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 폭압에 덮친 자연재해
시련의 의미란 무엇일까요? 아둔한 인간이 그 의미를 알아채지 못함을 가엾이 여기고, 그걸 깨닫으라고, 재앙이 엎친 데 덮쳐서 내리는 걸까요? 고통과 슬픔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는 하늘의 메시지인지는 모르겠지만, 애통하네요. 주님께서 그들의 슬픔을 어루만지사, 그 눈물을 닦아 주시길 기도드립니다.
군정의 폭압에 시달리던 미얀마 분들이 대지진으로 큰 아픔을 겪고 있는데요. 지난 3월에 미얀마 중부에 위치한 미얀마 제2의 도시 '만달레이' 인근을 진도 7.7의 강진이 강타해서 수천 명의 고귀한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군부 독재자들은 스스로 해결할 능력도 없으면서 그들의 재난이 외부 세계로 알려지는 걸 꺼려서 보도를 막기까지 한다니, 구호는 늦어지고 희생은 늘어간다는 안타까운 보도를 접했습니다. 제가 미얀마를 갔었고 미얀마 사람들과 직접 말을 섞어봐서, 지금 상황이 얼마나 비극적인지 느껴지기에, 제 기억과 경험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저는 바티칸이 공인한 가톨릭언론인들의 단체
SIGNIS, <시그니스아시아>에서 재무담당, 트레저로 9년 동안 봉사 했기에,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미얀마 같은 아시아 여러 나라의 성당을 찾아 다니며, 그곳 분들과 이야기를 섞어 봤습니다.
'버마'로 알려졌던 이 나라는 국호를 '미얀마'로 바꾸었습니다. 그 옛 날, 찬란한 불교문화를 꽃피운 나라로, 지금도 값진 불교유적을 간직한 문화국가입니다. 우리도 군부정권을 겪어 봤기에 한국인과 미얀마인들은 서로 잘 이해할 수 있지요 , 특히, 70여 년 전 , 한국전쟁 당시에는 미얀마는 5만 달러 규모의 쌀을 지윈 하여, 한국인의 허기를 채워준, 고마운 나라였기도 합니다
저는 2016년 미얀마 구수도, 양곤에서 열린 <시그니스 아시아총회>에 참석했었는데. 당시 시그니스아시아 회장이셨던 '가브리엘 툰 민트'신부가 시그니스 아시아 이사들 몇 분을 자신의 고향인 '만달레이'에 초대했습니다. 만달레이는 미얀마 중부지역을 대표하는 미얀마 경제의 중심 되는 큰 도시입니다. 신부님 댁에서 점심을 대접받았는데, 특별히 한국산 쇠젓가락을 내보이시며 자랑하셨어요. 우리나라 식당에서 흔히 보는 쇠젓가락을 귀하게 여기고 손님상에 특별히 내놓은 모습이 저로서는 엉뚱하고도 재미났어요. 신부님은 어머니에게 저를 '자기가 무서워하는 그 사람'이라고 소개해주셔서 같이 웃었습니다. 제가 회계 담당하며 제가 모시는 회장님에게 지출금액을 따지고. 영수증 챙겨내라고 무던히도 깐깐이 굴었나 봐요. 신부님은 그런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서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어머니께 하소연 하셨다네요. 제가 지나쳤던 게 미안했고, 민망했습니다만, 회장이면서도 아랫사람에게 시달림 받으며 참아낸 , 겸손함과 순박함을 느낄 수 있었지요.
회장 신부님은 식후에 우리를 만더레이 변두리의 어느 공원으로 안내했어요. 공원 가는 길 옆으로는 미얀마 여느 풍광과는 다른 그럴듯한 건물들이 이어져 있었어요. 미얀마의 부촌이냐고 물었더니, 씁쓸하다는 듯이 설명해주시네요. 군인가족 아파트, 군인 쇼핑센터, 군인복지시설과 같이, 군인과 군인가족만을 위한 시설들이 라네요.
군부정권에서 자신들의 권력을 떠받치는 그들에게만 여느 미얀마 사람들은 꿈꾸지 못할 호화 시설을 마련해 준 것이에요.
더 기가 막힌 장면은 어느 사찰에서 봤습니다. 미얀마 북부에는 바간 Bagan이라는 천년고도가 있는데요. 천년 전에 세워진 2,500여 기의 파고다와 사원이 즐비한 곳이죠. '파고다의 밀림'처럼 눈 돌리는 곳마다 불탑이 보였어요, 유네스코 지정 중요 문화재로,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인도네시아의 보도부르 사원과 함께 현존하는 '세계 불교 3대 유적지'의 한 곳입니다. 제가 찾은 2016년 초에도 지진의 충격으로 일부 유적들이 무너져 있어 보는 이의 가슴을 무겁게 했어요. 그곳에서 어느 큰 사찰 앞에 이르렀을 때였어요. 길 양옆으로 경호 차량들이 이어졌고 경호인력이 줄이어 서 있어 삼엄했어요. 직감으로, 대통령이나 그 급의 정치인이 등장하는 줄 알았어요. 근데 경호 인력에 에워 쌓여 나타난 인물은 군복 입은 군인이었어요. 장성급으로 보였는데, 군부의 위세를 실감했어요. 그나마 위로가 된 것은 그 군인이 지진으로 파손된 사원 복구에 시주 드리러 왔다네요.
더 기막힌 장면은 양곤에서 봤는데요. 미얀마의 명승지를 미니어처로 만들어 전시한 관광지였는데요. 입구에는 그 시설을 만든 분을 기리는 건물이 서 있었어요. 그 홀 중앙에는 온갖 금장식으로 치장한 부부 초상화가 걸려 있었는데요. 그들은 미얀마를 대표하는 군벌 가족이라네요. 부끄러운 줄 모르고 그 추한 모습을 내걸고, 추앙받기를 바라니 , 군벌집단의 썩어 빠진 의식을 들여다 보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런 집단이 이끄니 나라가 제대로 굴러가겠어요. 누군들 그들 앞잡이 되면 부끄러워 하지 않았을까요.
그 무시무시한 군부 세력에 맨몸으로 맞선 분이 계셨죠. 세계인들에게 감동을 준 그분의 사진을 기억하시나요?
예. 군부세력에 맞선 민주 시위대에 무장 진압대가 총구를 겨누자 맨몸으로 막아 선 < 안누 투상> 수녀님입니다. 중무장한 경찰에게 시위대를 향해 총쏘지 말아 달라고 무릎 꿇고 애원했습니다. 목숨 건 호소에 중무장한 진압대가 총부리를 내리자. 시위대는 부상자들을 나르며 치료한 기적이 일어났지요.
이 사진과 사연을 자신의
SNS로 용기 있게 퍼 나른 분이 <찰스 마웅 보> 추기경이십니다. 미얀마 인들에게 추앙 받으시는 분이지요. 저는 '미얀마의 김수환 추기경님' 같으시다는 생각을 합니다. 용감하고 강하시면서도 겸손하고 자상한 분이세요.
2021년 시그니스 아시아 TV콘퍼런스를 가톨릭 평화방송 CPBC 도움으로 온라인으로 열었습니다. 저는 MBC라디오 PD 출신입니다만, 시그니스 아시아에서는 TV데스크를 담당해서, 그 행사를 기획하고 추진했었는데요. 보 추기경님 말씀 듣자는데 의견이 모아져 섭외를 하게 되었어요. 회의 기간이 마침 보추기경님이 미얀마 지방도시에 머무실 때였는데도, 친절하게 전화를 받아주시고 인터뷰시간을 내주시며 ,자상하게 격려해 주셨어요. 당시 회의 링크입니다.
https://m.youtube.com/watch?v=OZ6QQDErYOE
당시 한겨레신문에서 다루었던 기사입니다.
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400/552/imgdb/original/2021/0510/20210510503609.webp
미얀마는 국민의 약 85%가 불교신자인 불교 국가입니다만, 국민의 약 1%인 75만여 명이
가톨릭신자입니다. 숫자는 많지 않지만, 보 추기경님과 투상 수녀님처럼 용기 있는
성직자, 수도자가 많으시고. 한국에서 파송된 헌신적인 선교사들이 있습니다.
지난 2022년 서울 서강대학교에서 열린 <시그니스 세계 총회>에서는 한 미얀마 수녀님이 직접 오셔서 군부 독재자들의 만행과 미얀마 인들의 아픔을 들려주셨는데요. 그 사실이
군부 관계자들에게 알려지면 자신의 신변이 위험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자신들이 돌보는 청소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와 달라는 부탁을 드리러 위험을 무릅쓰고 찾아오셨지만, 부끄럽게도 제대로 도움 못 드리고 돌려 보내드렸습니다.
미얀마는 광활한 영토를 가진 큰 나라이지만, 중국 접경지역에는 소수민족 반군과 미얀마 군부가 대치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파송된 수녀님을 만나 들은 적이 있는데, 미얀마 사람을 도우려 해도, 군부 눈치를 봐야 하는 어려움을 토로하셨습니다. 그 밀림 지역에 사는 분들은 문명과 단절된 삶을 이어 간다고 합니다. 디지털시대에, 인터넷은 물론이고 전화마저 쓸 수 없어, 단파 라디오로만 세상 소식과 접해 산다고 하는데요. 장마라도 나면 마실 물이 흙탕물이 되어 , 갓난아이는 설사만 걸려도 목숨을 잃는답니다. 그런 지역에 복음 전하러 가셨지만. 구호품 전하는 게 일이라면서, 오토바이, 자전거, 배를 갈아 타고 다니며 봉사하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 취재 기를 2016년 가을, 가톨릭 신문에 기고한 적이 있어요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1609060166632
2016 년 바간공항에 갔었을 때였습니다. 공항대합실에 삼성 전광판이 우뚝 서있었어요.
저는 자랑스럽게 보았지만, 힘겹게 사는 그 나라 분들은 저런 부자 나라에서 따뜻한 손길 내밀어주기를 기대하지는 않았을까 생각도 했어요. 우리 나라를 이만큼 일으켜 세운 데 기여
한 자랑스러운 우리 경제인들 노고에 깊이 감사 드리며, 우리가 겪은 군부 폭압에 시달리는 미얀마 인들에게 너그러움을 베푸시길 주님께 청합니다. 온갖 구박과
망신을 주면서도 자기 필요할 때면 재벌 총수들을 끌고 다니던 지도자들이 생각나서 ,이런 말씀 드리는 게 면구스럽긴 하네요.
이 모든 걸 두루 살피라고 주님께서 그런 수난을 주셨는지 알 수는 없지만, 제법 사는 우리 국민들도 그들의 눈물을 함께 닦아 드리면 좋겠습니다. 그 선한 영향력으로 미얀마의 군부독재가 종식되어 , 미얀마가 민주국가로 새로 태어나길 꿈꾸어 봅니다.
-끝-
이 글을 쓴 뒤에 혹시라도 이 글이 잘못된 부분이 있을까봐 , 미얀마 출신 유학생, 제자에게 글 좀 봐 달라고, 부탁했어요. 문자를 받아서 여기 싣습니다. 학생의 신원은 안전상 밝힐 수가 없습니다.
교수님의 글을 읽고 깊은 감동을 받았어요. 글에 틀린거 없이 잘 전달했셨어요!!! 미얀마 사람으로서, 교수님께서 저희 나라의 고통과 현실을 깊이 이해하고 따뜻하게 전해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특히, 군부 통치와 자연재해로 인한 국민들의 고통을 진심 어린 시선으로 조명해 주신 점이 인상 깊었어요. 또한, 종교적 경건함과 친근함이 문화에 따라 다르게 표현될 수 있음을 보여주신 ‘내 품 안의 성모님’ 글을 통해 신앙의 본질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어요.미디어 전공자로서 저도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이고, 의미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어요!! 교수님의 깊은 통찰과 따뜻한 시선에 감사드립니다~~~
교수님, 글을 읽고 많은 감동을 받았어요~저도 교수님처럼 따뜻하고 깊이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서 한국어도 더 열심히 배워야 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