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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병을 일려야 할까? 숨겨야 할까?

말과 침묵 사이에서

by 김승월
아픔을 드러낼지 감출지 고민입니다.
그 사이에서 소통의 의미를 찾습니다.


병상위의 질문


"아픈 걸 남에게 알리는 게 좋을까, 숨기는 게 나을까?"

내가 병상에 누운 날부터 시작된 질문이다. 남들은 자신의 병을 어떻게 할까. 고통은 나눌수록 줄어든다지만, 그 나눔이 누군가에게 짐이 될 수 있다. 단순해 보이지만 답하기는 쉽지 않다.


지난달, 야산에서 미끄러져 비탈로 굴러 떨어졌고,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병실이었다. 그 순간부터 내 몸만이 아니라 내 마음도 아팠다. 손상된 뇌의 인지 기능을 훈련할 겸, 틈틈이 글을 썼다. 병상일지를 쓰다 보니, 슬프거나 아픈 기억이 되살아났다. 힘겹게 살던 지난 시절 집안 이야기까지 다루게 되었다. 그런 글들을 SNS에 올리자 여동생이 예민하게 반응했다.

“오빠 마음은 알겠는데, 사람들이 다 오빠처럼 생각하진 않아. 뒤에서 딴소리하는 사람도 많아. 나 그런 얘기 많이 들어 봤거든.”

그런 사람들, 나도 가끔 보았다. 그래서 망설여진다.


슬픔을 나누는 일의 두 얼굴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는 말처럼, 남의 불행이 상대적 안도감을 주는 걸까. 목소리 높여, 되는 말, 안 되는 말을 마구 섞어 내뱉는 이가 있다. 그런 사람들은 남이 아프다는 이야기를 그대로 전할 리가 없다. 덧칠해서 더 진하게 만들기도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09년 새해 다짐 10가지를 꼽으며, 그 첫 번째로 "험담하지 마세요"Don’t Gossip"를 들었다.『험담만 하지 않아도 성인이 됩니다』라는 책까지 펴냈다. 말의 화살이 날아다니는 세상에서, 굳이 미끼를 던질 필요가 있을까.


내가 어렸을 때는 “아파도 티 내지 말아야 사내답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그래서일까. 병원에 입원하거나 수술해도 연락하지 않는 친구가 많다. 이유를 물으면 “깜빡했어”라며 웃어넘긴다. 큰 수술을 두 번이나 겪은 친구의 말이다.
“옛말에 ‘병은 자랑하라’고 했지만, 무슨 좋은 얘기라고 하고 싶겠어. 그래서 감추는 거야.”


숨김 속의 결연함


한 지인이 며칠 뒤 수술받는다며 덤덤하게 말했다. 친하게 지내는 사이라서 물었다.
“어디가 아픈가요? 어느 병원에서 수술하나요?”
그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아요.”


병명도, 병원 이름도 말하지 않았다. 병세가 걱정되었지만 더는 묻지 않았다. 그저 “우리나라 수술 실력이 세계적이잖아요. 잘 될 겁니다.”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며칠 뒤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여전히 세세한 얘기는 입 다물었다.
“두 달 후, 수술하고 회복되면 통화할게요.”

그의 말에서 결연함마저 느껴졌다.


왼쪽이 김영한목사, 암투병 중에 만났지만 내색조차 안 했다

고독과 침묵의 마지막 인사


암으로 죽음을 앞두고도 병 이야기를 한마디 하지 않은 분이 있었다. 회사 동료로 가깝게 지냈던 김영한 목사. 그는 퇴사 후 목사가 되어 소외된 이웃을 돌보며 살았다.


김목사는 병세를 가족에게조차 알리지 않았다. 암 말기에 접어들자 스스로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했다. 뒤늦게 알게 된 나는 급히 통화를 시도했지만 거절당했다. 며칠 지나서야 문자가 왔다.
“미안합니다. 힘들어서 그러니 연락 없어도 이해해 주십시오.”

그리고 닷새 후 세상을 떠났다. 그 문자가 지상에서의 마지막 인사가 되었다.


임종 닷새 전에 그를 찾아갔던 나광화 목사의 말이다.
“마지막 시간을 고독과 침묵, 묵상으로 보내셨습니다.”


그가 쓴 『로마서 말씀 읽기』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사랑하는 사람과 지금은 이별하지만, 잠시 후 천국에서 다 같이 만나 영원히 함께 살게 될 것입니다.”


그에게 침묵은 절망이 아니라 믿음이었다. 육신의 병보다 더 큰 평화를 믿었기에, 그는 병을 숨겼나 보다.


죽음과 삶은 같은 물음


삶의 고비를 함께 넘긴 그대가 누웠는데, 나 어찌 마음 편히 앉아 있을 수 있을까. 그대가 저 멀리 떠난다는 데 니 어찌 그냥 보낼 수 있을까. 누가 뭐라 해도, 그대의 마음을 보듬어주고, 나는 나대로 그대를 보내고 싶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와 “어떻게 죽어야 할까”는 결국 같은 질문이다. 병을 알릴까, 숨길까, 그것은 결국 남과 어떻게 살아길 것인가의 문제다.


병을 숨기는 건 남을 위하는 일이고,

병을 알리는 건 남을 믿는 일이다.


그사이 어딘가에서,

우리는 오늘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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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병상에 누우니 보이네- 지나가고 나니 보이는 것들》,

다음 화에서는 ''를 나눕니다.


https://m.blog.naver.com/radioplaza/22359446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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