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 하나의 우주

by 김나현

“왜 이렇게 예민해?”


그 말을 들으면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이 먼저 온다. 화가 나서가 아니라, 몸이 살짝 움츠러드는 쪽에 가깝다. 마치 내가 있던 자리가 조금 어긋난 듯한 느낌. 말이 무엇을 정확히 뜻하는지 묻기도 전에, 나는 이미 어떤 사람으로 분류된다. 예민한 사람. 다루기 어려운 사람. 조금 피곤한 사람.


말한 쪽은 가볍게 던졌을 수도 있다. 별다른 의도 없이, 그저 상황을 정리하려 한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단어는 오래 남는다. 말이 지나간 자리에 작은 가시처럼 박혀 한동안 마음을 건드린다. 그날의 대화보다, 그때 느낀 감정이 더 선명하게 기억된다.


사람을 한 단어로 묶는 일이 이렇게 쉽다는 사실이 가끔 놀랍다. 우리는 매일 다른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같은 말에도 전혀 다른 반응을 한다. 어떤 날은 사소한 일에 웃고, 어떤 날은 이유 없이 가라앉는다. 나 자신도 나를 다 이해하지 못하는 날이 많은데, 누군가가 몇 초 만에 나를 규정할 때면 늘 말이 막힌다.


생각해보면 나도 자유롭지 않다. 속으로 누군가를 판단하고, 한 장면만으로 전체를 짐작한 적이 많다. 다만 그 생각이 입 밖으로 나오기 직전에, 잠깐 멈추는 순간이 생겼다. 지금 보고 있는 건 아주 일부일지 모른다는 감각. 이건 내가 아는 전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느낌.


‘예민함’이라는 말도 그렇다. 그 안에는 피로와 기억, 쌓인 감정, 설명되지 않은 하루들까지 섞여 있다. 그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 부르는 게 과연 정확할까. 때로는 예민해서가 아니라, 이미 많이 참아왔기 때문에 반응이 늦게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나는 여전히 사람들의 말에 흔들린다. 어떤 말은 금세 잊히고, 어떤 말은 오래 남는다. 분명한 건, 내가 나를 어떻게 부르는지, 어떤 말로 규정하는지가 조금씩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든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요즘은 말을 곱씹는다. 누군가에게 건네기 전에도, 마음속으로라도 이름을 붙이기 전에도. 그 말이 어떤 표정으로 남을지, 어디쯤 머물지를. 꼭 조심하겠다는 결심이라기보다, 그냥 그렇게 생각이 흐른다.


아마도 말은 바람처럼 지나가지만, 어떤 바람은 오래 머문다. 마음속 어딘가에 남아, 다음 생각의 방향을 조금 바꿔놓는다. 그걸 완전히 막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만들어내는 바람만큼은 조금 덜 거칠었으면 좋겠다. 오늘은 그냥,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조금은 다르게 생각해본다. 사람은 절대 한 장면, 한 말, 한 표정으로 정의되지 않는 존재라는 걸. 내가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고, 그 사람 안에도 나와 다른 풍경이 숨어 있다는 걸. 그래서 나는 마음을 조금 더 느슨하게 두기로 한다. 흘러가는 일은 흘러가게 두고, 지나가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도록.


오늘도 나는 그 속에서 조금 더 담담해지고, 조금 더 나에게 솔직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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