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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스토리 하며 많이 배웠습니다

글쓰는 자세

by 김승월

어떤 일을 하든 배우는 게 생기기 마련입니다. 저는 ‘브런치스토리’ 하며, 참 많은 걸 배웠습니다.

브런치스토리를 시작한 건 1년 전쯤이었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지요. 방송과 커뮤니케이션을 업으로 살아온 저, 글도 좀 쓴다는 주변의 말씀 믿고 얼굴 내밀었습니다. 블로그를 20년 넘게 운영했으니, 뭐 어렵겠나 싶었죠. 심지어 신문, 잡지 기고 경력도 있겠다, '브런치스토리 정도쯤이야'라고 가볍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믿기지 않았습니다. 반응이 그리 없을 수가 없었어요. 시큰둥 해져서 한동안 브런치스토리를 열지 않고 지냈습니다.


그리다가 브런치스토리를 해야만 할 일이 생겼습니다. 지난 3월 21일. 낙상사고로 외상성 뇌출혈을 당해 입원했습니다. 6인 병실에서 간병사와 지내며 지루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날마다, 저녁 식사를 하고는 바로 잠자리에 들었고 새벽 2, 3시면 어김없이 깨어났습니다. 컴컴한 침실에서 이 생각 저 생각하다가, 스마트폰을 열었습니다. 여기저기 둘러만 보다 보니, 글 쓰고 싶은 충동이 일었습니다. 브런치스토리를 열었지요. 예기치 못한 사고로 위중한 상황을 겪은 이야기를 브런치스토리에 올렸습니다. 그 글을 가까운 분들에게 카톡으로 나눠드렸지요. 몇 분이 계속해서 병상일기를 써보라고 추켜주시데요.


고민 고민하다가, '병상에 누우니 보이는 것들'이란 제목을 붙여 메거진 형식으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침대에 누워 스마트 폰으로 글을 썼지요. 사고 후유증으로 손가락이 떨려서 오, 탈자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틀리지 않으려고 집중하디 보니 잡념이 사라졌고 시간도 잘 갔습니다. 간병사도 이 환자는 '글 쓰는 분'으로 치고, 말 걸지 않고 조용히 돌봐주었지요. 의사 선생님도 글쓰기가 손상된 인지능력 회복에 좋다며 격려해 주었습니다.


어떤 일을 해도 좋기만 한 법은 없지요. 잡념도 덜어내고 시간도 잘 보냈지만 속 쓰린 일이 생겼습니다. 조금은 별난 이야기니까 독자님들이 관심 가져주실 줄 알았지요. 하지만, '라이킷' 숫자는 늘지 않았습니다. 세 자리 수인 분들도 적지 않던데, 저는 늘 두 자릿수. 그것도 50 넘기기가 힘들었습니다. 구독자 수도 마찬가지였어요. 이번 연재를 포함해 집필 기간이 일 년을 넘겼고, 글도 70편을 넘게 올렸건만 여전히 두 자리 숫자였습니다. 끌탕을 하면서도 재활훈련하는 셈 치고 하루 한편 이상씩 써 내려갔습니다.


42일 만에 퇴원하면서 연재를 마쳤습니다만, 이미 글쓰기 시동이 걸렸습니다. 후속 시리즈로, '겪어보니 보이는 것들'이란 제목을 달고, 매거진 연재 형식으로 이어갔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공들여 썼습니다. '라이킷', '구독자' 수에도 민감해졌습니다. 저 자신부터 돌아봤습니다. 내 나이 적지 않으니, 브런치 스토리 주 독자님의 정서를 못 읽어낸다고 자책했지요. 잘 나가는 글도 살폈고, 구린 표현도 줄이려고 애썼습니다. '브런치 스토리 구독자 늘리는 법'이란 글들도 찾아 읽어보고 이리저리 변화를 주었건만, 독자들은 여전히 쌀쌀맞네요. 제목만 그럴싸하고 별스럽지 않은 이야기에 댓글과 라이킷이 많은 걸 본 기억이 나니 화가 치미네요.


그러다 생각해 냈습니다. 눈을 밖으로 돌려보자. 영어사이트에 들어가 내실력을 외국 독자들에게서 객관적으로 평가받아보자. 한류 열풍이 불지 않는가. '한국적인 사고'가 먹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Chat GPT에게 물었습니다. 미디엄 Medium 블로그를 추천해 주네요. 브런치스토리에 올렸던 글을 골라서 인공지능으로 번역하고, 이상한 부분은 수정해서 올렸습니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지요. Chat GPT에게 구독자 수를 늘리도록, 미디엄 스타일로 고치는 길을 알아봤습니다. 해외 독자분들이 보기 쉽게 중간 제목을 달고, 단락을 짧게 고쳤습니다. 제 나름으로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손님을 맞았습니다. 하루가 지났습니다. 단 한 분도 방문하지 않네요. 첫날이라서 그렇겠지 하며 스스로 위로하고, 다음날을 기다렸습니다. 구독자 한 분께서 방문 흔적을 남기 셨네요. 신기했습니다만 '읽음' 표시는 보이지 않네요. 일주일쯤 지나서야 한 분이 '읽음' 자국을 찍어주셨어요.


마음이 들뜨네요. 며칠 안에 미디엄의 '라이킷'인 '손뼉' Claps도 달리겠구나. 방문객 수를 올리려고 머리를 싸맸습니다. 미디엄을 뒤지다 보니, 유료회원 가입이 있네요. 유료회원이 되면 독자가 늘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인공지능에게 유료회원에 가입하는 게 좋은 지 물었지요. 초기에는 가입할 필요가 없다네요. 몸이 달아오른 저는 그런 충고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유료가 좋겠지'라는 생각에 꽂혀서, 한 달만 월회비를 내고 등록하려고 했습니다. "아니지, 마음이 왔다 갔다 하면 안 될 거야." 꾹 참고 일 년 회비를 선납했어요. 없는 살림에 거금 6만 원을 쏟아부었습니다. 제 프로필에 '노란 별'을 달아주네요. 흐뭇했습니다. "이제 뭔가 달라지겠지." 하고 제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다음날이 되자마자 변화를 살폈습니다. 읽은 분은 더는 안 계시고, '손뼉'은 언감생심이었습니다. 며칠 더 기다려 봤습니다만 역시였습니다. 지난 한 달 동안 열 편을 올렸는데도 '읽음' 자국은 그대로 하나고, 누구도 '손뼉'을 달아주지 않네요. 기가 막혔습니다.


https://medium.com/@humansw/when-everything-has-another-side-7c9a2cc5cc5f


브런치스토리도 여전했습니다. 올린 글이 90편이 넘었는데, 구독자수가 느는듯하다가 일주일 넘게 99명에서 멈추네요. 그러다 어느 날 100명이 되었습니다. 그 작은 성취에 감동했습니다. 이제 100명이 넘었으니 주욱 올라갈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어요. 그런데 하룻밤 자고 나니 다시 99명으로 주저앉네요, 독자님 한분이 야속하게 떠나신 겁니다. 미디엄도 안되고 브런치스토리마저 안 되는 현실은 잔혹동화네요.


절망했습니다. 저는 글재주가 한참 모자라고, 지인들이 저를 글잘 쓴다고 추겨준 것은 '정' 때문이었나 봅니다. 제 분수를 알게 되었습니다만, 독자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스러지지 않네요.


주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에게는 "착한 사람은 복을 받는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마음을 곱게 쓰면 일이 잘 풀릴 거라는 희망이 싹텄습니다. 마음을 가다듬었습니다. 제게 구독자가 많아지면 좋은 글을 써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지금 쓰는 글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깨침이 되도록 애쓰기로 했지요. 이러한 마음씀을 독자님들께서 굽어 살피지 않으시겠어요?


제 마음은 착해졌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라이킷수나 구독자수는 꿈쩍 않네요. 그런데요. 어느새 제 생각이 바뀌어지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구독자수니 라이킷 수를 애달파하는 제 모습이 우스워졌습니다. 당당하지 못한 내가 부끄럽네요. 이 나이에 이렇게 까지 구차해질 수가 있냐며 자조했습니다.


저는 서서히 나를 찾아갔습니다. 떳떳하지 못한 저의 욕구가 저의 글을 망쳤음을 알게 되었지요. 독자들의 반응은 반응이고, 나는 나. 관심은 갖지만 매달리지는 말자며 애써 라이킷수도, 애써 구독자수도 살피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시간에 한번 더 교정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게 되었지요. 내 마음에 드는 글을, 나 자신이 당당해지는 글을 남기고 싶어 졌습니다.


오늘까지 저는 미디엄에서 단 한 분의 '박수'도 받지 못했습니다. 브런치스토리의 구독자수는 딱 100명에 걸린 뒤로 며칠 째 고정되어 있네요. 분노와 절망을 겪고 체념에서 나온 간지 모르겠습니다만, 분명해진 건 제마음가짐이 달라진 것입니다. '나 자신이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려는 자세', 브런치스토리를 하며 배웠습니다.

martino-pietropoli-5jz3T5LwuPA-unsplash.jpg By Martino Pietropoli on Unsplash


#브런치스토리, #병상일기, #구독자 100의 벽, #미디엄, #글쓰기좌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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