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지르다

강아지에 놀라서

by 김작가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사납게 짖어대던 강아지가 나에게 돌진했다. 강아지 두 마리를 데리고 있던 견주(犬主)는 목줄을 모두 놓치고 넘어졌다. 내가 있는 힘껏 비명을 지르며 카트로 막으니까 사나운 강아지가 내 앞에서 악을 쓰며 짖었다. 내 모든 감각이 이 강아지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날카로워지면서 카트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허둥지둥 뛰어온 견주가 나를 향해 사납게 짖던 강아지의 목줄을 붙잡고 내 옆을 지나 멀리 달아난 또 다른 강아지를 부르며 뛰어갔다. 정신없이 강아지를 쫓아가기에 바빴다.


나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한다. 강아지가 횡단보도를 가로지르며 나를 향해 사납게 돌진하던 잔상(殘像) 때문이다. 펄쩍펄쩍 뛰어서 미친 듯이 돌진하는 강아지. 그 얼굴과 몸에서 풍기던 살기와 공격적인 기운은 나를 집어삼킬 것 같았다. 카트가 없었으면 그 강아지는 분명 내 몸으로 덮쳤을 것이다.


길거리에서 강아지에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저 앞에서 강아지의 목줄을 잡은 견주가 흘끗 뒤돌아 나를 쳐다보고 그냥 간다.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고 오다가 사나운 강아지에 놀란 나는 길거리에 한참을 서 있다. 강아지를 제어하지도 못하면서 두 마리나 데리고 다니는 견주에게 화도 난다. 견주를 넘어뜨리고 나에게 돌진할 만큼 공격적인 강아지라면 산책할 때 목줄을 단단히 잡고 더 주의했어야 한다.


나는 강아지를 좋아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무섭다. 어렸을 때 강아지가 있으면 멀리 돌아서 걷거나 그 강아지가 지나가고 나서야 움직였다. 요즘은 너무 많은 강아지가 돌아다녀서 피할 수가 없다. 무심하게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나치려 애쓰지만 강아지와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긴장한다. 견주가 목줄을 짧게 잡아주면 고맙지만 길게 잡고 가면 긴장감이 고조된다. 그럴 때는 내가 다른 길로 돌아서 가거나 그 강아지와 견주가 멀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내가 놀라서 크게 소리 지른 후 몰려오는 피로감에 걸을 힘이 없다. 위험한 순간에 내지른 비명에 대해 이상야릇한 기분이 올라온다. 나를 흘끗 쳐다보고 가버린 견주에게 화도 나지만 내가 낼 수 있는 모든 화를 이미 표현했다는 생각도 든다.


이유 없이 나에게 공격적인 행동을 한 강아지에게 비명을 질렀다. 예전에는 이런 일이 생기면 소리를 지르기는커녕 몸과 마음이 얼어붙어서 꼼짝하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은 온 힘을 다해서 비명을 질렀다. 남들의 시선은 의식하지 않고 지금 내가 위험하다고, 무섭다고 표출했다. 아마도 견주는 내 공포를 충분히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놀라서 강아지에게 카트를 집어던지거나 발길질해서 강아지가 다칠 수도 있었다며 두려웠을 수도 있다. 카트를 사이에 두고 짖어대던 강아지가 나에게 위협을 가하는 시간이 더 길었다면 내 공포는 공격으로 바뀌었을 것 같다. 분명 나는 비명을 지르며 공격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언짢은 경험이다. 하지만 이미 겪었다. 견주에게 따지고 싶기도 하지만 이미 사라졌다. 비명을 지르며 공포감을 표현하고 방어하기 위해 공격하려는 내 의지도 충분히 느꼈다. 나에게 이런 부분이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랍다.


지금 이 순간을 알아차리며 살려고 노력하는데 나의 방어를 위해 공격도 불사하려는 거친 기운을 만났다. 아슬아슬한 순간에 견주가 강아지 목줄을 붙잡고 데려가서 다행이다. 덕분에 내가 무서워하든 싫어하든 강아지라는 생명체에 해를 끼치지 않을 수 있었다.


무서운 순간에 그 공포를 적나라하게 표현해서 다행스럽다. 내가 화를 내야 할 때 숨어버리던 습관은 상처를 곪게 했다. 살면서 너무 놀라면 눈을 감아버렸다. 뒤늦은 후회는 자책으로 이어져서 나를 보살피지 못했다. 해소되지 않는 긴장은 내 몸에 통증을 유발했다. 아주 오랫동안 아프고 나서야 나를 보살피기 시작했다. 긴장하고 숨어버리는 습관을 알아차리고 겪고 선택하고 연습하며 살기 위해 마음을 모은다.


강아지가 돌진해서 놀랐지만 내가 얼마나 알아차리며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내는지 확인한 것 같다. 이렇게 경험을 통해 ‘인생 시험’을 보나 싶다. 정해진 답은 없으나 사건과 마주하며 어느 방향으로 인생길을 걷고 있는지 점검한다. 나는 지금 무서울 때 무서워한다. 소리를 질러서 표현도 할 수 있다. 나를 보호하려고 방어 태세도 갖춘다. 여차하면 공격도 불사하려고 한다.


거리가 확실하게 확보된 상태에서 동물과 마주할 때는 괜찮은데 가까이 있고 싶지는 않은 나의 마음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궁금하다. 지인들의 집에 방문했을 때 강아지나 고양이가 내 옆에서 배를 드러내고 눕곤 한다. 그들의 안전하다는 표시라는데 나는 강아지나 고양이와 가까이 있고 싶지 않다. 나는 계속 쳐다보지 않으려고 하고 그들은 자꾸 내 근처를 서성인다. 지인들은 자기네 강아지나 고양이가 다른 사람들에게 까칠한데 나한테만 유독 그런다고 말한다. 자기들에게 유난히 관심 없고 피하는 내가 오히려 관심을 끄는 대상이 되는 것일까? 아니면 자기들에게 어떤 행동도 하지 않으니 만만한 것일까?


강아지에게 놀라서 비명을 지르고 기운이 없다. 그래도 무섭다고 소리 지른 건 잘한 일이다. 비명이 이유 없이 나를 공격하는 행위로부터 나를 보살피는 최고의 방어일 수도 있다. 어색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강아지를 무서워하고 가까이 있고 싶지 않은 마음은 나중에 파악하고 우선 집에 가서 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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