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공직에 처음 발을 들여 놓은 때가 25세의 아주 젊은 시절이었다. 그런데 어느 듯 32년이란 긴 세월이 흘러 정년퇴임을 한 60대가 되고 말았다. 처음 공직은 철도청에서 시작하였고, 얼마 안 되어 그만두고 다음에는 교도관이 되었다. 법무연수원에서 교육을 마친 후 첫 근무지로 첩첩 산중에 소재하던 청송교도소였다. 30대 초반의 한창 나이에 인적 드문 오지 중의 오지인 청송 발령은 절대 가기 싫었지만 극도의 생계 곤란으로 더 이상 버티기가 어려운 형편이었다. 그 곳은 지인도 없었고, 한 번도 가본 적도 없었던 오지 중의 오지로 나로서는 아무리 생계의 위기가 긴급한 형편이었지만 절대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극단의 선택까지 결심을 해야 했던 그 절박감 속에서 헤매고 있을 때 나의 연수원 동기 한명을 그 곳에서 만났다. 시험동기이자 교육 동기였지만 발령이 나 보다 약간 빨라서인지 그는 나에게 당당한 선배 행세를 했다. 그래도 허허 벌판 시베리아 같은 동지섣달 12월의 얼음판에 홀로 내동댕이쳐진 나를 따스하게 맞이하여 주었고, 군 훈련소 동기처럼 왠지 나 같은 처지의 또 다른 놈이 있어 안심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며 내가 적응할 수 있도록 나를 보살펴 주었다. 그런 덕택으로 나는 조금씩 적응해 갔고 새 삶을 시작하는 희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퇴근하면 동기끼리 모여 소주도 마시고 어울려 떠들기도 하고 했던 그 시절에 고생은 엄청 했었지만 그래도 너무 좋았었다. 그런 좋았던 시절을 그 후 삶의 바쁨에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하다가 정년퇴임을 하고 보니 이제야 그 때가 절실하게 실감된다. 그 동안 세월은 멈추지도 않고 잔인하게 60대가 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그 많은 세월이 흐르는 시간 동안 그들과 나는 한 번도 만남은 물론 소식하나 없이 그냥 그렇게 지금까지 살아왔었다. 헤어질 당시 그는 그곳에서 교도관으로 계속 근무하는 걸 보며 나는 교도관을 그만 두고 지방 공무원으로 직업을 옮겼다. 그 후론 그와 나는 완전 소식을 끊은 채 수 십년을 흘러 보내 버린 것이다. 그 동안 서로가 너무나 바쁜 것이었는지 아니면 그리 별로 관심이 없었는지 그렇게 그와 나는 서로가 소원한 상태로 많은 세월이 흘러 보내버린 것이다. 게다가 그와 나는 처음과는 달리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별로 그렇게 친하지 않은 동료였기 때문에 무관심으로 그렇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정년퇴임 후 약간의 여유가 생긴 나는 우연히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어느 인터넷 매체에서 삶의 향기에 실린 그의 글을 보게 되었다. 사진과 함께 실린 지금의 그의 모습은 약간은 늙어 있었지만 그 당시의 얼굴 모습이 약간 남아 있었고, 그 당시에도 시골의 농부를 좋아했고 그런 농촌생활을 선호하던 생각이 떠올랐다. 이제 정년퇴임의 길로 들어 선 나는 현직 당시의 바빴던 상황과는 달리 이제 쉼의 여유가 생겼고 그러다가 그 동안 잊고 살았던 사람들 그리고 추억들을 되새겨 보는 시간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 당시 그리 별로 친하지 않았던 옛 동료가 왠지 그리워지고 그때가 새삼 그리워지는 것을 느껴진다. 왠지 그 동안 전혀 생각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었던 그가 보고 싶어지고 한번 만나고 싶어진다. 추억 때문일까? 아니면 이제야 생각나는 그때의 소중했던 시간 때문일까? 석봉아! 글을 보니 지금 지리산 어딘가에서 살고 있는 듯 하는 데 언제 한번 만나서 이제 그 당시 우리와 함께 근무했던 동료들은 거의 모두 정년퇴임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옛 동료들과 다시 만나 옛 이야기를 나누어 볼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가져 보기를 바란다.
수 십 년 전 청송 진보에서 20대의 젊은 혈기로 근무하다가 퇴근 후 지친 몸으로 한잔의 소주잔을 기울이던 우리들의 젊음이 아니었나? 언젠가는 이 곳을 벗어나기를 희망하며 고생을 참고 견디던 우리들의 20대 그런데 벌써 정년퇴임을 할 정도로 너무 많은 시간들을 보내 버렸다.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다던 옛말이 이제야 실감난다. 동기들아! 꼭 그리고 반드시 다시 만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