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부서지는 용기

by 김나현

요즘은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는다. 특별히 더 나은 선택이라는 확신이 있는 건 아니지만, 지금의 상태에서는 이쪽이 조금 더 편하다. 느긋한 주말 아침에 눈을 뜨면 싱잉랩을 틀고, 방 안을 가볍게 진동하는 낮은 울림을 들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뜨거운 차를 끓이고 그 맛을 천천히 되새기고, 책을 몇 페이지 넘기다 문득 멈춰 생각을 적는다. 일기장에는 특별한 의미가 없는 문장들이 흘러들어 쌓인다. 알지 못하는 노래의 리듬에 마음이 맞춰지기도 한다. 그런 작은 행동들만으로도 하루는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마음은 잔잔한 호수처럼 가라앉는다. 괜히 흔들 필요도, 굳이 거울로 비춰볼 필요도 없는 시간들이다.


한때는 사람과 부딪히는 일이 살아 있다는 증거라고 여겼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기분이 오르내리는 일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잘 모르겠다. 사람과 마주치면 기운이 빠지는 날이 더 많고, 그런 자신을 바라보면 어느 순간 스스로가 번거로운 존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과 혼자 있어야 비로소 숨이 놓이는 감각은, 어느 쪽이 먼저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다만 둘 다 내 삶에 필요한 축임은 분명하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생각은 단순해지고 걱정은 줄어든다. 대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조금 작아진다. 손바닥에 들어오는 축소판처럼 다루기 쉬운 크기로 접혀버린 세계다. 편안하다고는 말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안정적인 상태라고 부르기도 어렵다. 바람이 덜 들어와 조용하지만, 그만큼의 생기도 함께 줄어든다.


운동을 할 때면 또 다른 종류의 평온이 생긴다. 러닝을 하던 시절에는 발끝이 땅을 칠 때마다 마음속 어딘가가 정리되는 기분을 느꼈다. 지금은 실내 사이클의 일정한 페달 소리 속에서 그 감각을 약하게 되살리고 있다. 명확한 정리라고 부르기엔 부족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묘한 안도가 생긴다.

‘단단한 사람’이라는 표현을 종종 듣는다. 예전에는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지키는 사람을 뜻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은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단단함이라는 건 부서질 때 부서졌다는 사실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쪽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이번엔 여기 금이 갔구나’ 하고 담담히 받아들이는 태도, 그저 삶의 일부쯤으로 두는 방식이다. 멋있지도, 비극적이지도 않은 시선. 필요 이상으로 극적이지도 않은 접근같은 것.


사람마다 마음의 밀도는 다르다. 어떤 마음은 단단하고, 어떤 마음은 얇게 만들어져 있다. 얇은 마음은 자주 접히지만 대신 바람이 잘 통하고, 때때로 그 바람이 오히려 숨통을 틔워주기도 한다. 그런 차이를 불행이라고 불러야 할 이유는 없다. 다루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요즘은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크게 이룬 것이 없고, 시간의 결이 약간 흐트러진 느낌도 든다. 그러나 그것을 굳이 문제로 만들고 싶지는 않다. 문제라는 건 대개 서두르거나 비교할 때 생기는 것이고, 지금의 삶은 어느 쪽에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가고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할지 모른다. 풀 한 포기가 바람에 눕다가 다시 일어나는 것처럼,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그렇게 되어 있는 것처럼.


단단해지는 일은 의지나 결심 같은 단어보다 훨씬 느슨한 결의 감정이진 않을가. 조금 흐릿하고, 조금 작은 숨결 같은 것. 무너졌다는 사실도, 다시 일어났다는 사실도 크게 중요하지 않은 하루처럼. 그저 지나가는 날들 속에서 조용히 형태를 유지하는 일. 단단함이라는 단어가 굳이 필요하지 않은 날들. 흩어지지 않고 고요히 흐르는 날들. 지금의 삶은 그런 쪽에 가깝다. 그리고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때때로 조용한 하루를 무심히 지나가는 것, 그것만으로도 삶에는 충분한 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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