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피드를 넘긴다. 일본의 작은 소마을, 노랗게 바랜 노을 아래 기찻길을 따라 걷는 장면이 스쳐 지나간다. 정차하지 않는 기차가 지나간 뒤처럼 고요한 공기 속에서 햇살이 천천히 흘러내린다.
피드를 다시 넘긴다. 계곡의 투명한 물가에 발을 담근 채, 옆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두고 책장을 넘기는 모습. 물결에 흔들리는 발끝과 잔잔한 빛. 풍경은 말없이 시원하다. 또 한 번 넘기면, ‘제주의 평일 오후’라는 글 아래 바람과 여름을 담은 골목이 감각적인 문장과 함께 놓여 있다.
이 장면들은 잠시나마 내가 어딘가를 다녀온 것 같은 기분을 남긴다. 가볍게 웃기도 하고, 좋아요를 누르기도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달라졌다. 화면을 넘길수록 마음이 답답해지고, 묘하게 우울해졌다.
“나는 왜 저렇게 살지 못할까.”
몇 초짜리 이미지일 뿐인데도, 나는 어느새 작아지고 있었다. 타인의 일상이 단정할수록 내 하루는 더 엉켜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그들이 이룬 무엇인가가 선명할수록 나의 하루는 흐릿해 보였다. 시선은 자꾸 바깥으로 향했고, 정작 나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점점 잊어가고 있었다.
하루는 생각보다 쉽게 흐트러진다. 나만의 속도로 천천히 걷고 있던 길이 어느 순간 남들과의 속도 경쟁이 되고, 그 틈에서 ‘내가 원하던 삶’은 조용히 밀려난다. 좋아서 하던 일들도 어느새 ‘남들처럼 살아야 한다’는 기준 아래에서 힘을 잃는다.
그래서 요즘, 나는 나만의 기준을 다시 세우고 있다. 잘 살아 보이기보다, 나답게 살기 위해서. 누구의 것도 아닌, 오직 내 감각과 리듬에 집중해 하루를 설계한다. 부러움이 올라올 때면 무심코 넘기지 않고, 그 장면 앞에서 잠시 멈춘다. 무엇이 내 마음을 흔들었는지, 어떤 결핍이 건드려졌는지를 조용히 적어본다. 그 감정의 실마리를 따라가다 보면,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에 조금 더 가까워진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자주 들여다보면 감이 생긴다. 어떤 일에서 편안해지는지, 어떤 순간에 마음이 답답해지는지. 그런 사소한 감정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다 보면, ‘나’라는 사람의 테두리가 조금씩 또렷해진다.
타인의 생활에서 시선을 거두면, 비로소 내 삶이 보인다. 누가 보기 좋은 하루가 아니라, 내가 살아내고 싶은 하루. 남의 인생이 아니라, 내 인생을 살기 위한 시간들. 그렇게 나는 매일, 조금씩 나만의 루틴을 써 내려간다. 가끔은 조용히 되뇌이고, 혼잣말처럼 말해보기도 한다.
“나는 이렇게 살고 싶어.”
이 문장을 자주 떠올리는 요즘, 하루가 조금 더 선명해졌다. 남들이 보지 않아도 소중한 시간들을 쌓고, 내 리듬대로 살아내는 삶이 조용히 빛나도록.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지며 하루를 정리한다.
어떤 리듬이 나를 가장 편안하게 만드는지, 누구와 있을 때 가장 나다워지는지, 타인의 평가 없이도 만족할 수 있었던 순간은 언제였는지. 누가 보지 않아도 소중히 여겼던 시간은 무엇이었는지, 어떤 일 앞에서 마음이 오래 머무는지, 반복해서 피하고 싶어지는 상황은 무엇인지. 그 질문들은 정답을 주기보다,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조용히 알려준다.
기준이 없으면 세상의 기준에 쉽게 휘둘린다. 그러나 나만의 기준이 생기면, 세상은 조금 조용해진다. 비교의 소음이 들려와도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다시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만든 하루, 내가 고른 리듬을 살아내는 일. 그 일을 계속 해보려 한다. 그저, 나에게 진심인 방식으로.
나만의 기준을 찾는 질문 10가지
내가 편안하게 느끼는 하루의 리듬은 어떤가?
나는 누구와 있을 때 가장 나다워지는가?
진심으로 중요하다고 느끼는 일은 무엇인가?
타인의 평가 없이도 만족할 수 있었던 순간은 언제였나?
누가 보지 않아도 소중히 여겼던 시간은 언제인가?
나는 어떤 일을 할 때 몰입하는가?
자주 떠올리는 ‘이상적인 삶’은 어떤 모습인가?
반복해서 피하거나 불편함을 느끼는 상황은 무엇인가?
시간과 마음을 쏟고 싶은 대상은 무엇인가?
내가 나를 가장 잘 지켜줬던 순간은 언제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