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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앨범 Dec 06. 2023

따릉아, 거기 있니?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내리면 항상 하는 고민이 있다. 집에까지 타고 갈 따릉이가 남아 있을까?


내리는 지하철역에서 집까지의 거리는 버스를 타기에도, 걷기에도 애매한 1.6km의 거리다. 버스를 탄다 하더라도 내려서 집까지 800미터를 더 걸어가야 한다. 더군다나 환승 요금  100원이 더 붙기까지 한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따릉이만 한 교통수단이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야. 따릉이가 있을거야.’

라고 생각하며 지하철 출구 계단을 경쾌한 걸음으로 뛰어올랐다. 시야에 점점 지상의 풍경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따릉이 대여소도 보이기 시작했다.


‘역시 난 운이 좋은 사람이야!’

따릉이 한 대가 다소곳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기쁜 마음으로 대여를 시작했다.


몇 번을 시도해도 대여가 되지 않았다. 고장 신고가 들어간 따릉이였다.

‘아......!’

마음속으로 잠시 탄식했지만 길 건너편에 또 다른 따릉이 대여소가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때마침 횡단보도 신호등도 녹색불로 바뀌었다. 이번에도 경쾌한 발걸음으로 횡단보도를 건넜다.


이곳에서도 마지막 남은 따릉이 한대가 진.짜.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너는 내가 데리고 가 줄게. 조금만 기다려.’


배터리 부족이라고? 배터리 부족은 생전 처음 본다. 슬퍼지려는 찰나, 근처의 버스 정류장이 눈에 들어왔다. 버스만 바로 와준다면 내리는 버스 정류장에도 따릉이 대여소가 있기 때문에 아주 좋은 상황 전개가 될 것 같았다.


‘와...! 오늘 운 진짜 좋은데?’

보통 10분은 기다려야 하는 파란색 간선버스가 정류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경쾌한 마음으로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에서 내리니 제법 많은 따릉이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설마 모두 고장 난 따릉이들은 아니겠지? 대여소의 따릉이들을 천천히 살펴봤다. 이왕이면 최근에 보급된 가장 좋은 따릉이를 타고 싶었다.


오돌토돌 파충류 피부 같은 자전거 손잡이가 눈에 들어왔다. 손잡이가 이런 모양이라는 것은 적어도, 2023년 12월 지금 시점에서는 가장 좋은 따릉이라는 것이다.

‘나. 는. 정. 말. 운. 이. 좋. 은. 사. 람. 이. 다.’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우며 대여 절차를 밟았다. 얼마나 운이 더 좋으려는 건지 결국 대여에 성공했고, 무사히 집까지 올 수 있었다.


여기 다 있었구나? 집 근처 대여소에 와보니 50대가 넘는 따릉이들이 있었다. 마치 동네 모든 따릉이들을 이곳에 집합시켜 놓은 것 같았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 아주 운 좋게, 무사히 따릉이를 타고 집에 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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