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독의 힘
어떤 목소리가 라디오에 어울릴까요?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지만, 저는 따뜻한 음색의 목소리가 끌립니다. 그리고 말의 내용이 명확하게 전달되는 목소리를 꼽습니다. 라디오 진행자는 물론 모든 방송 출연자들이나 연기자들도 그런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소리를 어떻게 낼 수 있을까요? 소리의 음색은 타고나니까 바꾸기 쉽지 않습니다만, 발음은 훈련으로 좋아질 수 있습니다.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요즘 학생들은 자판은 능숙하게 다루지만, 대부분 손글씨가 서투릅니다. 악필이 많은 편입니다. 제가 중학교 다닐 때, 어느 선생님이 글씨체가 좋지 않은 학생들에게 글자를 한 글자 씩 또박또박 크게 쓰라고 권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몇 달 훈련하면 글씨체가 나아진다고요. 저도 보름쯤 따라서 해보니까,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끈기가 부족해서 계속하지 못했습니다만, 그 방법이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소리의 훈련도 손글씨 훈련처럼 입을 크게 벌리고 큰소리로 낭독하면 발음이 좋아진다고 합니다. 낭독의 힘을 믿는 성우 중 한 사람이 김종성 씨입니다. 제가 MBC라디오 드라마 ‘격동 50년’을 3년 동안 연출한 적이 있었는데요, 그분이 해설을 했습니다. 김종성 씨는 TV사극 해설이나 광고에서 한동안 독보적이었습니다. 저는 그분의 목소리를 두고 <라디오레시피 23>이란 책에서 이런 글을 썼습니다.
“그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강판처럼 표면이 매끄럽고 빛나는 소리, 묵직하고 강한 그런 이미지. 게다가 한 자 한 자 정성껏 연기하는 그의 진지한 모습을 보면서 쇳덩어리를 두들겨 연장을 만드는 장인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와 함께 일하면서 그는 강한 소리로 드라마의 기둥을 튼튼하게 세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때로는 부드럽게 감싸주기도 하고, 때로는 빠르게 몰아치고, 때로는 느릿느릿 풀어준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3년 동안 같이 일한 후에야, 김종성은 우리말을 아름답게 소리 내려고 노력하는 진지한 성우라고 믿게 되었다.”
‘해설의 달인’인 그분도 대학을 졸업하고 첫 번째 치른 성우시험에서 고배를 마셨습니다. 학원 다닐 경제적 여력이 없어서, 혼자 연습했는데요. 셰익스피어 전집 7권을 사 들고 자신의 모교인 동국대학 뒷산을 올라갔습니다. 그 당시 동국대 뒷산에는 철조망이 쳐진 구역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었답니다. 그는 매일같이 그곳에서 서너 시간씩 큰 소리로 셰익스피어 전집을 읽었습니다. 누구에게 들려주는 게 아니니까 부담 없이 이 역, 저 역, 때로는 여자 역, 마귀 역까지 큰소리로 연기했습니다. 한 일 년 동안 그렇게 연습을 해서일까요, 그다음 해인 1964년에 TBC 동양방송 성우 공채에 합격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낭독이 발성 훈련에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믿게 되었답니다.
명확한 소리를 내기 위한 적극적인 훈련 방법은 ‘코르크 테크닉’입니다. 포도주 병의 코르크 마개를 위의 사진처럼 입에 물고 낭독하는 방법입니다. 어려운 문장을 코르크 마개를 물고 낭독해 본 뒤, 코르크 마개 없이 발음해 보면 그 차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미국의 성우이며, 성우코치인 ‘조 뢰쉬’ Joe Loesch의 유튜브 동영상을 참고해서 보십시오.
https://www.youtube.com/watch?v=C0g9oXR0GPI
볼펜을 입에 물고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작고한 성우 박일이 들려준 방법입니다. 볼펜을, 얼굴과 십자 방향이 되도록, 가로방향으로 입에 물고 낭독합니다. 성우 박일의 설명에 따르면, 코르크나 볼펜을 입에 물고 발음하게 되면 억지로 입에 힘을 주게 되어서 자연히 입도 크게 벌어지고, 천천히 정확하게 읽는 습관을 들이게 된답니다. 이런 훈련을 제대로 하려면 입 가장자리로 침이 줄줄 흘러나올 때까지 볼펜이나 코르크 마개를 빼면 안 됩니다. 매일 10분 정도 씩, 두세 달 하게 되면 효과가 나타난 답니다.
코르크나 볼펜을 사용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만, 낭독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습니다. 좋은 목소리 내기를 원하다면, 성경이나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매일 낭독해 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