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운 후배 교사들에게 드리는 글
예비 교사 혹은 후배 교사들께 드리는 글입니다.
요즘 학교 현장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든 신규 교사, 젊은 교사들을 볼 때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합니다.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이야기긴 하지만, 정말 제가 신규일때만 해도 한 학교에 그룹으로 신규 발령이 났고, 신규 동기들끼리 서로 의지하며 그 힘든 교직 생활을 버텨 내곤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몇 년에야 한 번 신규 교사를 만날 수 있고, 신규 교사가 발령난다는 소식이 들리면 너도나도 상기된 얼굴로 반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막상 학교 현장에 나오면 또래 교사가 별로 없어 의지하거나 기댈 곳이 많지 않다는걸 압니다.
예전에 '블랙독'이라는 드라마를 보고, 잠시 잊고 있었던 초임시절의 당혹감과 고충이 떠오르면서 지금 학교 현장의 많은 후배 교사들이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짧은 시간이었고, 학교에 돌아가서는 언제 그랬냐는듯 나의 교직 생활을 감당하기 바빴습니다.
인생을 살아온 만큼, 경험한 만큼 아는 것도 생긴다고 지금까지 경험한 것보다 앞으로 겪어야 할 일들이 훨씬 많은 신규 교사들이 인생 선경험자인 수많은 학부모들을 상대하면서 많이 힘들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 또한 초임시절 도대체 이해할 수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것만 같았던 학부모들이 있었으니까요. 그럴때 옆에서 모든 상황을 둥글둥글하게 받아들이며 시종일관 학부모를 차분하게 대하는 선배 교사가 더욱 이해하기 힘들기도 했습니다.
세월이 지나도 성격 탓인지 아직도 내려 놓지 못하고 자다가 이불킥하는 버릇은 여전합니다. 그렇지만 전과 달라진 점은 내가 감당하고 허용할 수 있는 부분들이 좀 더 많아졌다는 것과 부당함이나 불합리함에 대해 좀더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겁니다.
한마디로 교사로서 좀더 둥글어졌다는 건 누가 도와줄 수도 없고 지금 당장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시간이 지나 자연스럽게 내공이 쌓이면 가능한 일입니다. 어쩌면 교직 평생 안될 수도 있습니다. 본인의 성격이나 성향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누가 강요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럴땐 당당하게 자신만의 캐릭터로 나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또하나는 학부모 민원에 대한 대처인데, 저도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이제는 나름의 메뉴얼을 만들어 나만의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학부모 민원 대응 메뉴얼이 딱히 없었기 때문에 학교라는 생태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나름대로의 생존 법칙을 만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많은 선배 교사들이 그렇게 외로운 대응을 해왔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게 현실입니다.
제 나름대로 민원 발생시 적용하고 있는 개인 메뉴얼입니다.
학생 사안이 발생해서 학부모 민원 전화가 걸려오면,
1. 우선 끝까지 듣고 공감한다. '아, 그러셨다면 너무 속상하셨겠습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너무 놀라셨을것 같아요.' 라는 말로 학부모님의 심정을 공감한다. 다른 정보 없이 아이의 입장만 전해들은 학부모님들 대부분은 상황을 극적으로 상상할 수 있기 때문에 정말 놀란다.
2. 그런 다음 사실 확인을 약속한다. '제가 상황을 정확히 먼저 파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이의 말이 사실인지, 혹은 놓치거나 오해한 부분이 있는지 전체적인 정황을 파악해 보겠습니다'라고 한 다음 기다려 줄 것을 부탁한다. 너무 불안해 하는 학부모라면 '파악 후 명확하게 사실로 확인이 된다면 학교에서 적극적으로 조치를 취할 예정입니다. 너무 걱정마시고 기다려 주세요.'라는 말을 덧붙여 드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3. 사실 확인 후, 민원 제기의 소지가 분명한 사안이라면 업무 메뉴얼 대로 진행하면 되는데,
다만, 생활지도에 있어서 교사의 자율성을 활용하되 중대한 사안이거나 담임 교사 선에서 중재할 수 없는 민원이라면 바로 업무 담당자나 관리자에게 보고하고 한 발 물러서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장 나은 선택인 것 같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아무도 감당하지 않으려 한다면 학부모에게 업무 담당자나 관리자를 직접 'contact' 할 수 있는 루트를 알려준다.
4. 또하나, 담임 소지의 사안이지만 악성 민원이거나 본인이 감당하기 힘들다 판단이 되면 지체없이 관리자에게 보고하고, 어렵겠지만 'AI모드'로 전환해 자기 감정이 무너지는 일을 방지해야 한다. 왜냐하면 나의 손길이 필요한 몇십 명의 다른 학생들이 아직 내 학급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것 또한 연습이 필요하다. 감정을 섞지 않고 멘탈을 다지는 것.
약간 식상한 내용일 수 있으나 위에 방법 이외에 제가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던게 사실입니다.
안타까운 현실이죠. 하지만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위의 방법처럼 후배 교사님들도 메뉴얼을 만들거나 벤치마킹하라는 이야기가 당연히 아닙니다.
교사가 나름대로의 메뉴얼을 만들어서 각자 도생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처우를 받으며, 머리채를 잡히고 법적 고소까지 당할 수 있는 일을 대체 뭐가 좋다고 이렇게까지 감당해야 할까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또 익명의 게시판에서 '그럼 때려치워', '니가 좋으니까 선택 한거 아냐', '그래도 방학있으니까 못그만 두겠지'와 같은 조롱섞인 댓글들이 난무하겠지요.
우리는 12년 동안 꼬박 성실히 공부해서 교대나 사범대에 입학해 4년 동안 전문 교육을 또 받아 왔습니다. 그 힘든 임용시험까지 통과해 어렵게 얻어낸 우리의 신성한 직업과 우리의 인생이 일부 사람들로 인해 왜 그렇게 비하되고 조롱받아야 하는지 의문입니다.
국가에서 일정 자격을 부여하고 국가의 책무를 담당하게 했으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가이드나 보호 또한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게 당연합니다.
우리는 단지 밥 벌어 먹으려고 교사한게 아닙니다. 공무원이라는 타이틀만 갖게 해준다면 아무리 짓밟혀도 충신처럼 일하겠다고 그 힘든 시험 통과한게 아닙니다.
우리는 나름의 교육 철학과 사명을 갖고 오랜기간 전문 교육을 받아 온 대한민국의 교육 전문가 입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말고, 당당하게 우리의 권리를 요구하되 정당하게 일하면 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희망과 응원의 메세지로 힘을 보태주는 훨씬 더 많은 수의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을 바라보며 절대 주저 앉지 말기를, 텅 빈 교실에서 혼자 외롭지 않기를 꼭 당부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너무 젊고 아까운 꽃 한송이가 기여이 짓밟히고 나서야..
뒤늦게 세상을 향해 외치게 되서 선배로서 부끄럽고 너무 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