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속에서 나를 본다
울지 않으려 애쓰던 제가 결국 울어 버렸습니다.
울어야만 보이는 건 무엇일까요.
나는 참 덜 울고 자랐다. 울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강하게 견뎌내려 무진 애썼다. 그 버릇 어디 갈까. 딸이 여고생 일 때, 울었다고 모질게 야단친 적이 있다. 여고생이면 굴러가는 가랑닢 보고도 웃고 우는 나이다. 그 풍부한 감정을 못 받아주고는 부끄럽게 무지막지하게 굴었다. 그만큼 우는 걸 몹시 창피하게 여겼다. 그렇게 울음을 싫어했던 나 역시, 눈물자루가 때가 되면 어김없이 차올랐다.
그날, 내 눈물자루가 '펑' 하고 터졌다. 형이 장가들던 날이다. 축하와 덕담이 오가야 할 자리에서 나는 목놓아 울었다. 형에게 늘 미안했다. 두 살 위인 형보다 네 해 먼저 장가든 게 마음에 걸렸다. ‘미안해, 형’, 이 말도 못 하고 결혼해 버렸다. 형은 아무 말하지 않았지만, 그 침묵이 더 아팠다.
그 형이 두 해 전, 코로나로 세상을 떠났다. 형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하다. 형이 장가가던 기쁜 날, 못난 동생이 그렇게 목 놓아 울어댄 것은 미안함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던 어떤 깊은 감정이 있었을지 모른다.
이유 모를 친구의 울음을 지켜봤다. 대학 신입생 시절이었다. 단짝 친구와 한밤중 용산 쪽 한강 백사장에서 깡소주를 들이켰다. 주당도 아닌 우리였는데, 어쩌자고 그랬는지 모르겠다. 술기운이 차오르자 친구가 넋두리 해댔다.
"할머니. 할머니는 왜 돌아가셨나요?"
그 소리를 반복하며 펑펑 울어댔다. 나는 어쩔 줄 몰라 이리저리 친구를 달래다 못 말리고, 그냥 같이 취해버렸다.
뒤늦게 알았다. 친구는 중학생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다. 어머니는 생계 꾸리느라 늘 바빴고, 할머니가 어머니 빈자리를 채워주셨다. 며칠 전 그 할머니가 세성을 떠나셨단다. 남들이 보면 이유 없어 보이는 눈물에도, 각자의 사연이 스며있다.
내 눈물자루가 언제 터질지 몰라 긴장하기도 한다. 어머니 장례식 날 그랬다. 대성통곡할까 봐 바짝 긴장했다. 포천 천보묘원에 모셨던 날, 나는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폭우가 그리 퍼부어대서, 눈물 흘릴 수가 없었다.
비 오면 엄마무덤이 떠내려갈까 봐 울었다던 청개구리도 그 심정 아니었을까. 폭우 속에서 일꾼들이 묫자리에 빗물 스며들지 않게 둔덕 올리고, 옆으로 물길 냈다. 우비 입고 우산 쓰고 그 걸 지켜보느라 눈물 흘릴 새가 없었다. 착한 우리 엄마, 자식들 울지 못하게 폭우 쏟아지는 날 그렇게 묻히신 걸까. 어머니 장례날을 떠올리면 아직도 먹먹해진다. 울어야 할 때는 울어야만 하나보다.
나는 지금 외상성 뇌출혈로 치료 중이다. 입윈 열흘쯤 지나면서 이따금 울고 싶어 졌다. '불행 중 다행'이라며 많은 분들이 축하해 주었고, 가족, 친지의 어마어마한 사랑을 확인했는데도 슬펐다. 이유 없이 눈물이 차올라서, 주치의에게 물었다.
"제가 갑자기 울어서 주위분들 놀라게 할까 봐 미리 말씀드리는데, 자꾸 슬퍼지네요. 울어도 괜찮을까요?"
"됩니다. 머리 충격으로 감정을 담당하는 뇌 부위가 다쳤습니다. 당연히 그럴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자주 눈물이 난다. 봄햇살에도, 꽃향기에도, 문득 스치는 사람의 말에도.
며칠 전 재활치료실에서 물리치료사 손에 이끌려. 5층 옥상정원으로 나갔다. 따스한 봄햇살을 쬐고, 라일락 꽃향기를 맡았다. 보드라운 분홍빛 꽃잔디를 쓰다듬었다. 꽃잎들이 아기 맨살처럼 보드라웠다. "봄꽃 좋아하세요?"묻길래 봄꽃 이름을 줄줄 외다 보니, 내 마음이 하늘 저 멀리로 올라갔다. 마음은 봄날이었다. 그런데 까닭 모를 슬픔이 차올랐다.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 '노랫말처럼,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서다.
왜일까. 눈물 나는 이유를 살피다 보니 나 자신을 찬찬히 들여다보게 된다. 눈물에 깃든 사연 들이 내 눈물 속에서 반짝이고 있다.
눈물은 낙화다.
때가 되면 어김없이 떨어진다.
꽃 진 자리엔 꽃잎보다 맑은 그림자가 어린다.
그 그림자 속에서 나는 다시 나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