묶인 손이 내 마음을 풀어주었다
쓰러지고 나서야 눈에 들어왔습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
병상에 누워, 나는 내 인생을 하나하나 저울질했다. 무엇이 가장 소중할까. 가족 빼고는, 얼핏 돈, 자리, 자랑거리가 떠오른다. 그게 다 일까?
오늘도 재활의학과 병동, 작업치료실로 들어섰다. 구멍 난 판에 작은 핀을 집게로 짚어서 꼽으란다. 아이 장난 같아서 담당 선생님께 웃으며 말했다.
“손 훈련하려면 차라리 노트북으로 글 쓰는 게 낫지 않을까요?”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글쓰기도 재활에 도움이 된단다. 딸에게 부탁해 노트북을 가져왔는데, 막상 펼쳐보니 너무 커서 부담스러웠다. 대신 스마트폰으로 짧게 짧게 썼다. 작고 가벼우니 틈만 나면 손쉽게 끄적거린다.
하루 한 편씩 브런치에 글을 올렸다. 카카오톡과 페이스북으로 지인들에게 공유했고, 그들의 반응을 살폈다.
“야, 너 원래 이렇게 글 잘 썼냐? 사고 덕분에 막힌 데가 뚫린 거 아냐?”
친구 상천이가 호들갑 떨었다. 여동생도 거들었다.
“오빠, 요즘 글이 예전보다 훨씬 공감 주는 거 알아?.”
공감. 그 단어가 가슴에 들어와 박혔다. 나는 그동안 공감 주는 글을 썼던가. 라디오 PD 시절에도 공감을 고민했을 텐데, 그때는 제작기술이나 연출에 더 매달렸던 것 같았다. 커뮤니케이션을 업으로 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공감에는 왜 목매지 않았을까.
여동생이 진지하게 물었다.
“오빠, 엄마가 오빠에게 바랐던 게 뭔지 생각해 본 적 있어? 엄마랑 그런 얘기해 본 적 있어?”
그 물음이 내 마음의 물꼬를 텄다. 내게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나의 소중한 사람들은 나에게 무엇을 바랄까.
지난 세월을 돌아보니 나는 정말 바쁘게 살았다. 골고루 안 좋은 여건 속에서 운 좋게 살아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축복이었다. 그 기회를 붙들고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 쓰다 보니 가까운 내 가족에게 살갑게 굴 시간이 없었다. 바쁘게 사는 나를 엄마와 여동생은 자랑스럽게 여겼다. 덕분에 한 계단, 한 계단 올라, 번듯한 일터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았다. 그 자리 지키려고 발버둥 치다 보니, 나는 내 가족이 맘 편히 불러앉혀 놓고 말 나눌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저 '승월이는 바빠'라는 면죄부를 받았다. 그 소중한 가족 두고 한 짓이란 게 뭐였나. 그리 해낸 게 내 가족에게는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어머니가 세상 떠나시던 해, 어머니가 입원한 병원이 바로 내가 지금 입원해 있는 여의도성모병원이다. 잘난 둘째 아들은 여전히 바빴다. 매일 병문안은 왔지만, 퇴근 후 지친 몸으로 의무감에서다. 그날 어머니는 침대기둥에 두 손이 묶여서 누워있었다. 식도 삽입관을 뽑지 못하게 장갑을 끼워 둔 채였다. 그 손이 기도하는 손처럼 보였다. 어머니가 웃으며 물었다.
"저녁 먹었니? 라면 끓여줄까?"
중환자가 현실을 혼동하는 '섬망' 증세다. 얼른 괜찮다고 인사드렸다. 그새 어머니는 자신의 손이 묶인 걸 깨닫았는지 민망해하며 고개 숙였다. 어린 시절 제대로 먹이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에미에게는 아들이 늘 배고픈 새끼였나 보다. 뜨거운 것이 목에 치밀어 올라 나도 얼른 고개 돌렸다.
어머니의 입원기간이 길어지자 자식들이 번갈아 간병했다. 간병인을 두었지만 돌아가며 같이 자기로 했다. 고맙게도 내게는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 함께 잘 기회가 주어졌다. 그 잘난 아들은 모범생처럼 굴었다.
"어머니. 힘드셔도 장갑을 꼭 끼셔야 해요. 갑갑하셔도 식도삽입관 코줄 잡아 빼시면 절대 안 돼요."
이승에서의 마지막 밤인 줄 모르고, 그런 말을 해버렸다. 어머니는 착한 학생처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눈물로 지새웠어야 할 그날 밤이 별일 없듯 그렇게 지나갔다.
다음날 어머니는 간병인이 출근하자마자 자랑부터 했다.
"어젯밤에 작은아들이 와서 같이 잤어."
그 한마디가 두고두고 가슴을 찔렀다. 그날 밤, 그 잘난 아들은 어머니가 소중히 여긴 것을 어찌 헤아리지 못했을까.
어머니가 하고 싶은 것은 소소한 말 나눔이 아니었을까?.
"엄마, 고맙습니다 "
"나, 얼마나 엄마 좋아하는지 아셔?"
"엄마도 나 좋아하시지?"
"오늘 뭐 드시고 싶어?"
어린애도 할만한 그런 말도 나누지 못하고 이승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엄마! 이 아들 바보 맞지? 좀처럼 울지 않는 내가 소리 내어 울고 싶다.
"어머니, 이 못난 아들의 부족함을 옹서 해주세요."
내 삶을 땨뜻하게 만들어 준 순간들은 언제였을까. 어머니에게 해드리지 못한 것들이 나를 일깨워주었다.
산다는 건, 매듭을 짓고, 또 푸는 일.
어머니의 묶인 손이,
끝내 내 마음을 풀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