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시나리오 작가로 생존하기
연재작 소개의 글: 4년 전, 대기업을 퇴사하고 당당히 전업 시나리오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꿈에 부풀어 제출한 사직서는 알고 보니 가시밭길 행 급행 티켓이었다?! '퇴사, 그 후'는 그야말로 눈물없인 들을 수 없는 연명과 풀칠의 나날 그 자체! 정보성 0%. 성공담도, 실패담도 아닌, 실패기(期)를 지나는 중인 5년 차 시나리오 작가의 일상 생존기.
프롤로그를 시작하기에 앞서...
아래의 퇴사 후기글을 쓴 것이 벌써 자그마치 4년 전인 2020년이다. 당시 브런치 작가에 도전해볼 요량으로 프롤로그를 썼는데, 아니나다를까 새까맣게 잊어 버리고 2024년이 된 지금 다시금 꺼내보게 되었다. 그렇게 의도치 않게 옛 일기장에 적힌 일기를 꺼내보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는데, 아래 글을 읽고 난 첫 감상은 '참, 귀엽네... 앞으로 무슨 일이 닥칠 지도 모르고...'였다.
그렇다. 나는 현재 대기업 퇴사 후 5년 차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생계에 허덕이고 있는 '현재스코어: 실패한 퇴사자' 시나리오 작가다. 앞으로 몇 주, 혹은 몇 달 간 나의 지난 4년 간, 그리고 현재의 생존기에 대해 연재해볼까 한다. 그에 앞서, 4년 전 퇴사 직후 써두었던 글로 프롤로그를 시작하려 한다.
2020년 어느 날...
올해 초, 내가 쓴 첫 장편 시나리오가 영화화되어 스크린에 걸렸다. 본 사람보다 안 본 사람이,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작은 규모의 영화이긴 하지만, 내 펜 끝에서 탄생한 이야기가 영화가 되어 관객들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영화 개봉 당시 나는 당시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집필은 내가 첫 회사를 그만두고 두 번째 회사에 들어가기 전, 짧은 백수 생활을 즐기고 있을 때 완료하였으니 엄밀히 따지면 겸업이라고 보긴 어려웠지만, 혹시 모를 오해를 피하기 위해 크레딧은 가명으로 올릴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그렇게 나는 소위 말하는 '입봉'을 하게 되었다.
시나리오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은 대학교 4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꾸기 시작했다. 물론 영화를 쓰고 싶은지, 드라마를 쓰고 싶은지, 아니면 내가 모르는 다른 종류의 글을 쓰고 싶은지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던 것이, 나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전공도 하고 싶은 일과는 크게 동떨어져 있었고, 물어볼만한 주변인조차 없었다. 같은 과 동기들은 모두 취업 준비에 여념이 없었지만, 나는 철없이 어디 제출하지도 못 할 기획서만 써대고 있었다. 그러다 아무래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그 당시 내가 있던 곳보다는 꿈과 가까운 곳으로 가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작은 영화사에 무작정 지원 원서를 냈고, 어쩌다 보니 운 좋게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꿈과 조금은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처음 일을 시작한 회사는 외화를 수입하는 수입사였다. 그나마 할 줄 아는 게 영어였던 내가 업계에 진입할 수 있던 가장 현실적인 통로였다. 그렇게 무작정 업계의 일원이 되면 뭐라도 길이 보일 줄 알았는데... 완전한 착각이었다. 영화 수입사가 정확히 무엇을 하는 회사인지를 잘 모르고 입사한 탓이었다. 해외에서 영화를 구매해 한국에서 개봉을 하는 과정에는 어떠한 크리에이티브한 생각도 필요치 않았다. 구매하려는 영화가 한국에서 어떤 시장성을 가질지 판단할 수 있는 현실적인 안목이 사실상 가장 필요한 자질이었다. 물론 겉으로 보기엔 멋진(?) 장점도 있었다. 매년 독일, 홍콩, 프랑스, 미국 등의 국가에서 열리는 유수 해외 영화제 및 필름 마켓에 참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했다. 그렇지만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회사 생활 속엔, 나의 꿈이 없었다. 통장에 꽂히는 자그마한 월급과 나의 모든 시간을 바꾸는 기분이었다. 첫 번째 회사 생활은 나의 꿈은 철저히 배제된 시간들이었다. 그렇게 1차로 무작정 회사를 그만두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 고민이 되었다. 그나마 첫 번째 회사 생활로 알게 된 것이 있다면, 더이상 영화 수입 일은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래도 회사 생활을 하며 알고 지내는 거래처라는 것이 생겨났고, 그렇게 알게 된 제작사 대표님의 의뢰로 쉬는 동안 습작 수준의 시나리오도 써봤다. 고료는 경력에 비례해 매우 적었지만, 시나리오는 금방 영화화가 되었다. 나는 매우 운이 좋은 편이었던 것이다. 물론 작가가 쓴 시나리오가 영화화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생각한 것과는 매우 달라 충격적이긴 했으나, 이 이야기는 추후 자세히 하려 한다.
어쨌든 그렇게 나의 첫 장편 시나리오가 영화화가 결정되자, 마음 같아서는 무작정 작가의 길로 뛰어들고 싶었다. 그러나 나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시기상조라는 것을. 습작 수준의 글이 운이 좋아 영화화가 되긴 했으나, 나는 아무것도 아는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는 상태였다. 글 쓰는 법을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고, 한국 영화의 제작 과정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두 번째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두 번째 회사는 대기업이었다. 한국 영화를 하고 있는 회사였다. 새로운 업무를 배우고, 새 커리어를 쌓아가는 과정이 퍽 재밌었다. 무엇보다 작은 영화사를 다닐 때 '그 월급 받으라고 그만큼 공부시킨 줄 아냐'며 속상해하시던 부모님이 드디어 큰 회사를 다닌다며 좋아하셨다. 업무는 이전보다 내가 원하는 길과 조금 더 가까워졌지만, 오히려 마음은 더욱 괴로워졌다. 남들이 쓴 시나리오를 하루에도 몇 개씩 보며, '나도 써야 하는데... 나도 써야 하는데...' 하는 조급한 마음이 더욱 커져갔다. 물론 퇴근 후 글을 쓰는 방법도 시도해보았다. 그러나 그마저도 실패했다. 항상 일이 넘쳐 밥먹듯 야근에 정신적으로도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렇게 신체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번 아웃되기 시작하며 주말이 와도 그저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아무런 동력이 남아있지 않은 기분이었다. 누군가는 나에게 절박함이 부족하다며 훈계했고, 누군가는 핑계만 많다며 비웃었다. 맞다, 그것이 나의 한계였다. 그러나 시끄러운 머리에서는 도저히 창작이 불가능해 보였다. 이제 정말 진지하게 다음 스텝을 고민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난, 모두의 만류 속에서, 우선 회사부터 그만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