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 없이 살아가는 방법이라...
제목을 정하기는 했지만 여러 가지 주제로 바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꿈을 이루는 방법, 자주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 목표를 이루는 방법, 행복한 삶을 사는 방법, 무기력한 삶을 벗어나는 방법,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방법 등으로 말입니다.
이번 이야기는 굉장히 무거우면서 중요한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사실 '전부'라고 말해도 무방할 만큼 아주 무겁고 중요한 말입니다.
우리 아이가 저에게 와서 '아빠 세상에는 중요한 것이 너무 많은데 그중에서 뭐가 가장 중요해?'라고 묻는다면 저는 속으로는 '사랑'이라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용기'라고 말할 것 같습니다.
서시처럼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그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매우 어렵고 힘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속으로는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겉으로는 '용기'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제가 용기라고 말해주고 싶은 이유는 제가 후회하는 모든 것, 놓쳐버린 억겁의 시간들은 전부 용기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먼저 용기에 대해서 말하기에 앞서서 공유하고픈 명언이 있습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용기를 가장 잘 설명한 것이라고 보입니다.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네슬 슨 만델라-
어릴 적 저는 골목대장이었습니다. 학교에서도 대장 노릇을 했습니다. 이유는 운동을 해서 그런지 또래 아이들에 비해서 힘이 세고 덩치가 컸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대장은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어디서든 그렇습니다. 회사에서도, 전쟁에서도 대장에게 있어서 용기는 아주 중요한 덕목입니다. 그 용기에 매혹되어 부하들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친구들이 없어서 하는 고백이지만 옆동네 아이들과 종종 싸움이 벌어질 때 저는 사실 그 누구보다 두려웠습니다. 이를 악물고 죽을힘을 다해 싸운다면 이길 확률이 매우 높겠지만 승패를 떠나서 맞으면 아픈 것이 두려웠습니다. 아픈 것이 두려워서 한 대라도 덜 맞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습니다. 저는 그래서 이순신 장군을 정말 존경합니다. 영화를 보면 그 상황에서 사실 가장 두려운 사람은 이순신 장군이 아니었을까요? 심지어 그는 왕의 시기와 질투로 인해서 공을 세우고도 벌을 받았으니 말입니다.
이처럼 용기는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니라 아마 사이코패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용기는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인생에서 두려운 순간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사실 모든 것이 두렵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는데 반대로 말하면 본능적으로 적응하기 위해서 필사의 힘을 다한다는 것이죠. 왜 적응하기 위해서 필사의 힘을 다할까요? 새로운 환경을 극도로 싫어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용기는 두렵지만 두려움 속에서 두려움을 이겨내며 적응하려고 필사적으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것이 두려움의 대상인 인간에게 있어서 어쩌면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덕목은 용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모든 일에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우리 아이가 세상 모든 일에 두렵지만 용기를 내서 행동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꿈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대부분 어릴 때일수록 꿈은 확고하고 명확합니다. 왜 어릴수록 꿈이 확고하고 명확할까요? 초등학교 저학년 교실에 들어가서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UN사무총장, 대통령은 심심치 않게 나옵니다.(제가 어릴 때의 기준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어른들이 두려워하는 일을 대범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하기도 합니다. 물건을 훔치는 일이나 반항하는 일들이 예입니다. 물론 그런 나쁜 일은 용기 있다고 칭찬해서는 안 되지만 용기가 필요한 일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잘 모릅니다. 아주 작은 일이라도 그 일을 하기 위해서는 능력보다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이죠. 그리고 그 일들이 사실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잘 모릅니다. 어떤 상황들이 벌어질지, 그 상황들이 나에게 어떠한 영향을 줄지도 잘 모릅니다. 그러니 용기 있게 일단 행동하는 것이죠. 하지만 애석하게도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반에서 대통령을 하겠다는 아이들이 확연히 줄어듭니다. 그보다는 공무원, 선생님과 같은 조금은 평범한 꿈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중학생들은 더합니다. 고등학생이 되면 이제 꿈을 모르는 아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사실은 꿈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알게 된 것이죠. 아주 작은 꿈이라도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견뎌야 하는 수많은 시간들을. 대학생이 되면 십중팔구는 꿈이 없다고, 모른다고 말합니다. 이 역시 꿈을 모르기보다는 정확하게 말하면 '용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 꿈'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죠.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요? 용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 꿈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까요? 존재한다면 그것은 정말 꿈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요? 우리들은 어쩌면 '용기가 없어서' 불가능한 것을 찾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 아이는 용기가 없어서 용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 일을 찾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용기를 집어삼키도록 허락하지 않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남들은 안 된다고,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일에 대범하게 마주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저는 '용기가 없어서' 힘들었습니다. 정답을 알면서도,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면서도 그저 용기가 없어서 도전하지 못했고 이루지 못했습니다. 정답을 아는데도 용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 '없는'방법을 찾으면서 찾다가 포기하는 것을 반복하며 살아왔습니다. 사실 고백하자면 지금도 그런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아주 조금의 용기를 내기 시작하면서 저의 인생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결혼도 하게 되었고, 지금은 사업을 준비하고 있기도 합니다. 글도 쓰고 있고, 직장생활도 하고 있으며, 부업도 하고 있습니다. 전부 용기가 필요한 일들이었습니다. 고백할 용기, 돈을 모으기 위해서 나의 쾌락과 자유를 포기할 용기,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상처 주지 않으며 이해하고 맞춰갈 용기, 부족한 돈으로도 멋지게 결혼하는 방법을 찾을 용기, 그 방법들에 대해서 주변 어른들을 설득할 용기, 불안하지만 불안을 마주하고 사업을 계획할 용기, 아내에게 설득할 용기, 함께 할 동업자를 찾아서 설득할 용기, 그들을 이끌 용기, 잘 쓰지는 못하지만 글을 쓸 용기, 직장생활을 해본 적이 없지만 지원해서 열심히 할 용기, 너무 힘들고 지치지만 퇴근 후 컴퓨터 앞에 앉아서 부업을 할 용기, 귀찮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운동을 할 용기, 내 삶을 마주하기 싫지만 마주하고 돌아볼 용기, 지금 내 모습이 싫고 변화하고 싶어서 지금부터는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으로 살겠다고 다짐할 용기, 그리고 그 다짐을 행동으로 옮겨 정말 변화할 용기. 이렇게 지금의 저는 남들 앞에서 멋진 삶을 살고 있는 것도 아니고 멋진 사람도 아닐 수도 있지만 이런 저의 모습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크고 작은 용기가 많이 필요했습니다.
담배를 끊는 것도 너무 힘든 일이었습니다. 담배를 끊기 위해서 필요한 담배를 피우지 않을 용기와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을 용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이어트도 힘들었습니다. 거울 속에 배가 불룩한 내 모습이 너무 싫었지만 맛있는 것을 먹지 않을 용기, 힘든 운동을 이겨낼 용기, 그 시간에 OTT를 보며 쾌락을 즐기지 않을 용기가 없었습니다.
우리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데 마주하게 될 모든 두려움 앞에서 용기를 가진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어쩌면 시작함에 있어서 필요한 용기를 가지는 것이 반이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두려움에 잠식되어 용기가 필요한 것을 알면서도 용기가 필요하지 않은 방법을 찾는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지혜라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상황에서 용기가 필요 없는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작은 용기로도 큰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두려움을 피하는 것을 지혜로 착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꿈을 꾸는 아이였으면 좋겠습니다. 그 꿈은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큰 꿈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키냐는 그 누구의(설령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의 말이라도) 말도 듣지 않고 오직 용기로 그 꿈을 지켜내고 두렵지만 한 걸음씩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두려움을 마주하고 용기 있게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일,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일, 누군가를 만나는 일 등 그게 어떤 일이라도 자신의 세상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일이라면 두려워도 용기 있게 도전하고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딱 한 가지만 명심했으면 좋겠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 전적으로 자신이 책임을 지는 각오를 하고 책임을 지는 것을. 성인이 되기 전은 사실 선택과 책임을 연습하는 시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더 나은 선택을 위해서 조언을 구할 수는 있으나 그 누구도 자신의 인생을 책임져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 같지만 의외로 심플합니다. 어떤 일을 하거나 어떤 선택을 함에 있어서 '결과에 상관없이 나는 모든 것을 내가 책임을 질 각오가 되어 있으며 책임을 질 것인가'만 생각하면 됩니다. 그렇다면 하면 될 일이고, 그렇지 않다면 하지 않으면 됩니다. 그저 부모는 선택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하는지 알려주는, 즉 세상 가운데 홀로 우뚝 서는 법을 알려주는 사람일 뿐이니까요. 저는 네이버 지식인 활동을 하는 것을 즐깁니다. 누군가의 고민을 듣고 조언을 하고 그 조언이 도움이 되었다는 응답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청소년들의 고민을 유심히 봅니다. 그들의 고민을 보고 있으면 아이들이 어떤 사회에 놓여있는지,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보이니까요. 청소년 고민상담에서 꽤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고민의 키워드가 바로 '임신 가능성'입니다. 그런 고민을 보면 불쌍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 선택과 책임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사람은 다름 아닌 부모와 선생입니다. 100점을 맞는 방법, 공부를 잘하는 방법이 아니라 현명한 선택을 하고 용기와 책임감을 가지고 책임을 지는 훈련을 시켜주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눈앞의 쾌락에 집중하여 자신들의 선택에 의해서 어떠한 책임을 지게 될지 모릅니다. 그러니 성관계라는 차원의 문을 열고 들어간 다음 책임질 수 없는 임신에 대해서 엄청난 두려움을 안게 되는 것이죠. 부모님들께 여쭙습니다. 정말 성관계라는 엄청난 선택 앞에서 임신이라는 책임질 수 없는 무게에 대해서 아는 것보다 100점 맞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더 중요한가요? 100점을 받지 못하더라도 인생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번의 실수로 인한 성관계는 인생을 변화시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아이들에게 100점을 맞는 방법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현명한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용기 있게 책임을 지는 것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그게 정말로 훨씬 중요하다고 알려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의 상황이 무엇이든 내면의 소리를 무시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 누구보다 고민했을 것이며, 그 누구보다 간절하고 그 누구보다 두려운 사람이며, 그 누구보다 용기를 내야 하는 사람이 바로 자기 자신이니까요. 세상 모두가 등을 돌리고 말려고 내면의 소리가 하라고 한다면 용기 있게, 세상에 오직 자기 자신만 존재하는 것처럼 나아가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게 범법행위라도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때로는 법에 맞서야 하는데 생각보다 그런 일이 많이 있으니까요. 법이 무서워서, 법의 처벌이 두려워서,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서 소중한 것을 지켜낼 용기조차 못하는 사람은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정의를 알려주는 것 또한 저의 역할이긴 합니다만.
저의 이야기를 잠깐 하겠습니다.
수많은 일 중에서 제가 용기를 내지 못함으로 가장 후회하는 일은 20년 동안 누군가의 꼭두각시로 살았다는 겁니다. 초등학교 시절 운동을 그만두겠다고 다짐하고 부모님께 말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감독에게 말할 용기가 없으니 당신이 나서서 해결해 달라고 말입니다. 어린 나이라 운동을 그만두기 위해서는 저에게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세상을 바꿀 용기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때 운동선수세계는 폭력이 난무한 시대였고 감독에게 운동을 그만두겠다고 말한다는 것은 구타를 각오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름 꾀를 내어 부모님께 부탁을 드렸던 겁니다. 불행히도 저의 부모님은 어린아이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네가 선택한 일이니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해!"라고 다그쳤습니다. 아이러니합니다. 제가 선택해서 시작한 일을 저의 선택으로 그만하겠다는데 시작은 되지만 그만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부모를 탓하지 않습니다. 어리지만 저에게는 용기가 없었으니까요. 이후 저는 대학생이 되어 운동을 그만두겠다는 또 한 번의 용기를 내었습니다. 그때는 제가 용기를 내어서 부모님께 말씀드렸고 감독님에게도 말씀드렸습니다. 어렵지만 용기를 낸 것이지요. 하지만 끝까지 두려움을 맞설 용기는 부족했습니다. 용기의 끈기가 부족했다고 할까요? 결국 저는 계속 운동을 했습니다. 이후 저는 25살이 되어 운동을 그만두고 서울로 상경을 했습니다.(마지막은 이상하게도 수월하게 그만둘 수 있었습니다.) 서울에 상경하여 끝판왕을 만났습니다. 촌수는 사촌이요 관계는 작은할아버지였던 사람의 꼭두각시가 되었던 겁니다. 무서웠습니다. 굉장히 무서운 사람이었고 집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에 대한 두려움에 하기 싫은 일을 무려 5년 동안 했습니다. 매일 그에게 전화가 올까 봐 두려워 떨었으며, 심지어 그의 벨소리만 우스꽝스럽게 바꾸기도 했습니다. 나중에는 그 우스꽝스러운 벨소리가 가장 두려운 소리가 되더군요. 저는 그에게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살아가겠다'라고 말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는 저에게 회사를 물려줄 생각으로 나름 저를 단련하고 훈련시키고 있었고 나름 아끼는 조카손자였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그 시간 동안 굉장히 괴로웠습니다. 제 인생은 용기가 부족함으로 인해 저를 묶고 있던 줄에서 벗어난 30세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실제로 그 줄을 다 끊고 나니 비로소 제 자신이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했고 꿈을 꿀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전에는 꿈을 꾸는 것도 다 소용없는 짓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제 인생은 어차피 작은할아버지의 뜻대로 흘러갈 거라는 끔찍한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20년 동안 용기를 내지 못한 대가로 누군가의 뜻대로 살아가야 하는 꼭두각시였습니다. 어린 나이였고 충분히 용기가 없음에도 위로받을 수 있는 나이였지만 그 대가는 참혹했습니다. 20년 동안의 용기가 없는 대가는 '자아'였습니다. 용기가 없었다는 이유로 저는 20년 동안 자아가 없는 채로 살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수많은 일 중에서 제가 용기를 냄으로써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은 나를 옭아매고 있던 꼭두각시의 줄을 끊어내는 일이었습니다.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논리 정연한(작은할아버지를 설득할) 명분까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는 실제로 엄청난 부자이고 막무가내로 유명하기에 그의 성격과 그의 재산으로 미루어보아 확실히 끊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렇기에 어정쩡하게 의견을 피력했다가는 오히려 더 힘들어지는 상황이 생길 게 뻔했고 한 번 낸 엄청난 용기를 끝까지 지켜낼 용기도 필요했습니다. 압박감에 의해 심리적인 고통이 극에 달했을 때 저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했고 정신과에 가서 검사를 받은 결과 우울증 환자보다 더 심각한 상태라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약을 처방받기도 했습니다. 약을 먹으니 정말 거짓말처럼 마음의 평화가 밀려왔습니다. 영혼이 빠지는 느낌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저는 그 약을 먹지 않았습니다. 이 조그만 알약보다 조금만 더 큰 용기를 내보자고 다짐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저는 여자친구(지금의 아내)와 진지하게 결혼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혼마저 작은할아버지에게 허락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물론 저는 허락을 구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통보할 생각이 있었죠. 한 여자에게 평생을 약속하는 사람이 자신의 인생조차 주체적으로 살아내지 못한다면 그 얼마나 아이러니하고 무책임한 일일까요? 저는 그 생각에 아내와 결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작은할아버지와 인연을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집안 어른들이 저를 향해서 '여자 하나 때문에 눈이 돌아서 미쳤다'라고 말해도 상관없었습니다. 저는 용기를 가진 김에 집안 자체와 인연을 끊어낼(천륜도 끊어낼) 용기도 가졌으니까요. 저는 용기를 가지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사랑하는 여자를 지키고 나의 인생도 지키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전화를 걸어서 결혼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주변 회사 사람들에게 명령을 내려서 저에게 결혼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지, 왜 결혼을 하면 안 되는지 설득하더군요. 얼마나 비겁한지. 하지만 오히려 좋았습니다. 평소 명석하고 현명한 두뇌로 큰 회사를 이끌던 작은할아버지는 감정에 휩싸여서 그런지 손자인 저에게는 어리석은 판단으로 행동하고 말하고 있었고 그 어리석은 행동과 판단은 한 수 한 수가 모두 저에게는 그에게서 멀어질 명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제가 그렸던 최악의 상황은 아이러니하게도 결혼을 흔쾌히 허락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와 인연을 끊어기가 어려워지니 말입니다. 다행히도 그는 계속해서 악수를 두었습니다. 결정적으로 마지막 날 밤 그는 저를 불러내었고 마지막으로 다그치며 말했습니다.
"네가 장가가려고 서울에 왔어? 성공하려고 온 거 아니야!? 너 정말 갈 거야? 내 말을 안 듣고 네 마음대로 할 거야? 말해봐!"
굉장히 무서웠고 벌벌 떨렸지만 지금 이 순간 말을 잘 못하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는 직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순간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네. 결혼을 해야겠습니다. 지금 결혼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습니다."
매일 종처럼 그에게는 항상 예스맨이며 약한 모습만 보이던 제가 꽤나 단호하게 대답하니 그는 적잖이 당황한 듯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천천히 일어서며 내 앞에 섰습니다. 본능적으로 느껴지더군요. 눈을 보지 않아도 살기가 느껴지고 한 대 날아오겠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곧 저의 직감대로 따귀를 날리더군요. 그 짧은 찰나의 순간에 고민을 했습니다. 맞아야 할까? 맞지 말아야 할까? 솔직히 맞기 싫었습니다. 맞을 이유도 없고 맞기도 싫었습니다. 저는 운동 중에서도 순발력이 강하기로 유명한 역도선수였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잘했습니다. 15년의 역도선수 생활이 지금을 위한 시간이었을까요? 저는 저도 모르게 날아오는 손바닥을 피했습니다. 피하니 더 화를 내면서 한 대 더 날리더군요. 어차피 피했는데 맞을 이유가 없었고 더 맞기 싫어져서 또 피했습니다. 그렇게 날아오는 따귀를 두 번이나 피하니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내가 왜 내 인생을 전부 이 사람에게 컨펌을 받고 있지?' 그의 따귀는 악수의 결정타였습니다. 그 따귀로 인해서 저는 그 자리에서 그와 완전히 인연을 끊어낼 확실한 명분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당신이 뭔데 나를 때리냐며 다시는 당신을 보지 않겠다고 소리를 지르고 가버렸습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고 또 가장 멋지게 그 용기를 실천한 일이었으며,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입니다. 그 용기를 대가로 저는 30살에 저의 인생과 자아를 찾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아이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내가 살아온 모든 시간 속에서 나는 항상 용기가 없었다. 그러나 아주 다행히도 정말 용기가 필요한 순간에는 용기를 내었고 그 용기로 인해서 지금의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었단다. 가난할 수도 있고, 환경이나 상황이 좋지 않을 수도 있고 심지어 선천적으로 또는 후천적으로 장애인이 될 수도 있다. 시대가 좋지 않고 정치적으로 정권이 이상할 수도 있다. 경제가 무너질 수도 있다. 그런 모든 좋지 않은 상황에서 그런 것들은 탓할 필요도 없고 탓할 거리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숱하게 탓하며 살아오다 깨닫게 되었단다. 그래서 아버지는 누군가를 탓하기보다는 항상 내가 지금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용기가 없는 것은 아닌지 돌아본단다. 그럼 십중팔구는 주변 환경의 탓이 아니라 용기가 없는 탓이란다. 내 탓이지.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 아니, 꼭 가져야 한단다. 세상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단다.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이지만 절대로 네 뜻대로 되지 않는단다. 그러나 네가 용기를 가지는 순간, 네가 더 나은 삶을 살겠다고 다짐할 용기, 그리고 그 삶을 바로 행동으로 옮겨서 실천할 용기, 그 실천을 어렵지만 오래도록 유지할 용기를 가지고 나아간다면 적어도 너의 세상은 변화시킬 수 있단다. 두렵다는 것을 정확하게 인정하고 똑바로 직시해야 한다. 두려움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이 바로 용기의 시작이란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두려워도 용기를 가지고 나아가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용기가 필요한 모든 순간에서 도망치지 않는 네가 되기를 아버지는 진심으로 응원한다. 어디에서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