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20, 30대의 가장 큰 고민은 잘하는 것을 해야 할지,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할 지로 정착된 것 같습니다. 심지어 10대 후반에도 그런 고민을 하는 아이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 고민은 비단 젊은 청춘들의 고민만은 아닙니다. 40, 50대, 아니 어쩌면 죽는 순간까지의 고민일지도 모릅니다. 일을 해야 하는 모든 사람들이 한 번은 겪고 또 끝내 답을 찾지 못하는 고민이니까요.
만약 우리 아이가 저에게 이 둘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하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둘 다 아니란다'
이상하죠. 좋아하는 것도 잘하는 것도 아니면 대체 무슨 일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그보다 정말로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많은 강의와 책을 보면 저마다 의견이 분분합니다. 중요한 것은 독자들이나 청춘들이 볼 때 어떤 것을 강조하든 전부 그림 속 떡으로 보인다는 겁니다. 잘하는 것을 하라고 하는데도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좋아하는 것을 하라고 하는데도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둘 중 하나를 정해주면 그다음으로 생기는 고민이 바로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는 것입니다. 이 역시 평생 찾아도 찾지 못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저의 경험상 중요한 것은 잘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경제적 자립이었습니다. 즉 일단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아이가 저에게 둘 중에 무엇을 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경제적 자립을 해라"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지금 청춘들이 해야 하는 고민은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중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가 아니라 경제적 자립을 어떻게 할지입니다.
저도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고 독서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한 때 글을 써서 돈을 벌려고 경제활동을 그만두고 몰두했던 적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좋아하는 것'이지 '잘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돈은 좋아하는 일보다는 잘하는 일을 해야 벌 수 있습니다. 입사를 할 때도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을 뽑지 않습니다. 사업을 할 때도 좋아하기보다는 잘해야 돈을 벌 수 있습니다. 물론 좋아하면 좋습니다. 그렇지만 좋아하기만 해서는 돈을 벌 수 없습니다. 낭만이 없지만 그게 자본주의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생각보다 돈을 많이 벌지 못했습니다. 돈을 벌지 못하니 생활고에 부딪혔습니다. 돈이 다 떨어질 무렵에는 고민해야 했습니다. 아니 걱정해야 했습니다. 앞으로의 삶을 말입니다. 그렇게 걱정과 고민이 머리를 가득 메우니 당연히 독서로 안 되고 글도 잘 써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운동을 잘합니다. 전문적으로 했었고 체육교사 자격증도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부동산 관련 일을 했었습니다. 3개월 만에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해서 개업도 했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누군가를 교육하는 것을 좋아하고 잘합니다. 운동을 잘하고 누군가를 교육하는 것을 잘하고 좋아하니 체육교사나 전문체육지도자가 저에게는 안성맞춤인 직업이었습니다. 부동산 관련 일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싫어합니다. 작은할아버지의 등살에 자격증도 땄지만 제가 좋아해서 한 것이 아니었고 심지어 싫어했습니다. 부동산은 저에게 싫지만 잘하는 일에 속했습니다.
생활고에 부딪혔을 때 당연히 처음에는 학교에 원서를 넣었습니다. 애석하게도 전문지도자는 자격증이 없어서 넣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늦은 나이에 체육교사 경험도 없는 제가 학교에 이력서를 넣으니 넣는 족족 서류전형에서 탈락했습니다. 그렇게 넣은 원서 전부 떨어졌습니다. 그럼 교육을 빼고 운동분야에 넣어보자 싶어서 체육회에 원서를 넣었습니다. 이번에는 합격했습니다. 근데 급여를 보니 제가 생활을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급여였습니다. 그래서 합격을 포기했습니다.
그렇게 잘하기도 하고 좋아하기도 한 안성맞춤의 직업에 다 떨어지니 자연스럽게 부동산이 남게 되었습니다. 개업은 하기 싫어서 구직을 하는 도중에 경력 5년 이상의 전문가를 찾는다는 회사를 보게 되었고 기본 급여도 괜찮았고 심지어 계약 당 인센티브도 주니 조건은 최고였습니다. 다만 제가 하기 싫은 것이 문제였죠. 그래도 찬 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어서 지원을 했고 면접을 봤는데 운 좋게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비로소 경제적인 자립을 하게 되었던 것이죠. 경제적으로 자립을 하게 되니 마음이 평안해졌습니다. 싫어하는 일이지만 생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이렇게 큰 일인지 몰랐습니다.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니 자연스럽게 클래식을 듣게 되었고 클래식을 들으니 많은 시상과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글도 쓰고 사업도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다행히도 잘하는 것이 있었고 좋아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기준으로 지원을 하게 되었고 일자리를 갖게 되었습니다. 좋아하는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잘하는 일로 경제적인 자립을 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중요한 것은 경제적인 자립입니다. 저도 이렇게 글로 쓰면 간단해 보였지만 제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경제적인 자립만을 목적으로 제가 '할 수 있는 일'에 지원을 했습니다. 운동 밖에 하지 않은 제가 운동을 배제하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었을까요? 제조 공장 말고는 없었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힘들어서 하지 않는 일이 저에게 허락된 유일한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들어가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처음 해보는 일이었고 어쩌면 그 일이 제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기대하면서 말이죠. 불행인지 다행인지 좋아하는 것도, 잘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보니 제가 어떤 일을 싫어하고 어떤 일을 좋아하고, 어떤 일을 잘하는지 조금씩 알게 되었던 것이죠.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를 수 있습니다. 모르는 것이 아니라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이 고민을 하고 있는 당신이 만약 성인이라면 이 고민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경제적으로 자립이 안 된 상태라면 더욱더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좋아한다는 것은 가슴이 뛰거나 설레는 일이 아니라 '대가'를 지불받지 않아도, 때로는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하고 싶은 일입니다. 취미생활이 그 예입니다. 잘하는 것에 대해서 혼동이 많습니다. 그 기준이 모호하고 자신의 눈에는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의외로 간단합니다.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것은 잘하는 일입니다.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도울 수 있기만 하면 됩니다. 많은 사람을 크게 도울 수 있다면 많이 잘하는 일이고, 적은 사람을 적게 도울 수 있다면 조금 잘하는 일입니다. 공장일은 제가 잘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잘하는 일은 없습니다. 배워야 하고 숙련이 돼야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으니까요. 직장에 취직을 한다는 것은 결국 사장이 도움을 구하고 그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겁니다. 그 대가로 급여를 받습니다. 사업은 도움이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찾아서' 도움을 주고 대가를 받는 것입니다.
잠깐 경제적인 자립에 대해서 언급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많은 청춘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자립이라는 것은 단순히 집에서 나와서 자취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이 직업, 생계와 밀접해서 제가 편의상 '경제적인 자립'이라고 언급했지만 사실 '자립'이라고 생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자립은 정신적, 경제적을 포함한 모든 면에서의 자립을 뜻합니다. 만약 보증금, 월세, 관리비, 식비, 교통비, 통신비, 공과금, 보험료 중 단 하나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부모나 형제의 자금이 들어가고 있다면 경제적으로 자립된 것이 아닙니다. 경제적인 자립은 자신이 벌 수 있는 '급여의 한도 내에서' 생활하고 책임지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서 보증금 300만 원으로 구할 수 있는 집, 1,000만 원으로 구할 수 있는 집의 질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지금 당장 내가 300만 원밖에 없는데 그 집이 너무 형편없어서 살기가 싫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부모님이 700만 원을 해준다는 상황이라면? 여기서 부모님의 도움을 받는다고 말하는 사람이라면 아직 경제적으로 자립이 안 된 사람입니다. 나의 능력으로는 300만 원짜리 집에서 살 수밖에 없으니까요. '도움을 준다는데 왜 거절해? 바보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도움이라는 것은 '자립'이 완성된 사람끼리 주고받는 것입니다. 자립이 된 사람이 자립이 안 되는 사람에게 주는 도움은 도움이 아니라 '기부', '봉사'라고 합니다. 부모에게 기부나 봉사를 받고 있는 것이죠. 월세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부 다 스스로 책임지고 있는데 통신비나 보험료만 부모님이 내주고 있는 상황이라면요? 그것도 자립이 안 된 상황입니다. 진정으로 자립이 된 사람들은 압니다. 매월 나가는 통신비와 보험료가 생활에 얼마나 큰 지장을 주는지 말입니다. 그래서 꼼꼼하게 알아보고 보험료를 최대한 줄이기도 하고 핸드폰도 저가형으로 바꾸고 알뜰폰을 쓰기도 합니다. 단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서 말이죠. 그러니 아주 작은 돈이라도 가볍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렇게 자신의 능력에 맞춰서 살아가고 책임지는 사람을 보고 경제적인 자립이 되었다고 합니다.
정신적인 자립은 정신적으로 기대지 않고 홀로 서는 것을 말합니다. 만약 전세사기를 당해서 당장 집도 절도 없이 쫓겨나서 길바닥에 나앉아야 한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여기서 부모님의 집으로 들어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도 부모님께 정신적으로 기대고 있는, 정신적 자립이 안 된 상태입니다. 길바닥에 나앉아야 합니다. 찜질방에서 자든, 고시원으로 옮기든 사기를 당함으로 인해서 추락한 나의 상황에 맞게 살아내야 합니다. 그래야 다시는 사기를 당하지 않습니다. 그래야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경제적, 정신적인 자립이 된 상태를 '자립'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이렇게 경제적, 정신적인 자립을 하려고 한다면 지금 고민해야 하는 것은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가 아닙니다. 바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습니다. 만약 우리 아이가 성인이 되어서 '친구들은 대기업에 들어가고 멋진 직장을 가지고 있다'라고 비교하며 불평하고 그로 인해서 자신도 그러한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런 이유로 잘하는 것이 없고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 저는 혼을 내겠습니다.
인생은 자립준비, 자립, 자립준비교육, 자립의 순서로 흘러갑니다. 성인이 되기 전에는 자립을 준비하고, 성인이 되어서는 자립을 하고, 결혼을 하고 난 후에는 자녀에게 자립을 준비시킬 교육을 하고, 자녀가 자립을 하면 다시 자립을 하게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립이 되어야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겁니다. 요즘 사회를 보면 30살이 넘어서도 여전히 자립을 준비하는 사람이 있고 자녀에게 자신의 미래를 전부 걸어서 자녀가 자립된 후에 정작 본인은 자립이 안 되는 안타까운 일도 발생합니다. 개개인이 자립이 되었을 때 그 사회는 건강합니다. 그게 가족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족 구성원이 모두 자립이 되었을 때 비로소 행복한 가족이 될 수 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에게 철없이 용돈을 달라고 하는 자녀가 있다면 그 자녀를 볼 때 부모는 행복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나이가 들어서 자녀에게 돈을 받아야 생계유지가 가능한 부모가 있다면 그 자녀는 행복하지 않습니다. 냉혹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이고 현실입니다. 자녀는 부모님을 위해서 자립을 해야 하고 자립을 도와야 하며, 부모는 자녀를 위해서 자립을 도와주고 자신도 자립해야 합니다.
당신이 성인이라면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일은 공부가 아니라 자립입니다. 공부는 자립에 필요한 능력과 지식을 배우는 것을 공부라고 합니다. 왜 그토록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 노력할까요?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요? 좋은 직장은 왜 가지려고 하나요? 누구보다 번듯하게 자립하기 위해서가 아닌가요? 지금 해야 할 고민은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이 아니라 바로 '자립'입니다. 그리고 자립을 위해서 당장 해야 할 일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물론 할 수 있는 일을 고를 때 잘하는 일이거나 좋아하는 일이거나 잘하면서 좋아하는 일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무엇을 위해서? 자립을 위해서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아이에게 한 마디 하겠습니다.
아버지는 어릴 적 가난으로 인해서 부모의 보호를 받은 날보다 받지 못한 날들이 많았단다. 초, 중, 고, 대학교 입학식, 졸업식에 부모님이 오신 적도 없고 무언가를 선택할 때 부모에게 물은 적도 거의 없단다. 마지막으로 물었던 것이 10살 때 '운동해도 되냐'는 것이었단다. 어릴 때는 그런 부모를 원망했다. 절대로 그런 부모의 행동이 잘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란다. 그러나 그런 가정에서 자라서 아버지에게 도움이 되었던 것은 언제부턴가 나는 내 인생에 있어서 모든 선택을 스스로 하고 있었다는 것이란다. 크고 작은 모든 일에 있어서 나는 모든 것을 내가 선택했단다. 물론 잘못된 선택과 용기가 부족함으로 인해서 누군가의 꼭두각시로 살았던 적도 있지. 그것 역시 아버지가 선택한 일이었단다. 그래서 그런 시간들을 후회는 하지만 누굴 탓하지는 않는단다. 네가 태어난 순간부터 너를 교육하는 아버지의 목표는 단 하나란다. 네가 바른 사람으로 자립하는 것. 그래서 너에게 모진 아버지가 될 수도, 냉혹한 아버지가 될 수도 있단다. 너는 나에게 울면서 '다른 친구들은 부모가 다 해주는데 왜 나는 안 해줘!'라고 소리치며 상처를 받을 수도 있겠지. 그런 너를 보게 된다면 아버지로서 가슴이 찢어지듯 아프겠지. 그렇지만 얘야. 아버지는 백 번, 천 번을 다시 너의 아버지로 태어나도 똑같이 교육할 것이란다. 최선을 다해서 자립해야 한다. 이를 악물고 자립해야 한다. 힘들 거야. 자립의 과정에서 마음의 상처도 많이 받고 몸도 고되고 힘들 거야. 그렇지만 자립하지 못한 대가는 반드시 찾아온단다. 네가 조금이라도 더 어리고 혈기가 왕성할 때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이 너에게도 좋은 일이라는 것을 일찍 깨달아야 한다. 시간이 흘러서 네가 힘이 없어지고 나이가 들었을 때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면 그 고통은 수 천배, 수 만 배로 커질 테니 말이다. 그러니 남과 비교하지 말고 오직 '어제의 너 자신'과 비교하며 살아라. 남이 무슨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 남이 돈을 얼마나 버는지 보지 말고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인가'에만 집중하거라. 그렇게 매일이 어제보다 나은 삶을 살게 된다면 분명 너는 남들보다 훨씬 더 멋진 사람이 될 것이니 말이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거라. 그렇게 어제의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시간과 힘이 남거든 천천히 조금씩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도 된단다.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으면 좋아하는 일도, 잘하는 일도 평생 찾을 수가 없단다. 아버지는 네가 멋지게 살아가는 것보다 멋지게 자립하게 될 것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